KT가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차단을 강행한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책 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유감 표시, 시정명령, 제재조치 언급에도 불구하고 파국이 거듭 이어지면서 규제기관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KT가 접속제한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데는 주무부처인 방통위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미 시장은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LCD에서 스마트TV, 3DTV로 넘어가는데 규제정책은 항상 문제가 생긴 뒤 마련됐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전날인 9일 KT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 스마트TV에 대해 인터넷 접속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TV가 망을 무단으로 점유해 사용하고 트래픽 과부하를 유발해 통신망을 블랙아웃(black out)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다만 애플리케이션 접속만 제한되고 기존 TV 시청이나 인터넷 접속은 영향이 없다.
방통위는 KT가 접속제한을 발표하기 전까지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KT의 발표 이후에야 부랴부랴 긴급 브리핑을 통해 ‘엄중한 제재조치’를 운운하며 “이용자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KT는 10일 오전 9시 예고한대로 접속제한을 강행했다. 규제기관인 방통위의 경고가 사업자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지난달에는 케이블과 지상파 사이의 재송신 분쟁으로 KBS2 재송신 송출이 중단돼 시청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당시에도 방통위는 오후 8시까지 케이블 사업자들에 송출을 재개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사업자들은 이에 불응했다.
KT-삼성간 전면전의 발단이 된 통신사-제조사 간 망 이용대가 부담에 대한 부분은 방통위가 지난 1년간 진행한 망중립성 포럼에서 논의돼 오던 사안이다. 방통위가 포럼을 통해 무엇을 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방통위는 지난해 말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올해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문제는 가이드라인에서 망중립성 최대 현안이었던 망 이용대가 분담,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등에 대한 결정이 빠지면서 불씨가 남았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해당 사안들을 지난달 망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에서 논의하자며 결정을 미뤘다.
망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는 오는 15일 첫 회의를 앞뒀다. 그런 상황에서 KT가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은 방통위 주도의 회의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KT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보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제조사를 협상테이블로 끌고 나오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사업자들과는 시각차를 보였다.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제정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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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범 방통위 통신정책국장은 “망중립성 논의 자체가 범주가 넓어지고 서로간 입장 차이도 심해 시일이 걸렸다”며 “작년에 포럼을 구성해서 일단 관련되는 업체들과 전문가들을 포함시켜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시행하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이드라인에 이어서 개별적 트래픽 관리, VoIP, 투자비 분담 같은 것은 자문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했다”며 “연내에 원칙과 구체적인 사항을 만들어서 시행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