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바로보기⑦] 게임 그리고 청소년 교육
*게임과 범죄의 상관성 “증거가 없다”
*게임, 교육과 지구 환경을 말하다
*외국부모, 게임교육=인성교육
1999년 4월, 미국 콜로라도주 제퍼슨 카운티의 콜럼바인 고등학교. 이 학교 재학생이던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크레볼드는 학교 구내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폭발물을 터뜨려서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자살했다.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 이는 청소년이 벌인 최초의 대량살인 사건이었고 9.11 테러 이전까지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테러사건이었다. 또 게임과 범죄의 상관성에 대한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사건이기도 했다.
그들은 평소 ‘둠(Doom)’이라는 1인칭 슈팅(FPS)게임을 자주 즐겼다고 했다. 해당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이 “범인들이 폭력게임의 영향을 받았다”며 둠 개발사와 몇몇 게임사에 소송을 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렇지만 이 어린 범인들이 단순히 게임에 영향을 받아 어마어마한 살인사건을 계획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이에 호기심과 의문을 품은 한 학자의 진지한 연구를 살펴볼 만하다.
오리건 보건과학 대학교의 임상학부 교수인 제랄드 블록(Jerald Block) 박사는 지난 2007년 9월 열린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 상담과 치료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콜럼바인 사건과 게임의 상관성을 발표했다.
사건 발생 직후 미국 FBI는 범인의 주변과 과거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통해 2만5천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발행한 바 있다. 해당 보고서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건의 범인이었던 두 청소년은 평범한 미국 중상류층에서 자라났고 우울증 같은 정신과 질환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면 둘 모두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왔다는 것이었다.
제랄드 블록은 이 사실에 천착했다. 해리스는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끝없이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좀체 친구들을 사귈 수 없었다. 왕따는 숙명이었다.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크레볼드였다. 크레볼드 역시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이들 둘의 분노를 해소시켜주는 것은 단 하나. 바로 게임이었다.
이들은 둠의 마니아였다. 전투게임의 특성상 이들은 게임 속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었다. 자신들이 직접 전투맵이나 무기를 설계해 게임에 추가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러던 중 총기난사 사건의 결정적 계기가 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해리스가 실제 세계에서 자신을 나무라던 친구를 사이버 공간을 이용해 겁을 줬다가 인터넷 접속을 차단당하게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고 여기던 유일한 공간과 단절돼 버린 셈이 됐다.
정확히 1년 후, 결국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과 절망을 표출할 곳을 찾지 못해 현실 속에서 분노를 터뜨려버린 것이다.
여기서 제랄드 블록이 던진 물음은 이렇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정말로 게임 하나에서 비롯된 것인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 과연 게임의 중독성에만 있는 것인지다. 다시 말해 게임으로 인해 현실에 몰입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부적응으로 게임에 의존하게 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따라서 그는 아직 게임과 범죄의 상관성에 대한 명확한 연구결과와 증거가 도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 인과관계를 쉽사리 연관짓는 것은 매우 단선적이고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학계 전문가들은 게임 효과 연구에서 자극에 대한 즉각적 반응을 다룬 이론이 힘을 잃은지는 꽤 오래라는데 입을 모은다. 대개 표본이나 연구기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효과를 측정하는 것 자체가 방법론적으로 어긋날 수밖에 없단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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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명문대생의 묻지마 살인사건, 군대 내 총기 살인사건 등 끔찍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따라붙는 ‘마치 게임을 하듯 사람을 죽였다’, ‘게임 때문이다’와 같은 기사 헤드라인들 역시 무책임한 ‘희생양’ 찾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한편 지난해 10월에는 벤자민 엥글슈테터 유럽 경제연구소 연구원과 스콧 커닝햄 베일러대학교 교수 등이 ‘게임에 몰두하면 할수록 오히려 범죄율이 낮아진다’는 내용의 공동 연구 결과를 발표해 학계와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