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비행 같았던 마이크론 CEO 삶과 죽음

일반입력 :2012/02/06 10:24

손경호 기자

평소 곡예비행을 즐겼던 고(故) 스티브 애플턴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그의 삶조차 그에 못지 않은 위험천만한 비즈니스 세계 속에 있었다. 그가 이끌던 마이크론이 메모리 가격하락과 삼성·하이닉스 등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곡예비행’같은 위험천만한 비즈니스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마이크론 본사가 있는 미 아이다호 보이지 시에서 이륙80초만에 추락해 사망한 스티브애플턴 마이크론 CEO(51)의 삶과 유사한 죽음이 새삼화제다.

씨넷은 블룸버그를 인용, 랜세어처럼 아마추어항공기 제작자가 제작한 경비행기는 3% 남짓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랜세어 경비행기는 지난 11개월 간 치명적인 비행기 사고의 16%를 기록할 정도로 위험한 기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만큼 애플턴 CEO가 위험한 곡예비행을 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실제로 그가 이끌던 마이크론은 그의 곡예비행을 방불케 할 만큼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비즈니스를 벌여왔 다.지난 2분기 동안 마이크론은 파산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겪었다.

씨넷은 마이크론이 연이은 분기손실을 기록하면서 지난 10년 간 흑자를 올린 해가 4년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9년에는 본사가 있는 아이다호주 보이지시 지역의 제조공장을 폐쇄하면서 수 천 명의 근로자가 해고되기도 했다.

보도는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악명 높은 호황-불황의 산업주기 탓에 TI·히타치·NEC·엘피다 등 많은 기업들이 D램 반도체 쪽에서는 릎을 꿇었다. 반면 마이크론은 수 십 년간의 부침에도 살아남았다.

지난 1998년 회장 겸 CEO 자리에 오른 스티브애플턴은 TI의 D램 사업부를 약 8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를 통해 TI가 보유한 D램 특허권을 10년 동안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다. 삼성·하이닉스 등은 TI의 D램 특허에 로열티를 지불했다. 당시 마이크론은 D램의 평균판매가격 하락으로 심각한 손실을 입고 있던 상황이었다.

마이크론의 곡예비행과 같은 과감한 행보는 지난 2002년 하이닉스 인수전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스티브 플턴은 “채권은행들이 출자전환 등 하이닉스에 대한 구제책을 계속 추진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하이닉스 채권단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그러나 하이닉스 이사회가 인수안을 거부하면서 협상이 중단됐다. EE타임스에 따르면 채권단은 48억달러를 인수대금으로 제시했지만 애플턴은 20억달러부터 협상을 시작하자고 말했다.마이크론은 2003년 D램 업계 불황으로 전체 인원의 10%에 달하는 1천800여명의 직원을 해고하면서 추락했다가 인텔의 도움으로 다시 부상한다. 2003년 인텔은 PC프로세서에 패키지 형태로 탑재되는 D램을 마이크론으로부터 공급받기로 하고 4억5천만달러를 투자해 300mm 웨이퍼 팹을 짓고, DDR2램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또한 생존을 위해 지난 2006년부터 인텔과 합작해 플래시메모리 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두 회사는 애플로부터 5억달러의 선수금을 받기도 했다. 인텔과 마이크론의 합작사인 인텔-마이크론 플래시 테크놀로지스(IMFT)는 미국 레히, 유타, 매너서스, 버지니아 지역과 싱가포르에 공장을 갖고 있다.

마이크론은 지난 1970년 세계 최초의 D램인 1킬로비트(Kb)용량의 ‘인텔1103’을 출시했던 인텔이 1985년 사업에서 철수한 지 20년 만에 플래시 메모리 사업에 새롭게 진출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관련기사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11.3%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미반도체공업협회(SIA) 레이 스타타 회장은 작년 11월 밥 노이스 상 수상식장에서 그에게 “메모리 산업을 하면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저돌적이어야 하고, 용감해야 하며, 자신감에 차 어야 한다. 스티브애플턴 CEO는 이런 특성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인물이다”라고 그를 치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