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노조 "경쟁사 이직금지, 비인간적 판결"

일반입력 :2012/01/29 08:51    수정: 2012/01/29 09:01

국내 법원이 특정 IT분야 노동자의 경쟁업체 이직금지를 정당하다고 판결하자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기업비밀보호를 빌미로 노동자 개인의 직업선택자유와 생존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와 13부는 통신장비업체 LG에릭슨이 경쟁사로 이직한 직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전직금지청구소송에서 회사측 손을 들면서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음을 판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하 'IT노조')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공식 성명을 통해 해당 판결이 회사의 비밀은 법으로 보호를 해주면서 거기서 일한 노동자의 생존(권)은 무시하고 길바닥에 내팽개치는 비인간적 행위라고 지칭하면서다.

우선 지난해말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이두형 부장판사)는 LG에릭슨이 노키아지멘스로 이직한 연구원 4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LG에릭슨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지난 25일 같은 법원 민사합의13부(한규현 부장판사) 역시 LG에릭슨이 직원 3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핵심기술 개발자들이 이직에 제약을 받는 약정을 유효하다고 보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직한 직원들은 LG에릭슨 재직시 '퇴직후 1년간 경쟁업체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전직금지계약에 서명했다. 이들이 업무간 접해온 LTE 및 3세대 이동통신장비 등에 대한 기술적 장단점, 중장기 기술개발계획 등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이기에 지나친 제한이 아니란 게 법원 판결이다. 아무리 전직금지계약을 맺었다해도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중시하기보다 기업비밀 보호에 무게를 둔 취지는 뜻밖이란 평가도 나왔다.

이에 IT노조는 지난 26일 성명을 통해 해당 법원 판결이 ▲경쟁업체간 비밀보호를 우선시한 반면 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해 그 생존권을 무시하며 ▲기업비밀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부당한 처우에 대항해 이직하려는 노동자에게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에 법원이 판시한 기업비밀 보호 의무 대상은 고위급 임원이나 간부뿐아니라 일반 사원급까지 열려 있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호 대상으로 봐야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IT노조는 'IT개발자는 재취업도 하지 말란 말인가'라는 제하의 성명에서 (판결을 따르려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온 노동자는 퇴직을 하더라도 상당기간 실업자로 지내거나 자신이 가진 기술을 쓸 수 없는 곳에 취업을 해야 한다며 IT분야에서 노동자 개인이 가진 기술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아예 다른 업종으로 전업을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임금체불로 인해 이직을 고려하는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비밀보호를 내세워 이직을 못하게 할 수 있다며 그때 법원은 (해당 노동자가 다뤄온 기술 가운데) 어디까지가 회사의 비밀인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또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약하고 일방적으로 회사 이익만을 위해 만들어진 이런 법률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를 논할 수 있다는 말이냐며 진정 IT산업 발전을 원한다면 이런 불공평한 법률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IT노조 성명 전문

IT개발자는 재취업도 하지 말란 말인가!

- IT노동자 동종업계 취업 금지 판결에 대하여

최근 법원이 'IT 경쟁업체 이직 일정기간 금지'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중장기 기술개발 계획 등 6가지 영업 비밀은 보호할 가치가 있다'며 경쟁업체간 비밀보호를 우선으로 판단해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각 회사들의 비밀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생존권이다. 법원의 판결을 자세히 보면, 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다.

회사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온 노동자는 퇴직을 하더라도 상당기간 실업자로 지내거나 자신이 가진 기술을 써 먹을 수 없는 곳에 취업을 해야 된다. IT분야에서 노동자 개인이 가진 기술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아예 다른 업종으로 전업을 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회사의 비밀은 법으로 보호를 해주면서도 그 회사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생존은 무시하고 길바닥에 내팽개치는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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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법률은 '회사의 비밀'을 어디까지 볼것인지에 대한 가이드 조차 없어서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대항해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려는 노동자의 발목을 잡는 족쇄의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장시간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체불로 인해서 이직을 고려하는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비밀보호를 내세워 이직을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때가서 법원은 어디까지가 회사의 비밀인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약하고, 일방적으로 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만들어 진 이러한 법률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를 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진정으로 IT산업의 발전을 원한다면 이런 불공평한 법률부터 폐지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