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죽으려고 한강다리에 섰었다. ‘한국 벤처 신화’로 불리던 그에게 ‘워크아웃’ 견디기 힘든 수모였다. 세계 7위 휴대폰 업체가 그렇게 쉽사리 넘어질 줄은 그도 몰랐다.
아찔한 순간, 그렇게 떠나는 게 더 부끄럽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쪽팔려서 못 죽었다. 29살 나이에 아파트 판돈 4천만원과 직원 6명으로 ‘삐삐’ 업체를 세워 승승장구 해온 과거가 너무 아까웠다.
다시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죽을 각오를 재도전에 쏟았다. 당시 4천억원으로 평가되던 지분 모두를 회사 재생을 위해 던졌다. 기업은 망해도 수뇌부는 살아남는다는 일반적 현실과 동떨어진 일이다.
서슬 퍼렇던 채권단도 그의 정성을 믿고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 박병엽 팬택의 2차전이 시작된 장면이었다. 백의종군의 심정으로 공휴일 없이 일했다. 5년 동안 하루도 쉬어본적이 없다고 한숨 쉬며 말했다. 말 그대로 월화수목 금금금의 연속이었다. 피로 누적으로 간혹 병원 신세까지 이어졌다. 집에서 쉬라는 의사의 말도 지키지 못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일했더니 뭔가 되더라. 체력은 감당이 안됐지만 회사는 살아났다.”
그냥 살아난 수준이 아니다. 팬택은 무섭게 부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박 부회장의 승부사 기질과 독기가 통했다.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팬택은 기업개선작업 착수 후 14분기 동안 누적 매출액 7조1천668억원, 누적 영업이익 5천111억원, 영업 이익률 7.1%를 기록했다. 워크아웃 졸업을 코앞에 뒀다.
더 놀라운 일은 스마트폰 시장서의 선전이다. 대표작 베가 시리즈를 내세워 LG전자를 꺾고 국내 판매량 2위에 올랐다. 요금 유행하는 4세대 이동통신 ‘롱텀에볼루션(LTE)’ 스마트폰 시장서는 세계 5위의 강자다. 미국 AT&T는 팬택을 삼성전자와 LG전자 대신 제 1 파트너로 선정했다.
이 같은 결과는 경쟁사 대비 10분의 1 수준인 1천900여명 연구인력으로 이뤄냈다. 박 부회장이 직접 야식을 돌리며 함께 밤을 새우는 등 정성을 다해 키운 인재들이다. “이겨야 한다, 지고는 못 살지...”라는 박 부회장의 말버릇이 일상이 됐다.
이렇게 죽기 살기로 일하자 애플조차 두렵지 않았다. 애플을 향해 “휴대폰은 내가 더 잘 안다. 제대로 붙어보자. 저가 정책으로 시장을 혼란시키지 말아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한국 기업인은 박 부회장이 유일했다.
열정은 여전하지만 체력이 문제. 박 부회장은 올해까지만 근무하고 일선을 떠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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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압력은 없었다.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5년간 휴일 없이 일하다보니 몸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지쳤다. 이제 쉬고 싶다.”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많은 이들의 기대처럼 현장에 복귀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일단 쉬면서 생각해보겠다는 설명이다. 박병엽 없는 팬택이 아직은 잘 상상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