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방송사 밥그릇 싸움, 국민은 없다

기자수첩입력 :2011/11/29 17:16    수정: 2011/11/29 18:03

정현정 기자

지상파와 케이블 간 재송신 분쟁으로 케이블TV에서 지상파 고화질(HD) 방송이 중단 된 지 만 하루가 지났다. 전국 케이블 시청자들의 피해가 가시화됐지만 양측의 기싸움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산한 피해규모는 전국적으로 770만 가구. 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지상파 HD방송을 표준화질(SD)로 시청 중이다.

그럼에도 지상파와 케이블은 협상 결렬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긴다. 그들의 전쟁에 시청자는 안중에 없다.

지상파방송사는 어떤 곳인가. 공영성과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곳이다. 하지만 정작 자사의 이익이 걸리는 문제는 태도가 달라진다.

협상대표로 나선 김재철 MBC 사장이 막후협상에서 가입자당 월 사용대가(CPS)로 100원을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자 공영방송 KBS 노조가 먼저 나서 ‘굴욕적인 협상’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물론 한 편의 방송콘텐츠에 어린 수많은 제작진의 노고가 덤핑 처분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상파방송 스스로를 단순히 돈을 받고 콘텐츠를 판매하는 콘텐츠사업자(CP)가 아닌 이상 이는 시청권을 위협할 도구가 될 수 없다.

케이블사업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지금까지 송출 중단을 지상파와 방통위를 위협하는 협상 카드로 사용했다. 지상파는 무료 보편적 방송이기 때문에 무료로 재송신 해야 한다면서도 정작 그들은 지상파 시청권을 쉽게 여기지 않았나.

지상파 HD방송이 중단되자 각 지역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지상파 방송사의 요청으로 전송이 중단되고 있다”는 안내자막과 함께 각 방송국 대표번호를 노출해 화살을 지상파에 돌리고 있다.

어렵사리 고객센터에 연결이 되어도 서로에 대한 책임 공방에 더해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형식적인 상담원 멘트 밖에 들을 수 없는 시청자들은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지난 24일 김준상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이 양측의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며 “방송 중단은 없다”고 공언한 지 불과 나흘 만이다. HD방송 중단 사태로 방통위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상실했음을 드러냈다.

재송신 공방이 3년여를 끌어왔지만 방송 중단 사태가 가시화된 것은 처음이다. 갈 때까지 갔다는 설명이 적절하다. 주무부처 수장의 읍소와 압박에도 방송콘텐츠의 상업적 목적이 더 중요해졌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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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곪아터질 때까지 방통위는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종합편성을 위한 길 터주기에는 유감없는 리더십을 발휘했던 방통위가 정작 시청권 보호에는 소극적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규제에서는 이례적으로 발빠른 대처에 나섰다. 30일 전체회의에서 지상파와 케이블 양측에 시정명령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지상파 재송신에 대한 법제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시정명령은 임시변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