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헤이그 혈투 ‘재판의 재구성’

일반입력 :2011/09/28 11:28    수정: 2011/09/28 15:31

봉성창 기자

2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법원에서 열린 아이폰 판매 금지 가청분 신청에 대한 심리는 한편의 법정 드라마를 방불케 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각자 승리를 자신했다. 원색적인 비난에 이은 폭로 그리고 반전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이번 재판에서 애플은 배수진을 쳤다. 네덜란드는 유럽 시장의 관문이다. 대부분 유럽 판매 물량이 네덜런드를 거쳐 유럽 각지로 공급된다. 네덜란드 시장 자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곳에서 아이폰 판매 금지 조치가 취해질 경우 유럽 시장 전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훗날 ‘헤이그 혈투’로 기록될 한치 양보도 허용할 수 없는 그날의 재판 과정을 직접 지켜본 한 현지 기자의 트위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이미 루비콘강은 건넜다

“재판관님. 애플은 3G칩에 탑재된 삼성전자의 중요한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특허 사용료와 관련된 협상을 요구했지만 애플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애플의 뤼트거 클레이만스 변호사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준비된 대답을 내놨다.

“우리가 사용한 3G 칩은 인텔로부터 구입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특허가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삼성전자 측 베르그휘스 반 워츠만 변호사는 즉각 반론했다. 애플이 사용하고 있는 3G 칩 중 인텔이 공급한 물량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인텔에게 특허 실시권을 준 것은 지난 2009년까지이며 그 이후에는 특허료를 내지 않았다고 맞섰다.

“애플은 부품을 어디서 공급받는지에 대해 숨기고 있습니다. 인텔 이외에도 10개 회사가 더 있지 않습니까. 그것 모두 특허권 침해 아닙니까?”

삼성전자는 보다 구체적인 사업 정보를 들어 변론하기 위해서인지 방청객을 잠시 내보냈다. 이때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후 애플의 태도가 급변했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 쟁점은 크게 두가지로 압축된다. 애플은 특허 계약을 맺자는 삼성전자의 지속적인 요구에 대해 묵살함으로써 특허의 존재를 알고도 지속적으로 무단 사용한 셈이 됐다.

다른 하나는 삼성전자의 주장대로 애플이 인텔에게만 3G 칩을 공급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동일한 제품에 각기 다른 회사가 만든 동일한 부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애당초 애플이 규격을 정해줘야 한다. 즉 애플이 알고도 삼성전자의 특허를 무단 사용했다는 점을 뒷받침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후 판세는 삼성전자로 급격하게 기운다.

■전세 불리해진 애플, 급기야 비밀 협상 폭로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삼성전자는 애플을 더욱 압박한다. 아이폰 뿐만 아니라 3G칩을 장착한 모든 제품에 대해 판매 금지를 요청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아이패드 3G 모델은 물론 추후 출시될 아이폰5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잠시 휴정 시간을 거친뒤 애플은 ‘매복 특허’라는 개념으로 반격에 나선다. 삼성전자가 표준화된 기술에 자사의 특허를 의도적으로 집어 넣고 시간이 지난후 특허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매복특허와 관련해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반도체 회사 램버스다. 램버스는 그동안 소수의 핵심 반도체 제조 관련 특허를 가지고 삼성전자, HP, 엔비디아, 하이닉스 등 공룡 반도체 기업들을 괴롭혀왔다. 그러나 이후 미국 법원에서 특허 무효 및 각종 소송에서 패소하게 된다.

심지어 애플은 삼성전자를 두고 ‘램버스 보다 더 악독한 회사’라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공방이 계속 이어지자 급기야 애플은 폭탄 발언으로 재판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경악케했다. 삼성전자가 칩셋 가격의 2.4%의 라이선스 비용을 요구했다며 이는 너무 과도하다고 비난한 것이다.

이는 즉각 전 세계 언론을 통해 긴급타전됐다. 재판에서 비공개를 전제로 한 협상 내용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미 삼성전자로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애플은 이 소송을 삼성전자와 협상이 끝난 이후로 연기해야 된다고 법정에 요구했다. 시간벌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서 삼성전자는 핵심을 찌르며 마무리했다.

“소송전을 시작한 것은 애플이 먼저입니다. 저희는 애플을 배려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애플은 자신들이 만든 디자인을 마치 보석 왕관처럼 떠받들면서 삼성전자의 3G 통신 특허는 필요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램버스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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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진 애플은 또 다시 논점을 바꿨다. 삼성전자의 특허는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가졌으며 이는 독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논점을 흐린 애플의 주장에 더 이상 설득력은 없어 보였다.

판사는 애플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여부를 다음달 14일 오후 2시에 결정할 것이라며 심리를 종료했다. 애플의 아이폰5 출시가 임박한 가운데 과연 판매금지 조치가 이뤄질지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