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웹툰 마린블루스, 후속작을 말하다

일반입력 :2011/08/20 11:08    수정: 2011/08/20 11:28

봉성창 기자

네이버도 다음도 지금만큼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그래 봐야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만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을 모두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인기 작가들이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매일 각종 포털에서 연재되는 만화를 보고 하루를 시작한다. 과거 부모 세대가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를 보았듯이 그렇다.

‘성게군, 성게양’

글쎄, 그 언제부터일까.. 웹툰 좀 오래 봤다는 사람이라면,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낯익은 이름이다.

이들이 등장하는 ‘마린블루스’는 웹툰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이전인 지난 2001년 11월 처음 세상에 등장한 만화다. 마린블루스를 그린 정철연 작가㉝ 역시 올해로 데뷔 11년차다.

‘마린블루스’는 마치 정 작가의 그림 일기와도 같다. ‘마린블루스’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주인공 ‘성게군’은 정 작가 본인이다. 성게군이라는 캐릭터와 성게양, 불가사리군, 가리비양 등 여러 해산물 캐릭터를 통해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지금도 마린블루스 홈페이지에는 매일 업데이트 된 정 작가의 만화가 달력처럼 빼곡하게 담겨 있다.

■ 스스로 만화가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마린블루스’를 요즘 생긴 용어로 설명하면 1세대 ‘생활툰’이다. 정 작가가 살고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 생기는 소소한 에피소드나 문득 드는 감정이 만화의 주요 소재가 된다. 재미를 주는 포인트는 ‘공감’이다. 장대한 서사도 극적인 반전도 없지만 매일 올라오는 정 작가의 일상을 보기 위해 수십만 명이 몰린다.

“다른 사람들이 만화가라고 불러주지만 스스로를 만화가라고 소개해본 적은 없어요. 만화 비전공자의 자격지심이라고 할까요? 인기 좀 있다고 스스로 만화가라고 하기 부끄러웠거든요.”

정 작가는 대학을 중퇴했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했지만 원래 기대했던 대학 생활은 아니었다. 휴학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계급이 상병쯤 됐을 때 휴가를 나와 친구로부터 당시 인터넷에 등장한 ‘스노우캣’이라는 만화를 소개 받았다.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군을 제대한 그는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만 가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전형적이고 불확실한 자수성가 스토리다. 일산에 사는 친구 오피스텔에 생활비 15만원만 내고 더부살이를 했다. 좁은 방안에 시커먼 남자 5명이 엉켜 살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인터넷이라고는 e메일 주소밖에 모르던 시절이었어요. 컴퓨터를 잘 아는 친구에게 아주 기본적인 홈페이지 만드는 것과 포토샵 하는 법을 배워 웹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여기저기 뿌렸죠.”

디자이너라면 대부분 하나쯤은 가지고 있던 타블렛을 살 돈조차 없었다. 얼마 못가 돌아올 것으로 생각한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을 애써 외면했다. 어머니가 몰래 보내준 생활비로 빠듯하게 살았다.

“안 그래도 적은 돈에 담배까지 피니까 더욱 쪼들렸죠. 그 와중에도 3만원짜리 지포라이터를 3개월 할부로 사고 그랬어요.”

그러던 중 ‘킴스라이센싱’이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만나자는 것이다. 나올 이야기는 뻔했다. 한달에 얼마간씩 지원해 주고 나중에 잘 되면 많이 줄테니 전속 계약을 맺자는 제안이다.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던 정 작가는 아예 입사를 시켜달라고 졸랐다.

요즘 잘 나가는 웹툰 작가들은 원고료를 받는다. 인기에 비하면 많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에 올리는 만화에 원고료를 지급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만화가는 원래 판매에 따라 인세를 받는데 무료로 제공되는 인터넷 만화에 그런 것이 것이 있을리 만무하다.

‘킴스라이선스’에 입사한 정 작가는 ‘마린블루스’를 연재하며 지금의 배우자이자 당시 직장상사인 ‘성게양’을 만난다. 시즌2에서부터 연인으로 등장한 성게양은 시즌2.5에서 성게군과 결혼하기에 이른다. 정 작가는 2008년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성게양은 지금도 킴스라이선스에 근무한다.

이러한 이유로 ‘마린블루스’는 현재 정 작가가 라이선스를 갖지 않고 있다. 항간에는 정 작가가 회사에 사기를 당해 캐릭터를 빼앗겼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에이 그럴리가요. 어제도 김준영 킴스라이센싱 사장님이랑 저녁에 술을 마셨는데요. 저에게는 서울에 계신 아버지 같은 분이자 마린블루스가 있게 해준 고마운 분입니다. 회사를 그만둔 건 순전히 제가 독립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죠.”

■‘마조&새디’는 마린블루스 시즌3

정 작가의 퇴사와 함께 ‘마린블루스’는 시즌 2007년 12월 31일 시즌 2.5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포털 검색 완성어에 ‘마린블루스 시즌3’가 나올 정도로 후속작에 대한 팬들의 열망도 컸다.

“혼자서 어떻게든 마린블루스 시즌3와 같은 작품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선은 어디에 연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독립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적지 않은 곳에서 연재 청탁도 들어왔다. 학생 시절 ‘마린블루스’를 보고 좋아해주던 팬들이 대부분 기업의 실무자가 되면서부터다.

현재 함께하고 있는 인텔과도 비슷한 이유로 인연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이전에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담당자가 추천해주어 시작된 것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동안 인텔과 함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인텔은 IT기업이지만 크리에이터스 프로젝트와 같은 예술, 문화 분야와 함께 활동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초기에는 PC와 관련한 에피소드로 엮은 만화인 “P씨 이야기”가 연재되었는데, 원래 PC와 자동차, 장난감 등을 좋아하는 ‘키덜트’인 정 작가와도 잘 맞는 분야다.

이후 정 작가의 마린블루스 이후 그 동안 구상했던 새 작품 ‘마조앤새디’를 들고 나온다. 인텔에서 제품과 관련이 없어도 작품을 계속 연재할 수 있도록 배려한데다가, 주 1회 연재도 정 작가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인텔&PC’에서 독점 연재되는 새 작품 ‘마조앤새디’의 캐릭터는 ‘성게’에서 보다 주류에 가까운 곰과 토끼로 바뀐다. 인텔과 연은 맺기 시작해 연재한지 벌써 2년, 최근에는 ‘마조앤새디’ 단행본까지 출간됐다.

정 작가 특유의 다정하고 애처로운 공감대 형성 능력은 ‘마조&새디’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일상을 그리는 만화가에게 일상의 변화는 작품 그 자체다. 곰 ‘마조’와 토끼 ‘새디’는 정 작가와 그의 배우자다. ‘성게군’과 ‘성게양’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조&새디’는 마린블루스 시즌3라고도 볼 수 있다.

정 작가는 스스로 샐러리맨 만화가에서 주부 만화가가 됐다고 말한다. 맞벌이를 하는 덕분에 온갖 집안일은 그의 차지다. 오랜 자취 경험 때문인지 각종 요리는 물론 집안일까지 주부 이상으로 잘 해낸다. 정 작가의 블로그에는 카페를 능가하는 그의 집안 인테리어 감각이 화제다.

독립 후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정 작가가 개인 블로그를 통해 끊임없이 독자들과 소통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의 블로그 게시물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달린다. 그의 알콩달콩한 부부 이야기에 많은 기혼자들은 공감하고 분노하며 미혼자들은 부러워하고 꿈꾼다.

이제는 마조앤새디의 연재 공간인 ‘인텔&PC’를 페이스북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주 1회 연재되고 있지만 페이스북으로 옮겨간 이후에는 분량을 조금 줄이더라도 연재 횟수를 조금 늘려볼 생각도 있다고 한다.

“사실 웹툰을 주 2회 연재한다는 것은 개인 시간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에요.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만화가에게는 더욱 부담되는 일이죠. 그래도 지금보다 더 자주 작품으로 소통하려고 해요.”

갖고 싶은것도 많고 하고 싶은것도 많은 20대의 성게군은 사회 초년병의 비애와 덜 여문 청춘이 앞길을 막고 있는 수줍은 캐릭터였다. 30대의 유부남 ‘마조’는 조금 더 안정돼 보이고 여유가 묻어나지만 여전히 빠듯한 살림과 밀고 당기는 결혼 생활의 소소한 트러블도 엿보인다.

그와 처음부터 함께였을 것 같은 ‘성게양’ 혹은 ‘새디’도, 마린블루스 초기부터 등장해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고양이 루이와 루비도 이제는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작품을 찾는 독자들도 그렇다.

“제가 50대가 되도 만화를 계속 그릴 생각입니다. 그때는 50대 독자분들이 많이 찾아주시겠지요. 만화로 큰 돈을 벌거나 많은 인기를 누리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생활만 어느 정도 뒷받침 되고 연재할 수 있는 곳만 있다면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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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앤새디 블로그 : http://blog.naver.com/majosady

정철연작가 페이스북 : http://www.facebook.com/majos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