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3D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반입력 :2011/06/21 09:08    수정: 2011/06/21 11:22

남혜현 기자

국내 시장을 겨냥한 3D는 실패하게 돼 있습니다. 시장 자체가 없는데, 국산 3D를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얘기죠

우리나라에서 3D 콘텐츠 경쟁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국내산'을 강조하기보단, 해외 유명 콘텐츠 제작업체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고 외화벌이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조성룡 한국리얼3D콘텐츠제작자협회 부회장은 17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굳이 '한국표 3D'라는 타이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며 대신 중국이나 미국 등 대형 3D 프로젝트에 한국의 고급인력이 참여하는 게 더 합리적인 방안이라 강조했다.

헐리우드발 3D 흥행 실패 소식은 국내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올해 3D 영화 기대작이었던 '캐리비안해적4'나 '쿵푸팬더2'의 3D 상영관 예매율이 전년 흥행작을 크게 밑돌았기 때문이다.

일부 외신에선 '가족용 3D의 실패'를 점치며 비싼 표값이 결국 전체 영화산업에 해를 끼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조 부회장은 언론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딱 잘라 말한다. 제작비를 생각한다면 현재 3D 표값이 비싼 것이 아니며, 최근 3D 영화 흥행 부진 이유는 해당 콘텐츠의 스토리도, 3D 기술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3D 콘텐츠 시장은 없다

아바타 같이 관객 눈 앞으로 영상이 휙휙 튀어나오는 3D를 '스테레오스코프'라 부른다. 3D의 역사는 200년이 넘었지만, 본격적으로 관객들이 스테레오스코프 영화를 인지한 것은 제임스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이후다. 아바타는 국내서만 1천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며 3D 시대를 열었다.

문제는 '아바타 이후'다. 관객들이 3D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아바타 같은 제대로 된 콘텐츠를 못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조 부회장의 지론이다. 스토리는 부족한데, 억지로 3D 입체효과만 입혔다던가, 어지럼증을 줄이겠다고 3D 효과를 제한한 것도 모두 관객을 멀어지게 한 이유로 꼽았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콘텐츠 부족은 줄곧 3D 시장 형성을 발목잡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그런데 과연 국내서 잘 만들어진 콘텐츠는 그만큼 잘 팔릴 수 있을까?

광고비로 방송사가 먹고 사는 국내 상황에선 3D 콘텐츠가 성공할 수 없습니다. 3D는 제작비가 더 많이 드는데, 3D 방송이라고 광고비가 더 많이 책정됩니까? 아니에요.

국산 3D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시장 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콘텐츠도 콘텐츠지만, 이걸 제작할 투자자도, 만들어 팔 배급사도, 관람할 이용자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 부회장에 따르면 방송사가 드라마 1부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1억원 정도다. 3D로 찍으려면 제작비가 두 배는 더 드는데, 외주 제작사에서 고품질 3D를 만들어와도 방송사 입장에선 그 비용을 제대로 줄 수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전국 스크린 수는 2천개가 넘지만, 그 중 3D 영화를 틀 수 있는 관은 300여개에 불과하다. 3D 영화를 제작하는 데는 최소 100억원이 드는 게 현실이다. 애써 투자금을 모았다해도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일은 더 어렵다. 이 300개 스크린에 한달 내내 관객이 꽉꽉 들어찬다고 해도, 겨우 손해를 면할 지경이다.

■한국의 롤모델은 미국 아닌 '영국'

이야기를 듣다보면 국산 3D 콘텐츠의 미래는 없는 것 같다. 국내외서 기대를 모얐던 김종학 프로덕션의 '신의'마저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2년째 표류중이다. 천하의 김종학 감독이 그럴진데 국산 3D 콘텐츠를 제대로 제작할 감독이 국내서 있을까?

이와 관련 조 부회장은 우리나라 만의 강점을 이야기한다. 그는 '창의력'과 '기술'만큼은 미국이나 중국도 한국을 따라올 수 없다고 강조한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감성, 창의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준이 높습니다. 퀄리티가 보장되면서 미국보다 인건비도 적게 듭니다. 중국에선 최근 문화 콘텐츠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데, 고급 국내 인력과 손잡을 가능성이 커요.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그는 올해 중국 산둥 임기대학서 창설한 3D 단과 대학의 창립 교수로 참여했다. 중국서 진행하는 3D 영화 프로젝트 '손자병법' 제작에 참여하면서 이 대학서 특강도 함께 맡게 된 것이다. 중국서 오랜 기간동안 문화사업을 해온 경험이 있어, 3D 시장에 대한 분석력을 중국 정부로부터 인정받기도 했다.

조 부회장은 국내선 시장이 눈앞에 없기 때문에 3D에 대한 열기 자체가 없지만, 대조적으로 중국서 3D는 실패한 적이 없다며 중국을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형 프로젝트에 국내 업체들이 주도적으로 잘 참여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전략은 미국이 아닌 영국을 따라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전 세계서 해리포터 시리즈가 벌어들인 돈이 엄청난데, 이 작품을 쓴 작가 조앤 롤링은 영국사람이라는 것이다. 영국이 자체 문화 콘텐츠를 모두 국내서 제작하진 않지만, 창의력과 문학을 바탕으로 큰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산 3D 콘텐츠가 제대로 된 자리를 잡기 위해선 기술과 예술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촬영과 제작 모두 초창기이다 보니 때때로 기술이 예술보다 앞선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과 시나리오작가들이 3D에 맞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져야 해요. 단순히 3D를 구현하기 위한 수학공식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단계부터 3D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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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아기자기한 대사와 상황 묘사에 능한 국내 드라마 작가들이 영화판에 대거 투입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해외와는 달리 영화판에서 드라마 작가를 경시하는 풍조가 사라져야먄 경쟁력있는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해외 대형 프로젝트에 한국인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참여하도록 정부와 예술계 모두 함께 노력해야죠. 또 한국 여성 작가들이 세계 최고라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작가를 우대해야 최고의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죠. 3D 문법을 이해한 콘텐츠 작가들이 늘어나야, 국내서도 제대로 3D에 관한 논의가 피어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