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케이블 없이 잘 되나 보자”

[디지털 전환 기획②]케이블 업계, 지상파 위주 정책에 반발

일반입력 :2011/05/15 08:38    수정: 2011/05/15 18:32

정현정 기자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1년 8개월 앞두고 준비 태세 미비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지상파 위주의 디지털 전환 정책에 힘을 싣기 보다 케이블방송과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디지털 전환 정책에서 소외된 케이블 업계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지상파 위주의 디지털 전환 정책을 고수하면서 케이블 업계는 “케이블TV의 도움 없이 지상파 디지털 전환이 잘 이뤄지나 보자”며 벼르는 중이다.

케이블을 비롯해 유료방송을 통한 지상파 시청가구가 90%에 이르는 상황에서 유료방송과 협력한 실질적인 디지털 전환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상파만 디지털 전환? 케이블도...

케이블 사업자들은 범국가적 디지털전환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케이블TV의 상호보완적 역할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디지털 전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단일 플랫폼으로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케이블이 디지털 전환 정책에서 배제된 데는 ‘유료방송’이라는 한계가 상당부분 작용했다. 정부차원에서 민간 사업자인 케이블에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설명이다. 디지털 전환 정책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입김이 작용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2008년 3월 제정된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 활성화에 대한 특별법(디지털전환특별법)’에도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이라는 주체가 명시됐다. 디지털 전환 작업을 도맡아 추진 중인 ‘DTV코리아’도 지상파가 주축이 된 기구다.이에 대해, 케이블 업계 관계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케이블TV가 배제된 디지털 전환 정책은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케이블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유료방송은 유료기 때문에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유료방송의 디지털 전환 문제를 함께 생각할 때”라면서 “유료방송의 디지털 전환 없이는 실질적인 디지털 방송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지상파 직접 수신 가구는 전체가구의 약 10%에 불과한 반면, 유료방송을 통한 간접수신 세대가 전체가구의 약 90%에 이르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케이블TV 가입자가 80%에 이르는 1천500만 가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많은 수가 아날로그 상품 가입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2013년 디지털 전환 후에도 상당수 시청자들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송을 시청해야만 해 정부에서 얘기하는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는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도 이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방통위 차원에서도 이 같은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수신료를 지급받는 유료방송 사업자를 정부에서 지원하는게 적절한가하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케이블 배제하지 않았더라면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송출이 종료되는 내년 말까지 케이블 방송 사업자들이 디지털 전환을 이뤄내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도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케이블 헤드엔드(H/E)에 디지털 방송을 아날로그 형태로 변환해주는 DtoA 컨버터를 설치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사업자들은 방통위에 헤드엔드 컨버터 구축이나 가정용 셋톱박스 보급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케이블이 공공적 성격을 다소 가지고 있긴 하지만 IPTV나 위성방송을 비롯해 지상파 직접 수신 등 대체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입자 유지를 위한 민간 사업자의 사업을 정부에서 지원해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 “가정에 들어가는 셋톱박스에 대한 지원도 저소득층 지상파 직접 수신 가구에 지원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라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지상파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케이블의 역할론도 제기된다.

정부에서는 DtoA 컨버터 보급을 위주로 한 전환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유료방송 가입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케이블망을 통해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해 전송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다시 불거진 경인KBS와 경인지역 케이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 간 난시청 이슈도 결국 경인지역 SO들이 지상파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바꿔서 송출하기로 하면서 일단락 됐다.

이번 갈등은 경인 지역에 국한돼 있었지만 2013년 디지털 전환 후 이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진석 CJ헬로비전 상무는 “아날로그TV를 통한 디지털 방송 시청을 위해 DtoA 컨버터를 사용하는 방법과 케이블을 통해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어떤 방법이 효율적인지는 불보듯 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인숙 경원대학교 교수도 “애초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며 “처음부터 유료방송과 협력해 정책을 끌어갔다면 전환율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날로그 방송 종료 D-597, 늘어가는 걱정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앞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디지털 전환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관측이 쏟아진다.

오규석 씨앤앰 사장은 “디지털 전환에서 제작과 송출 등 방송사가 담당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부분이 70%를 차지하고 컨버터나 디지털TV 구입 등 시청자들이 가정에서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 30%라고 가정할 때 전자인 70% 중 80%를 케이블이 차지하고 있다”면서 “케이블의 도움 없이 진정한 의미의 100% 디지털 전환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청자 입장에서도 분명한 혜택이 제시돼야 한다”면서 “아날로그TV를 통해 디지털 상품을 이용하는 시청자 입장에게는 분명한 혜택이 없이 디지털 컨버터나 디지털TV를 구매할 아무런 유인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종합편성채널 관계자는 “업계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면서 “전체 1천800만 가구 중 직접 수신세대를 10%로 가정한다면 180만에 이르는 가구에서 2013년 1월1일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됐을 때 대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지적을 반영해 현재 방통위 차원에서도 지난 1월부터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 연구반’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연구반에서는 케이블TV 아날로그 상품 가입자 보호 방안과 아날로그 방송 송출 종료 이후 케이블TV 아날로그 상품 유지 기간을 비롯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시청각 장애인의 시청권 보호 방안과 HD 프로그램 방영 확대를 통한 서비스 질 개선 등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이와 함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케이블방송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유료방송 관계자는 “IPTV나 위성방송은 선명한 HD 화질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가입자들도 이미 디지털 방송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케이블TV 사업자들도 망 고도화와 셋톱박스 구축 등 디지털 전환 위한 노력을 선행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 유료방송에 비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케이블TV가 스스로 디지털화에 대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경쟁 플랫폼 견제에만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기현 대표도 “지난 2003년부터 케이블의 디지털 전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8년이 지난 지금 겨우 350만 정도의 가입자가 디지털로 전환한 상태”라며 “디지털 전환은 이미 정부 주도의 사업에서 사업자 스스로 시급성을 절감하고 뛰어들어야 하는 ‘마이 비즈니스’가 됐지만 업계에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재순서]

①‘디지털 컨버터’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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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디지털 전환? “케이블 없이 잘 되나 보자”

③아날로그방송 700MHz 주파수 ‘누가 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