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캐시는 인터넷 발전속도와 맞물려 흐름을 많이 탑니다. 회선비용이 싼 한국에선 지난 10년간 캐시에게 큰 기회가 없었죠. 이제 때가 됐습니다. 스마트TV 시대를 앞두고 캐시가 시장에서 큰 기회를 만나게 될 겁니다.”
캐시전문업체 아라기술의 이재혁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차세대 캐시제품 ‘재규어MDC’를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10년 넘게 캐시분야만 파온 이재혁 대표는 과거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내보이면서도 다가올 희망을 전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에서 웹캐시는 잠깐 떴다 가라앉았다. 웹캐시는 90년대 후반부터 닷컴 열풍과 함께 2000년대 초반까지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얼마 안가 ADSL 초고속인터넷이 급속도로 퍼졌고, 회선비용이 캐시도입비용보다 저렴해지면서 캐시는 잊혀져갔다.
아라기술의 캐시사업은 이후 인터넷 발전추세와 운명을 함께 했다. 인터넷이 빨라질수록 아라기술의 매출은 줄었다.
아쉬운 점도 많았다. 이 회사는 창업 초기 DNS망 분할에 기반한 CDN제어 기술과, 탭을 활용한 P2P 트래픽제어 기술을 세계최초로 개발했다. 엄청난 화제를 모았지만 돈이 부족해 국내 특허밖에 따지 못했다. 결국 해외의 후발업체가 글로벌 시장을 차지해버렸다.
이같은 상황에서 회사는 궁여지책으로 활로를 해외에서 찾았다. 동남아시아, 중동 등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곳에 캐시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해외 매출이 전체의 75%를 차지하는 사업구조를 갖게 됐다.
“10년전 한국이나 일본은 ISP에서 캐시를 대거 도입했다가 회선료가 싸지면서 쓰지 않았죠. 반면, 동남아는 회선료가 비싸고, 중동 아랍권 국가들은 종교상 문제로 캐시를 사용해야 했어요. 그러다보니 국내보다 해외에서 1위를 차지하고 더 알아주는 회사가 됐지요.”
해외 사업이 잘 나간다면 캐시를 잘 쓰지 않는 국내 인터넷환경에서 굳이 기회를 모색할 동기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아라기술은 여전히 목마르다. 아니, 목말랐다기보다 퀀텀점프를 꿈꾼다는 게 맞겠다.
“캐시에게 새로운 기회는 동영상 트래픽입니다. 스마트TV, IPTV 등의 HD급 동영상이 인터넷 트래픽을 차지할 거고, 통신회선은 압박에 시달릴 겁니다. 그러나 회선증설이나, QoS 등으로 해결하기에 비용이나 시간도 많이 들지요. 여기서 재규어MDC같은 차세대 캐시기술이 주목받게 될 거라 봅니다.”
아라기술의 재규어MDC는 하나로 구성됐던 캐시장비를 수집(컬렉터), 저장(MDC팜), 분배(리다이렉터) 등 세 요소로 분리시켰다. 컬렉터와 MDC팜이 트래픽 병목 구간에 설치돼 동영상 등 고용량 콘텐츠를 캐싱하고, 리다이렉터는 사용자 요청 콘텐츠의 용량에 따라 MDC팜과 백본에서 파일을 받아 서비스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일반 웹페이지를 이용하면 백본에서 콘텐츠를 바로 전송하고, 동영상 콘텐츠를 이용하면 MDC팜에 저장된 캐싱 데이터를 받아 서비스하는 형태다. ISP의 WAN 구간을 오가는 동영상 트래픽이 백본에 집중되지 않고, MDC팜과 리다이렉터 사이만 오가므로 전체 대역폭에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아라기술이 재규어MDC를 내놓게 된 계기는 점점 늘어나는 동영상 트래픽 때문이었다. 한국은 늦은 편이지만 해외에서 변화의 조짐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업체와 통신사업자(ISP) 간 맞대결이 펼쳐졌다. 인터넷 회선료를 사전계약 외에 추가로 더 내느냐 마느냐를 놓고 벌어진 싸움이었다.
발단은 온라인 DVD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의 CDN을 담당한 ‘레벨3’에 ISP ‘컴캐스트’가 추가 회선사용료를 요구하면서부터다. 예상한 것을 훨씬 상회한 트래픽이 나오면서 컴캐스트가 부담을 느꼈고, 용량증설 비용을 CDN사업자와 분담하겠다 구상한 것이다. 이처럼 동영상은 콘텐츠 사업자나, 통신사업자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동영상 비중은 세계적으로 더 늘어날 겁니다. 넷플릿스, 애플TV, 스마트TV를 많이 쓰면, 트래픽 폭증이 백본을 잡아먹을 거란 판단을 했죠. 때마침 1~2년전 일본에서 동영상 트래픽에 대한 큰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일본 총무성이 제조사, 통신사를 모아서 안정적인 동영상 서비스를 만들자고 나섰죠. 동영상 환경에서 대역폭을 절감할 수 있고, 끊김 현상도 방지해주는 방안으로 지난 10년의 캐싱 지식을 담아 MDC를 개발했습니다.”
왜 굳이 수집과 제어를 분리시켰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 이는 인터넷망의 업링크와 다운링크 속도가 다를 경우 캐시를 설치할 수 없는 구간이 많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됐다.
“10년정도 캐시환경을 보면서 발견한 게 설치하기 어려운 구간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여러 제약을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수집과 제어를 분리하면 융통성 있게 적용 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죠. 또, 수집 매커니즘은 IP어플라이언스 사업으로 이미 쌓아놓은 상태였습니다. 탭을 달아서 트래픽을 모니터링 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를 잘 결합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죠. 탭을 달아서 데이터를 대량으로 수집하고, 이걸 재사용하면 유용할 거라 생각했어요.”
이 대표는 단순히 통신사의 비용절감만 강조하지 않았다. 고객들이 MDC도입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기존 구조에서 동영상 폭증은 QOS로 해결 할 수 없죠. 예를 들어 IPTV 동영상의 QOS를 맞추려면 가장 가까운 쪽 데이터센터의 팜으로부터 바로 데이터를 받아오는 구조여야 합니다. 재규어MDC를 각 전화국에 동영상 캐시팜으로 구축하면, 콘텐츠 제공자와 통신사간 전송이 직결되는 형태로 만들 수 있어요. 통신사가 자체적인 CDN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통신사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라기술은 해외에서 더 알아주는 회사다. 그럼에도 재규어MDC의 초점을 한국과 일본에 먼저 둔 이유는 세계에서 인터넷 환경 변화가 가장 빠른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주요 공급사례를 만들면, 후발국가에서 강력한 레퍼런스로 작용한다.
“동남아, 중동에서의 인지도를 미국과 유럽으로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글로벌 기업들과 OEM계약을 맺어 공급하면서 시장을 넓혀갈 거에요. 또, 모바일회사에서 캐시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데, 모바일 솔루션을 더 보강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캐시구조를 통해 동영상 트랜스코딩, 압축 연산 수행 등을 모바일에 넣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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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의 경험은 이 대표와 아라기술에게 뼈아프기도 했지만 권토중래를 꿈꿀 힘을 줬다. 이 대표는 MDC만큼은 CDN이나 P2P 특허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충분하지 않지만 글로벌 마케팅 체제도 갖췄다. MDC를 계기로 진짜 글로벌 SW회사로 커가고 싶다는 포부를 분명히 했다.
“작더라도 글로벌 SW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SW 매출의 비중을 70%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SW회사가 우리 성격이에요. 그동안 아시아 회사 정도였다면 이제 그 벽을 넘어 글로벌 트래픽 제어 전문회사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