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와 시스코시스템즈의 가상화 네트워크 표준을 둘러싼 논쟁이 끝없다. 서버 가상화를 지원하는 스위치 관리기술을 놓고 다투는 모습. 네트워크에 국한된 듯하지만 데이터센터 전체를 장악하려는 각자의 셈법이 녹아있다.
서버 가상화는 운영 애플리케이션과 용도에 따라 수많은 가상서버(VM)를 생성하게 된다. 또 VM은 사용여부에 따라 생멸을 반복하고, 물리적인 서버를 이동한다. 리소스가 더 여유로운 서버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를 VM모션, 혹은 V모션이라 부른다.
VM은 네트워크 연결을 위해 움직이거나 새로 생길 때마다 IP주소와 보안정책을 새로 할당받아야 한다. 보통 이 작업은 서버에서 자동으로 수행하게 된다. 네트워크 업계는 VM모션에 따른 IP할당, 보안설정 작업을 서버가 아닌 스위치에서 수행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업체별로 기술을 구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때문에 IEEE 표준화 작업이 진행중이다. 현재 벌어지는 표준화 싸움은 시스코와 HP를 비롯한 주니퍼네트웍스, 브로케이드, 익스트림네트웍스 등 네트워크업체 연합군의 대결구도를 보인다.
■움직이는 가상 서버를 잡기 위한 방법론
시스코는 802.1Qbh란 표준을 일찌감치 개발해 자사 제품군에 포함시켰다. VN태그라 불리는 이 기술은 데이터센터 전체에 가상 스위치를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서버의 네트워크 카드에서 보안정책 및 VM관리, IP할당 등의 태깅작업을 자동화한다.
반대편의 연합군이 지지하는 표준은 802.1Qbg로 불리는 표준이다. VEPA(Virtual Ethernet Port Aggregation) 기술 표준이라고도 표현되는 이 기술 역시 가상 스위치 할당 작업을 서버가 아닌 물리적 스위치에서 관리하도록 한다.
시스코를 향한 공격은 주로 연합군 전면으로 나선 HP의 몫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HP는 모든 네트워크업계가 802.1Qbg표준을 따르는 상황에서 시스코만 802.1Qbh를 고집하고 있어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뮬렉스, 브로드컴, 인텔 등 네트워크 카드 제조업체의 부담가중도 지적했다. 시스코가 802.1Qbh에 대한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스코 스위치와 HP의 서버를 연결하려면 네트워크 카드(NIC)는 802.1Qbh, 802.1Qbg 모두를 지원해야 한다. 케이블링 역시 복잡해질 수 있다.
시스코는 이를 전면 부정했다. 네트워크 표준은 고객 편의를 우선해야 하며, VN태그와 파이버채널오버이더넷(FCoE)를 결합해 기존보다 훨씬 단순하고 효율적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맞섰다.
■표준화 대결 최종 승자는?
IEEE 표준화 작업은 향후 2~3년내 마무리될 전망이다. 그때까지 시스코와 네트워크업계의 논쟁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현재 구도를 보면 ‘1대多’이기 때문에 시스코가 절대적으로 불리해 보인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서버 가상화 플랫폼의 절대다수인 VM웨어의 행보 때문이다.
최우형 시스코코리아 부장은 “802.1qbh는 VM웨어가 지지하는 표준이다”라며 “아무리 많은 네트워크업체에서 802.1qbg를 지지한다고 해도 실제 대다수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VM웨어 하이퍼바이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숫자논리로 싸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VM웨어의 하이퍼바이저는 시스코의 VN태그 기술에 무게를 싣고 있다. VEPA 표준의 경우 VM웨어 연동성은 떨어진다. 하이퍼바이저 시장에서 VM웨어의 비중이 월등히 앞선 만큼 가상머신과 네트워크의 결합을 고려하면 시스코가 앞선다는 것이다. 시스코가 고객 편의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이유다.
VEPA 진영 역시 이같은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VM웨어가 언제까지 시스코만 지지할 것은 아니란 논리를 편다. 스위치 시장의 시스코 아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타 네트워크 업체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성로 한국주니퍼네트웍스 이사는 “시스코는 서버 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존 스위치 시장 장악력을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며 “그러나 시스코의 서버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스위치 사업마저 흔들리고 있어 표준화에서 유리하다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안 와이팅 브로케이드 부사장도 “지금 당장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각 분야의 1위가 몇년 뒤에도 1위란 법은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스코 표준은 결국 종속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 고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 주장했다.
■시스코와 HP, 모두 데이터센터를 노린다
HP가 시스코를 공격하는데 가장 적극적인 이유는 그 덩치뿐 아니라 데이터센터를 두고 벌이는 전쟁 때문이다. 시스코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서버시장을 노리고, HP가 서버를 기반으로 네트워크시장을 노리면서 발생한 장면이다.
시스코는 지난 2009년 유니파이드 컴퓨팅 시스템(UCS) 서버를 출시하며 x86서버 시장에 뛰어들었다. EMC, VM웨어와 함께 데이터센터 전 분야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다. 시스코의 계산은 당연히 시장 점유율 70%에 달하는 스위치에서 비롯됐다.
네트워크를 시스코 표준으로 운영하게 되면 당연히 나머지 데이터센터 인프라도 그에 맞춰 갈 수밖에 없게 되고, 시스코의 계산은 맞아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HP 역시 지난해 쓰리콤을 인수하며 네트워크 장비사업을 강화했다. 시장 50%를 장악한 x86서버에 자사 스위치를 포함시켜 토털솔루션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HP는 공개표준에 기반한 아키텍처를 강조한다. 아무리 네트워크사업을 강화한다해도 현상황에서 HP의 주사업은 서버기 때문에 스위치만큼은 타 네트워크업체의 공간을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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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표준을 통해 시스코 스위치의 시장장악력을 없애고, HP의 서버, 스위치, 스토리지 등 전사업을 원활히 확대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조태영 한국HP 상무는 “HP의 전략은 데이터센터에 존재하는 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HP를 포함해 특정 업체에 올인하는 인프라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까지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