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500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솔루션 시장이 격랑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 업계 판세도 180도 바뀌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집어삼킨 오라클과 올초 서버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데 이어 EMC와 합작법인까지 설립한 시스코시스템즈가 IBM과 HP를 위협할만한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면서 IBM, HP, 델이 중심이된 현재 판세는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오라클과 시스코 모두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거대 기업임을 감안하면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데이터센터 인프라 시장은 내로라하는 거물급 기업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다자간 경쟁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버와 스토리지 그리고 네트워크는 물론 관련 SW까지 통합 패키지로 제공하는, 이른바 시스템 전략도 이슈로 떠올랐다. 시스템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메인프레임 개념이 부활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업체간 합종연횡과 비용 절감을 위해 IT인프라 통합에 적극적인 기업들의 행보가 연출하고 있는 장면들이다.
■오라클과 시스코의 가세, 별들의 전쟁 개막
오라클과 시스코의 가세는 데이터센터 플랫폼 시장이 사실상 IT업계를 대표하는 공룡 기업들이 총집결한 '별들의 전쟁' 구도로 재편됐음을 의미한다. 각자 영역을 호령하던 '강호의 고수'들이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전면전을 펼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아주 흥미로운 판세다.
시스코는 EMC와의 합작법인 설립으로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 시장 공략을 위한 제품 라인업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자사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에 EMC 스토리지와 보안 그리고 VM웨어 가상화 기술을 통합해 대형 고객들에게 원스톱 데이터센터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는 의미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는 시스코와 데이터센터 플랫폼 시장을 주도하고 잇는 IBM, HP, 델간 경쟁이 더욱 거세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동지에서 순식간에 경쟁자로 돌변한 HP와의 승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HP는 시스코가 서버 시장에 뛰어들자 독자적인 프로커브 네트워크 사업을 강화하며 시스코의 아성을 뒤흔들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스코의 데이터센터 전략에 대해서도 내놓고 평가절하하는 모습이다.
닐 클래퍼 HP 아태지역 서버&스토리지 사업 담당 부사장은 최근 "HP는 오랫동안 IBM, 델과 데이터센터 사업에서 경쟁해왔다"면서 "시스코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시스코와 EMC의 합작법인 설립으로 델과 EMC간 협력이 어떻게 될지도 주목된다. 델은 그동안 EMC 중형급 스토리지를 판매해왔다. 그러나 EMC가 경쟁 업체인 시스코와 손을 잡음에 따라 두 회사간 긴장이 목격되고 있다.
델은 시스코와 EMC 합작법인에 대해 "고객들인 폐쇄된 기술 아키텍처를 찾고 있다고 가정하고 만들어진 것"이라며 "90년대로 후퇴하는 행보다"고 깎아내렸다. 공급 업체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델의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네트워크 사업부의 프라빈 아스타나 부사장은 "고객들은 클라우드 컴퓨팅 워크로드는 개방과 표준 기반 솔루션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스코와 EMC가 합작법인을 통해 제공하는 솔루션은 관리 SW 부분이 약하다는 얘기도 있다. 자동으로 애플리케이션 용량을 프로비저닝하는 수준급 관리SW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톰 비트먼 애널리스트는 "시스코의 긴밀한 파트너인 BMC가 이번 협력에 포함되지 았다는 것에 놀랐다"면서 관리SW 부분을 지적했다.
썬을 인수한 오라클도 데이터센터 인프라 시장에서 대형 변수로 급부상중이다. 오라클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인수를 계기로 SW중심 기업에서 하드웨어까지 아우르는 종합 시스템 사업자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최근 열린 오픈월드 컨퍼런스에서도 오라클은 하드웨어 사업을 계속 키워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오라클은 HP보다는 IBM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 오픈월드 컨퍼런스에서도 IBM을 상대로 직설적인 수사학을 구사하며 일대일 대결을 펼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오라클과 시스코의 행보는 모두 IBM이나 HP같은 포괄적인 시스템 사업자로 변신하기 위한 전술로 풀이된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얘기다.
힐 메사비 그룹의 데이비드 힐 애널리스트는 이위크 인터넷판을 통해 "오라클과 시스코같은 회사는 성장을 원한다"며 "지금 주력하는 시장밖에 진출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인프레임 코드 부활하는가?
오라클과 시스코의 행보는 하드웨어와 SW를 미리 통합한 뒤 최적화시켜 제공하는, 이른바 시스템 전략이 다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스코와 EMC는 이번 합작법인을 통해 서버, 스토리지, 보안, 가상화, 네트워크를 통합한 V블록을 판매하게 된다. V블록은 기업들이 내부용으로 쓰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오라클도 썬 인수를 통해 서버와 스토리지, 미들웨어에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까지 묶은 시스템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IBM 메인프레임에 담긴 코드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70년대까지 컴퓨팅 시장을 주도하다 90년대들어 클라이언트서버(CS) 기반 분산 환경에 자리를 내준 메인프레임 스타일이 차세대 데이터센터를 통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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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지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기술설비와 서비스에 쓰이는 비용은 연간 3천500억 달러 이상이다. 이중 절반 이상은 장비 구입 비용에 절반은 서비스와 인건비 같은 운용 비용에 쓰이고 있다.
오라클과 시스코의 변신은 또 엔터프라이즈 IT시장이 소수 거대 기업들에 의한 독과점 체제가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업체 움직임 하나하나가 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점점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일단 도입하고 나면 고객들의 협상력은 약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