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 등 게임 이용환경이 급변하면서 낡은 규제로 지적된 사전심의제 개선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산·학계 전문가들과 정치권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15일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실 주최로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심의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조금씩 다른 이견을 보이면서도 게임사전심의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자율등급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축사를 맡은 모철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시급한 오픈마켓 게임에 대한 민간 자율 등급을 먼저 도입하고 현행법에 대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테스크포스팀(TF)도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김민규 교수(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가 주제 발제를 맡았다. 토론자로는 전창준 정책지원부장(게임물등급위원회), 김성곤 사무국장(한국게임산업협회), 천영진 운영자(게임개발커뮤니티 니오티), 이경화 단장(학부모정보감시단), 정덕영 대표(바르시아 스튜디오), 이기정 과장(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이 나섰다.
■게임사전심의제 뭐가 문제인가…글로벌 점점 멀어진다
게임심의제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른 것은 지난달 이른바 '주차장 지붕' 사건 이후였다. 게임 개발자가 세든 건물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게임제작업체 등록증이 발급되지 않았고, 게임물 사전심의 신청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이 인터넷에서 떠들썩해진 것이다.
사연의 당사자인 정덕영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등급 신청 절차 역시 까다로웠다고 토로했다. 정 대표는 해외 앱스토어에 게임을 올릴 때 세법을 확인해야 하는 일본을 제외하고 모든 나라가 몇 번의 클릭으로 해결됐으며 별다른 행정적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민규 아주대학교 교수는 현행법상 우리나라는 모든 게임물에 대해 사전에 등급심의를 받거나 등급심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인받아야 한다며 환경 변화로 게임물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생각할 때 등급심의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비합리적”이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사전등급분류가 사회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게임물에 대한 사전 예방의 의미로 규제적 성격과 함께 게임물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합리적 이용을 촉진하는 일종의 진흥 성격도 갖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김 교수는 국내 사전 등급분류는 공공정보서비스의 성격보다는 규제적 역할이 강화됐다며 그러다보니 사실상 규제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될 게임물에 대해서도 규제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창준 게임물등급위원회 정책지원부장 역시 사전등급분류라는 법조항이 갖고 있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서 일명 오픈마켓 조항이 담긴 게임법 개정안이 신속하게 처리되면 조금 숨통이 트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자율등급제 도입해도…끝나지 않은 논쟁 '셧다운제'
이날 토론자들은 게임 심의제도를 자율등급제로 전환하는 것에는 큰 틀에서 합의했지만,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셧다운제 등이 담긴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계속 추진될 시, 게임산업 육성책은 모순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민규 교수는 우리나라는 할 수 있는 게임과 할 수 없는 게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게임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에 논의를 맞추고 있다며 규제를 철폐하자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 규제를 개선하자는 것이라는 목소리를 냈다.
전창준 부장도 등급분류 자율화를 위해선 청소년보호법 개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해석을 내놨다. 전 부장은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없어도 모든 게임물은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청소년유해매체물 검사를 받게 될 것고 지적했다.
게임법 개정안이 통과돼 자율 심의제가 되더라도 청소년보호법 개정이 없다면 게임물은 여전히 사전 검열에 가로막힌다는 진단이다.
김성곤 게임산업협회 사무국장도 등급심의 자율화는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할 문제지만, 셧다운제 등 게임산업을 옥죄는 여타의 규제들이 남아있다면 개발자가 게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더라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기정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문화부와 여성가족부가 합의를 봤다고는 하지만 셧다운제는 여전히 문화부 내부에서도 이견이 많은 사안이라며 신임 문화부 장관이 재논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해결토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자율등급 충분조건은 있는데…사회적 신뢰가 담보된 시기, 명분이 실린 주체가 '필요조건'
김성곤 사무국장은 자율등급의 실효성에 대해 법정등급과 자율등급 중 어느 것이 강력하냐고 물으면 스스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자율등급이 더욱 엄격하고 세분화된 기준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정덕영 바르시아 대표도 게임회사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소비자라며 이들이 스스로 선정성과 폭력성의 강도를 낮추는 자정 시스템이 구축될 때 게임에 대한 사회적 신뢰망도 마련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시기와 주체, 방법에 대해선 신중론에 힘이 실렸다. 김민규 교수는 게임을 생산·수출하는 대부분 국가가 법정 사전심의제가 아닌 자율 사전심의제를 시행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업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쌓이지 않았고, 자율등급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전면 시행은 용이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규제 개선의 문제제기를 촉발시킨 오픈마켓 게임물에 대한 특례조항이 국회 계류 중인데 태블릿PC와 PC용 앱스토어의 등장은 오픈마켓 범위 확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전창준 부장도 자율등급분류를 운영하고 있는 방송법의 경우, 제작자나 송출자가 고의적으로 등급을 위반하면 송출 차단이나 주파수 회수같은 강력한 제재가 가해진다며 게임이 그러한 법적 조건을 갖출 수 있는 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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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등급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남았다. 이경화 학부모정보감시단 단장은 사업자와 이용자 간 간극이 분명 존재한다며 사업자들이 게임물 자율규제에 책임갖게 하려면 누군가의 견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기정 과장은 자율심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많은 만큼 현재 계류 중인 개정법을 조속히 처리하고, 향후 관련 기관과 업계 의견을 수렴해 하위 조항들을 세밀하게 다듬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