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레노버 "저가형 PC로 승부하진 않겠다"

일반입력 :2010/12/16 11:45

남혜현 기자

레노버가 기업시장에서 위상이 약해졌다고요?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파트너사가 다변화됐다는 게 맞는 말이죠.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씽크패드 구매처가 두터워졌다고 봐야 해요.

씽크패드가 레노버로 인수된 후 기업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 박치만 한국레노버 사장은 딱 잘라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올해 레노버와 함께 일을 하기로 결정한 기업 숫자가 늘었다고 받아친다. 예전처럼 특정 대기업에 물량을 대거 공급하던 직판 모델보다는 지금처럼 적은 숫자라도 꾸준히 여러 업체에 나누어 들어가는 것이 안정적인 사업모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15일 서울 신대방동에 위치한 한국레노버 지사에서 기자와 만난 박치만 사장은 당장 점유율 등락에 조급해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장별 접근법에 대한 전략을 세워놨기 때문에 내년에는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임을 강하게 자신했다.

박 사장에 따르면 한국레노버에게 올해는 의미있는 시기였다. 기업 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레노버는 올해 넷북에서부터 하이엔드급 모델까지, 아이디어패드 라인업을 전부 구축했다. 국내서 치러진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에도 기술지원을 하는 등 마케팅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씽크패드와 아이디어패드라는 두 가지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그가 내거는 다음 목표다.

■저가정책, 오래 가지 못한다

업계 일각에선 박 사장의 자신만만함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내년 PC시장이 그 어느때보다 치열해 질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우선 애플의 성장이다. 맥북에어는 출시되자 마자 초두물량이 동날 정도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에이서도 상반기 지사설립을 예고하며 가격을 무기로 한 제품군을 대거 출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박 사장도 이런 분위기를 모르지는 않았다. 삼성전자, 델 등 국내외 유수 PC기업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유통통'으로 불려왔던 그다. 그러나 박 사장은 이같은 경쟁업체들의 전략이 레노버의 성장에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할 것이라 자신했다.

단지 제품가격을 싸게 내놓는 것은 단기적인 해법일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전략은 될 수 없죠. 제조업체 입장에선 빨리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물건을 싸게 시장에 밀어내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오히려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최신 기술이 적용된 신제품을 쓰고 싶어하거든요.

소비자 선택의 1순위는 품질이라는 이야기다. 얼리어답터가 많은 한국시장이니만큼 신형 프로세서 등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제일 먼저 제품에 채택할 수 있는 업체가 경쟁력이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단연 레노버가 앞섰다는 뜻이다.

지난 18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씽크패드가 단일 브랜드만으로 누적판매 6천만대를 돌파했어요. 계산해보면 1분당 14대 꼴로 팔려나간 거에요. 오랜 시간동안 선택받았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씽크패드의 품질을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되죠.

그럼에도 가격은 민감한 문제다. 이에 대해 박 사장은 시장에 맞는 적당한 대응을 주문한다. 무조건 단가를 낮춘다기 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격대에 맞는 제품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말처럼 들려도 따져보면 개념이 다르다.

무조건 가격만 싸다고 시장이 넓어지는 건 아니에요. 가격대에 따른 제품군을 시장 요구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을 하면 되는 거죠. 예컨대 넷북 수요가 많을 때 레노버도 '아이디어패드 S시리즈'를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 제품 가격은 70만원대였어요. 경쟁사에 비해 절대 싼 가격은 아니었죠. 반응은 대박이었어요. 좋은 제품을 적정가격에 내놓으면 소비자들은 선택합니다.

■제대로 된 기획 가져오면 풀어놓을 돈 있다

그는 '혁신'과 '합리'가 단지 제품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제품만큼 유통에서도 혁신과 합리가 핵심 키워드라는 설명이다. 유통채널이 제조업체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중간 다리인만큼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레노버의 성장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국레노버는 올해 자사 제품을 유통하는 채널 역량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전한다. 채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윈윈전략'을 짜겠다는 것이다.

유통업체를 만나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있다는 거죠. 레노버 노트북을 더 많이 팔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투자할 생각이 있어요. 시장을 교란시키는 가격정책말고, 소비자들의 마음을 훔칠 프로모션을 내년에는 유통업체들과 함께 진행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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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대리점에 자주 방문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소비자 점점이 많은 판매처에서 진짜 필요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고 생각해서다. 판매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노트북 가방 품질 개선 등도 그가 현장을 돌아다니며 얻은 아이디어다.

내년에는 제품을 판매하는 총판이나 대리점에서 레노버 때문에 돈을 좀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칭찬도 소비자들에게 듣고 싶고요. 저희 입장에선 좋은 제품을 꾸준히 내놓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