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업체 대표, 왜 '신뢰의 상실'을 우려하나

일반입력 :2010/11/04 14:51    수정: 2010/11/04 18:40

김희연 기자

고객의 신뢰를 잃게될까봐 두렵다.

어느 영업 사원의 '립서비스'가 아니다. 요즘 가장 고민하는 화두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엔지니어 출신 보안 업체 대표가 진지하게 했던 말이다.

최첨단 기술을 얘기할 줄 알았다. 글로벌 보안 업체들과 자웅을 겨루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할 줄 알았다. 그것도 아니면 경기 침체에 따른 매출 하락을 걱정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고객의 신뢰'라고 하는 다소 거룩한 담론(?)을 화두로 던졌다.

네트워크 접근 통제(NAC) 솔루션 전문 업체 지니네트웍스 이동범 대표 얘기다. 그는 어울림정보기술 연구소장을 지낸 '기술통'이다. 2005년 지니네트웍스 창업 이후에도 개발 프로젝트를 이끄는 기술과 친숙한 경영자다. 이런 백그라운드를 가진 그가 고객 '신뢰의 상실'을 가장 우려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보안 업체가 신뢰를 잃으면 그걸로 끝이 잖아요? 보안 업계를 오랫동안 지켜보니, 고객 기반이 튼튼한 업체들이 롱런하더라고요.

언제부터인가 보안 전문 업체에 있던 많은 인력들이 포털이나 통신 서비스 업체 등 큰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유명 보안 전문가들이 솔루션을 개발하는게 아니라 사용하는 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보안 업체들 입장에서 보면 박수칠만한 상황은 아니다. 어설프게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했다가는 똑똑한 고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민망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안 솔루션 개발 업체가 민망한 상황에 빠진다는 것은 고객들의 신뢰를 상실할 수 있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설프게 보이는 보안 업체에 믿고 일을 맡길 수는 없는 법이다. 이동범 대표가 가격 경쟁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단기 성과보다는, 다소 느리더라도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키워드는 결국 신뢰였다.

지니네트웍스는 국내 대표적인 NAC 업체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매출 4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70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파트너사들이 고객들에게 판매한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지니네트웍스 관련 매출 규모는 더욱 커진다.

이동범 대표에 따르면 안전하지 않은 단말기가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해주는 NAC는 다른 보안 솔루션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그러나 우여곡절도 많았다. NAC가 국내에 선보인 것은 2000년대 중반이지만 아직도 대중화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다보니, 확실하게 대세를 타지 못한 것이다. 이동범 대표는 이렇게 얘기한다.

NAC 모델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것은 시스코시스템즈에요. 그러나 당시 시스코가 추구했던 방식은 고객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했어요. 구축도 어려웠고, 타사 장비와의 호환성도 떨어졌습니다. NAC를 도입하면 시스코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고요.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민간 기업들 사이에서도 NAC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관리가 복잡하다는 문제도 개선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동범 대표는 NAC가 당초 기대보다 더딘 성장을 보여왔던 것은 복잡한 환경과 관리의 어려움 탓도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제품 개발에 있어 이 부분을 크게 고려하는 이유다.

초창기 NAC는 사람들을 일렬로 쭉 세워놓고 안전하다고 검증된 사람들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개념이었어요. 보안을 위해서는 좋을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귀찮고 시간도 오래걸릴 수 밖에 없죠. 지니네트웍스는 일단은 문을 열어주고, 의심이 되는 사람만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사용자 관점에서 보면 이런 접근이 맞다고 봐요.

지니네트웍스의 제품 전략은 먹혀들었다. 지니네트웍스 매출 구조는 공공보다는 민간 부문 비중이 크다. 보안 업계 전체만 놓고보면 공공 시장 의존도가 큰 편인데, 지니네트웍스는 다른 모습이다. 이동범 대표는 공공쪽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면서 정부는 물론 민간 기업들 사이에서도 기술에 대한 신뢰를 확보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지니네트웍스가 철저하게 파트너 중심의 전략을 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동범 대표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우수한 파트너들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는 간접 영업 중심 전략을 고수해왔다. 직접 영업을 뛰면 가격을 낮출 수 있음에도 파트너를 활용한 영업에 초점을 맞췄다.

국내 벤처 기업이 독자적인 채널 전략을 가져가기는 쉽지 않다. 파트너 네트워크 구축에 시간도 오래걸릴 뿐더러, 대기업처럼 인센티브를 팍팍 쏘기도 어렵다. 그래서다. 이동범 대표는 파트너 네트워크가 보유한 지니네트워크의 강점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경쟁사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진입 장벽이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동범 대표는 공격형 리더는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하면서 가자'는 스타일이다. 그런만큼 해외 사업에 대해서도 보수적이다. '국내 사업을 제대로 한다'에 우선 순위를 맞췄다. 그렇다고 만날 NAC만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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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네트웍스는 최근 NAC를 넘어 전력 사용량을 모니터링하는 솔루션 '지니안 온그린'을 발표했다. 고객사도 확보했다. '지니안 온그린'은 효율적인 전력운영을 통해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얼만큼 절감하는지를 지수화해 실제 생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동범 대표는 수익은 크지 않지만 의미있는 사업이라며, 미래를 보고 투자해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