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엔 카트라이더, 해보면 바다이야기?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 터지나

일반입력 :2010/09/07 15:45    수정: 2010/09/09 11:30

봉성창 기자

일반 온라인게임을 가장한 사행성 도박물이 갈수록 늘고 있다. 심의 통과와 사후단속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지만 관계 기관은 속수무책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사행성 게임업자들이 단속이 심한 아케이드 게임 대신 온라인게임을 개발해 정식으로 심의를 받은 후 PC방 형태의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관인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책이 없다. 현행 게임물 심의 규정으로는 아무리 도박물로 변칙 운영이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심의를 내주지 않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특정 PC방에서만 제한적으로 접속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철저하게 위장 운영을 하고 있어 사후 단속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PC방을 가장한 이들 도박장들이 주택가 곳곳에 침투하고 있어 머지않아 제 2의 바다이야기 사태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PC방 간판 붙이고 버젓이 도박장 영업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에 위치한 한 PC방. 건물 지하에 위치한 이곳은 요란한 간판이나 그 흔한 게임 포스터도 붙어 있지 않다. 일단 내부에 들어갔더니 10여명 남짓한 손님들이 각자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언뜻 보면 손님들은 평범한 고스톱, 포커류 보드게임을 즐기거나 만화를 보는 등 여느 PC방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PC방 한쪽 구석에서 다소 생소한 게임을 즐기는 손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일인칭슈팅게임(FPS) 장르를 채택한 S 온라인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곳 업소에는 PC방 업주 말고 또 다른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S온라인게임 손님만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며 환전을 도맡는 역할이다. 이곳 PC방 업주에게 저 게임은 어떻게 하냐고 묻자 “자신은 선불카드만 판매할 뿐 손님들이 어떤 게임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며 “만약 게임을 하고 싶으면 저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안내했다.

이윽고 해당 직원의 도움을 받아 게임에 접속했다. 이곳 PC방에서는 처음부터 에피소드4로 건너뛴다. 에피소드4는 바다 속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별다른 조작은 필요없었다. 총구를 가운데로 조준하고 키보드에 이쑤시개나 동전 등을 꼽아 놓으면 자동으로 총알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가지만 조금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오리나 거북이 등도 볼 수 있다. 과거 사행성 논란을 일으킨 ‘바다이야기’와 상당히 유사한 방식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또 다른 PC방은 좀 더 대담한 영업을 하고 있다. PC방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은 오직 C 온라인게임 뿐. 겉으로 보기에도 PC를 나무로 짜여진 틀 속에 넣어 마치 아케이드 게임장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이곳에서 실제로 게임을 하기위해 2만원을 직원에게 건네자 직접 쿠폰번호를 입력해 총알 아이템을 대신 구입해줬다. 총알이 모두 소모되기 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남짓.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만원을 추가로 충전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 직원에 따르면 그 정도로 해서는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며 한 10~20만원을 걸어놔야 한다고 충고했다.

■ FPS, 레이싱, MMORPG 등 장르도 다양

이들 게임들은 일반 PC에서 철저히 평범한 온라인게임 행세를 하고 있다. 가령 S 온라인게임은 네이버 등 검색포털에서 출시일 등 정보와 함께 정식으로 소개될 정도다. 물론 게임위로부터 심의도 통과됐다. 업주들은 이러한 점을 내세워 합법이라며 손님들을 안심시키고 단속도 피해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비단 S 온라인게임 이외에도 이러한 변칙 운영을 목적으로 개발된 게임은 다수가 존재한다. 심지어 일부 게임은 겉보기에는 일반 온라인게임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만들어진 게임도 있다.

지난 1월 게임물등급위원회로부터 심의를 받은 A 레이싱 게임은 겉보기에 넥슨의 유명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와 별로 차이가 없다. 귀여운 캐릭터와 방향키를 이용한 조작 그리고 드리프트 등 보통 레이싱 게임이 가진 요소는 대부분 갖췄다.

심지어 ‘카트라이더’에는 없는 기능인 레이싱 도중 잠수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이쯤 되면 영락없는 캐주얼 온라인게임이다.

비밀은 잠수에 있다. 일단 물속에 잠수만 하면 바다이야기로 변신하는 것. ‘카트라이더’도 그렇지만 A 레이싱게임도 경기 도중 아이템이 바닥에 놓여있다. 이를 획득하면 캐릭터 머리위로 여러 가지 아이템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마치 파칭코나 릴게임과 같은 방식이다. 이렇게 획득한 아이템은 미사일, 번개, 기름, 대포 같이 평범한 아이템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반 릴게임과 다를 것이 없다.

이들 게임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게임이 바다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유명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를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게임 홈페이지에 심의를 받은 사실을 큼지막하게 붙이는 점도 닮았다. 합법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강조해 단속을 대비하고 손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용도다.

무엇보다 이들 게임을 한번 해보기 위해 게임을 설치하면 에러메시지와 함께 결코 실행되지 않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아무나 접속해서 소문이 나는 것을 방지하고 게임위 사후관리팀의 모니터링을 피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모 해당 게임업체에 PC방 업주를 가장하고 전화를 걸어 게임이 실행되지 않는다고 하자 친절하게 접속방법을 알려줬다. 홈페이지 구석에 있는 버튼을 순서대로 눌러서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설치하기를 몇 번 반복해야 실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방법을 알아도 게임 실행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아예 가맹 PC방 이외의 컴퓨터에서는 IP주소를 식별해 접속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 환전 방식도 기발 ‘단속 불가능?’

이들 게임에서 도박이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돈이 오고가야 한다. 과거 ‘바다이야기’의 경우 상품권을 업소 근처에서 환전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단속이 용이했지만 이들 사행성 온라인게임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가령 게임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총알과 같은 아이템을 필요로 한다. 해당 아이템은 실제로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한마디로 도박에 있어 판돈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보통 온라인게임에서도 그렇듯이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관계기관은 이에 대해 제대로 단속할 근거가 없다.

뿐만 아니라 PC를 압수해 데이터를 분석해도 나오는 것이 없다. 온라인게임의 특성상 모든 데이터가 중앙서버에 모이기 때문에 전화 한통이면 서비스 업체에서 데이터를 통째로 삭제해버리면 그만이다.

결국 이들 게임이 도박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환전 과정에서 단속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들 게임 대부분은 게임 내에서 얻은 아이템을 PC방 업주에게 선물하기 기능으로 건네주면 돈을 주는 방식이 사용된다. 상품권이나 쿠폰 등과 같이 실제로 오고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업주와 손님이 입만 맞추면 단속이 불가능에 가깝다.

또는 게임 내에서 획득한 아이템을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올리면 이를 업주가 약속된 금액으로 매입하는 방식도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 사이트를 끼고 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돈거래가 없어 단속을 피하기 용이한 점을 노린 것이다.

실제로 경찰은 이들 업소를 적발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위장 취업을 해서 증거를 확보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단속으로는 그만큼 채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 사후관리팀 한효민 과장은 “이들 게임들은 도박을 위한 변칙 운영될 것이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규정상 심의를 내주지 않을 방법이 없다”며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이들 사행성 온라인게임들에 대해 사후관리를 보다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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