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동안 지속됐던 가뭄이 해갈됐다. 하늘에서 비는 쏟아지고 논에 물도 넘쳐난다. 비수기 개념도 없다. 곳간에 먹을거리도 풍족히 쌓여간다. 옆집 논과 비교하면 농사 기술도 앞섰다. 내년까지는 가뭄 걱정 없이 현 기조가 유지된다고 한다.
농촌 얘기가 아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현 상황이다. 내년까지 반도체 시장은 풍족할 전망이다. 지난해 상반기와는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초까지 적자가 나면 적자가 나는 데로 지켜볼 밖에 도리가 없다. 반도체 사업을 가리켜 '천수답'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LCD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비투자가 한 사이클을 지나면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난다. 사업이 적자로 돌아서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맨다. 또 다시 일정 시기가 지나면 이제는 공급부족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며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경기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이제는 틀을 벗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 대표 취임 후 반도체, LCD 전략회의서 "천수답 영업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힘든 시기 넘어 최고 실적으로 반전
현 시점이 반도체, LCD 가뭄이 들까봐 걱정할 때는 아니다. 지난 1분기 반도체, LCD 가격은 '비수기'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좋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하이닉스는 최근실적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분기, 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부터 흑자전환을 기록했고 지난 1분기에는 양사 모두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하이닉스 등 반도체, LCD 업계는 지난해 상반기 함께 힘든 시기를 겪었다.
웬만큼 경기가 나빠도 흑자를 기록했던 삼성전자 반도체는 지난 2008년 4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7년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연속 2분기 적자를 기록한 뒤 흑자 전환했다. 하이닉스는 8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가 지난 3분기 흑자로 돌아서 실적 개선을 이어가고 있다.
■포트폴리오 개선으로 위기 선대응
삼성전자는 LCD 부문에서도 지난해 1분기 8년만에 적자를 기록하며 반도체와 함께 손실을 내기도 했다. 이 기간 LG디스플레이도 적자를 기록했다.
물론 당시 적자를 냈던 업체가 삼성전자, 하이닉스 뿐만은 아니었다. 엘피다, 마이크론 등 해외 경쟁업체들도 똑같이 어려움을 겪었다. LCD에서도 AUO 등 대만 업체들도 비슷하게 힘든 상황이었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하이닉스는 오히려 가뭄을 빨리 이겨낸 축에 속한다. 앞으로는 2008년과 같은 상황이 오지는 않을 것이란 밝은 전망도 있다.
하지만 밝은 전망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저수지를 만들어 홍수가 나면 농수를 저장하고 가뭄이 올 때는 논에 물을 댈 수 있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실제로 구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은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높이며 수익성 개선에 나섰다. LG디스플레이도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는 한편 주문자생산방식 TV 양산 등 사업 다각화에도 나서고 있다.
■IT 맏형으로 미래대비 나설 때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국내 IT산업을 대표하는 맏형같은 존재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가 이끌고 있는 양대 산업은 이제 점유율에서도 세계시장 절반을 뚝 떼어내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LCD 모두 세계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며 IT수출을 이끌고 있는 든든한 역군이기도 하다.
국내 IT산업이 대기업 의존도가 높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의존도 역시 매우 크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IT수출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달에도 IT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한 126억7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출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반도체는 41억8천만달러를, 디스플레이 패널은 28억4천만달러 규모의 제품이 해외로 팔려나갔다. 최근 반도체, 디스플레이 경기가 좋아서이긴 하지만 IT수출에서 두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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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현재 잘하고 있다고 안주할 수만은 없다. 고부가가치에 집중하지 못하면 경기 변동성에도 대응할 수 없단 지적도 나온다.
박태성 지식경제부 과장은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세계 1등 산업이라 민간주도로 가져가되 미래 제품 기술을 개발한다면 경기변동성에 대해 취약한 부분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