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도체공정위험성 논란에 대처하는 삼성의 자세

기자수첩입력 :2010/04/16 10:02

송주영 기자

삼성전자가 지난 83년 이후 처음으로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을 15일 공개했다. 이날 행사는 오전 9시 기자단을 태운 버스가 서초사옥을 출발, 10시 기흥공장에 도착 이후 질의·응답, 견학 등의 순서로 마련됐다.

그러나 행사는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반도체 공정라인으로 출발하기 위해 기자들이 탄 버스 중 2호 버스에서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직원 유가족과 실랑이가 벌어진 것.

1라인 설비 엔지니어로 라인 설치 업무 등을 담당하다 31세로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인 정애정씨는 "함께 가야겠다"며 버스에 올라탔고 이에 대해 삼성전자 임원은 "다음에 기회를 주겠다"고 막고 나섰다.

정씨도 삼성전자 5라인에서 지난 95~07년까지 11년 동안 근무했다. 그녀는 "남편이 5라인에서 근무하다가 1라인으로 옮긴 뒤 2년만에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며 "기자들과 함께 남편과 자신이 근무한 공장을 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삼성전자측의 만류에도 정씨는 "기다린지 3년이 됐다, 얼마나 사람이 더 죽어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며 "함께 가겠다"고 호소했다. "이번 견학은 쇼다. 쇼가 아니라도 좋다. 이 많은 사람들에 나 하나만 끼워달라"며 삼성에 쌓였던 감정을 토해냈다.

삼성전자 임원은 이에 대해 "다음에 유가족에게도 기회를 줄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씨의 계속되는 호소에 삼성전자 반도체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지켜보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버스가 계속 지연되자 2호차에 타던 기자들은 슬금슬금 내리기 시작해 다른 교통수단을 찾았고 정씨는 2호차 버스에 혼자 남겨졌다.

삼성전자는 이번 반도체 공장 라인 공개가 의혹 해명의 "끝이 아닌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시작은 화려했다. 80여개 이르는 매체가 이례적인 반도체 라인 공개 행사에 참여했고 삼성전자에서도 조 사장을 비롯한 수십명의 임직원이 투입됐다. 윈도투어가 진행된 S라인 시설로 가는 벽엔 '흰 페인트'가 깨끗하게 새로 칠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인 유가족들은 화려한 시작에선 이방인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꾸준히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의 인체 위험 의혹을 제기해왔지만 공장 내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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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언론을 상대로 대대적인 견학 행사를 가진 것이다. 입장 바꿔놓고 보면 유가족들에게 삼성의 해명은 쇼로 비춰질 수 있다. 삼상은 이번 견학 행사에서 반도체 공정 위험성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유가족이 아니라 언론 앞에서였다.  그래도 의혹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모습이다. 유가족과 삼성측 의견은 계속 엇갈리고 있다. "함께 가겠다"고 외친 정애정씨의 외침은 삼성과 유가족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은 정애정씨를 불청객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해명을 하는 태도에 있어, 스스로가 의혹을 키우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