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애플 지망생들의 이전투구

기자수첩입력 :2010/02/11 10:31    수정: 2010/02/12 15:49

김태정 기자

SK브로드밴드와 KT가 정면으로 붙었다. 기술이나 품질 싸움이 아니다. 서로를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과당 경쟁 주범으로 지목했다.

10일 SK브로드밴드는 KT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조만간 신고하겠다고 언론에 알렸다. 죄목(?)은 과당한 가입자 쟁탈전을 벌였다는 것.

증거는 이미 잔뜩 모았다고 한다. ‘12개월 기본료 면제’, ‘42만원 현금 제공’ 등 KT 대리점들의 과당 마케팅 장면을 포착, 방통위에 넘길 계획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KT의 마케팅 돈 공세가 도를 넘어 영업하기가 너무나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SK브로드밴드의 공격에 KT는 펄쩍 뛴다. ‘적반하장’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현금 마케팅 규모는 KT가 꼴등이라고 한다. 자신들도 SK브로드밴드의 현금 마케팅 증거를 꽤나 모았다며 맞불을 놨다.

이를 두고 업계서는 갖가지 분석이 쏟아졌다. SK브로드밴드가 적자행진 타계를 위한 무리수를 뒀다거나, 최근 점유율이 빠진 KT가 은근히 현금 마케팅을 강화한 결과라는 등이 대표적이다.

누가 명분을 가졌건 고객들은 마냥 괴로울 뿐이다. 서비스 향상의 방해물인 과당 마케팅이 여전히 만연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신규 가입자 쟁탈전에 뒤로 밀렸다고 생각하는 '기존 고객'은 적잖이 보인다. 인터넷 바꾸면 돈 준다는 스팸문자도 지겨운지 오래다. 두 회사의 싸움은 이전투구로만 보인다.

지난해 9월에도 SK브로드밴드와 구 LG파워콤이 과도한 경품 제공을 이유로 방통위로부터 수억원대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기자는 지난달 25일 통신 수장들의 회동 자리가 오버랩됐다.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이석채 KT 회장, 정만원 SK텔레콤 사장, 이상철 통합LG텔레콤 부회장 등이 모여 과당 마케팅 지양을 강조했다.

이 중 “보조금을 연구개발에 사용했으면 우라나라에서도 애플이 나왔을 것”이라는 이상철 LG텔레콤 부회장의 말에 이구동성 공감을 표했다. 애플같은 회사가 왜 나오지 못하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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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공염불이었을까. 우리나라의 ‘애플 지망생’들은 오늘도 제 살과 고객들의 살을 깎고 있다. 연말연초 조직개편 진통이 수그러들면서 가입자 쟁탈전에 더 힘을 주는 모습이다. 한 곳이 마케팅을 강화하면 전체가 출혈 경쟁에 뛰어든다.

가입자 확보에 돈을 쏟기 보다는 융합서비스 등 신성장동력 개발에 나서겠다던 통신 수장들의 약속은 아직 말로만 그친 상태다. 통신시장의 건전한 경쟁환경 조성은 여전히 요원한 듯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