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함과 지적 유희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클래식 음악은 중세 시대 사람들이 향유하던 대중 문화 중 하나에 불과했다. 마치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가요나 영화, 게임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클래식의 총본산으로 일컬어지는 예술의 전당에서 지난 6일과 7일 열린 ‘파이널판타지 콘서트-디스턴트 월드’는 단순한 대중문화의 고전적 해석이나 문화간 조우가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파이널판타지’는 스퀘어에닉스가 지난 1987년 패미콤을 통해 최초로 선보여 누적판매량 약 9천만장에 빛나는 일본의 대표적인 롤플레잉 게임이다.
매번 시리즈가 출시될 때 마다 충격적인 그래픽과 감동적인 서사시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어우러져 게임의 재미는 물론 영화를 능가하는 감동을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콘서트는 그동안 ‘파이널판타지’의 음악을 담당한 우에마츠 노부오가 직접 공연 기획에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70여명의 대편성으로 꾸며진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30여명의 서울그랜드합창단 등 100여명의 출연진 그리고 ‘파이널판타지10’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 이수영 등이 출연해 게임 마니아에게 다시 없는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 연주와 게임이 결합된 최고의 무대
공연장 로비에는 공연을 감상하기 위한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표를 받기 위한 줄도 줄이지만 티셔츠와 공연음반을 구입하기 위한 줄도 수십 미터나 길게 늘어져 ‘파이널판타지’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비단 우리나라 팬 들 뿐 아니라 파란 눈의 외국인들도 공연을 보기 위해 다수가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장 내부에는 여느 오케스트라 공연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연장 상단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그것이다. 대형 스크린에는 해당 연주곡에 맞게 특별히 제작된 게임의 동영상이 나와 감동을 한층 더하는 역할을 했다.
정해진 공연 시간이 되자 지휘자인 아니 로스와 ‘파이널판타지’ 음악의 대부분을 작곡한 우에마츠 노부오가 등장했다. 간단한 인사말을 마친 노부오씨는 관객석 자리를 잡고 앉아 공연을 감상했다. 주황색 두건과 일본 전통 복장을 입고와 공연장 어디에서도 눈에 잘 띄었다.
이윽고 오프닝 곡인 ‘파이널판타지8’의 ‘Liberi Fatali(운명의 아이들)’이 서울그랜드합창단의 장엄한 코러스와 함께 시작됐다. 마녀인 ‘이데아’가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해 다룬 이 곡은 순식간에 관객들을 무대로 흡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날 콘서트 프로그램에는 유독 8편의 음악이 많이 사용됐는데 사실 8편은 상업적으로는 비교적 성공했다고 보기 힘든 작품이다. 그러나 노부오 우에마츠의 음악은 8편의 애잔한 스토리와 잘 어우러지며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후 이어진 곡인 승리의 테마는 과거 ‘파이널판타지’를 한번이라도 즐겨본 사람이라면 수천번은 들었을 정도로 귀에 익숙한 곡이다. 전투에서 승리하면 나오는 이 음악은 원곡(?)과 동일하게 불과 10초 정도의 짧은 연주가 이뤄져 관람객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이밖에도 스크린을 활용한 독특한 연출이 다수 이어졌다. ‘Don't be Afraid’라는 곡은 8편에서 주인공이 대형 병기들로부터 추격 당하는 씬에 맞춰 나오는 배경음악이다. 먼저 게임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적과 인카운트 되는 장면에 맞춰 연주가 진행됐다. 관람객들은 마치 마음속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같은 느낌과 함께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탄성을 내질렀다.
■ 시종일관 탄성과 웃음 쏟아져
공연장에는 시종일관 탄성과 웃음 그리고 진지함이 공존했다. 게임 마니아들에게는 워낙에 귀에 익숙한 음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부분 관람객들이 게임을 통해 받은 감동을 다시 되새김질 하는 분위기다.
인터미션 후 2부에서는 역대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꼽히는 7편의 오프닝 곡 ‘Bombing Mission’이 연주됐다. 주인공 클라우드가 기차로 잠입해 폭탄을 설치하러 가는 미션을 묘사한 이 곡으로 공연장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분위기는 10편의 주제가를 부른 이수영이 등장하며 절정에 달했다. ‘얼마나 좋을까’를 부른 이수영은 이날 공연에서는 다소 컨디션에 난조를 보이며 관람객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날 역사적인 협연에 대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후에도 주옥같은 명곡들이 연이어 연주됐다. 게임 속 최고의 이벤트 연출로 평가받는 6편의 ‘오페라 : 마리아와 드라코’는 멋진 솔리스트들의 연주로 재현돼 게임을 능가하는 감동을 선사했다.
2시간 반 남짓의 공연이 끝났지만 관람객들은 박수를 끊이지 않았다. 지휘자인 아니 로스는 앵콜곡으로 영화 ‘파이널판타지7 어드벤스 칠드런’에 삽입된 ‘편익의 천사’를 연주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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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연을 관람하러 온 엔씨소프트의 지용찬 아이온 기획팀장은 “워낙에 파이널판타지를 좋아해서 공연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봤다”며 “10여년 전 게임의 감동이 이날 공연을 통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위정현 콘텐츠경영연구소장 겸 중앙대 교수 역시 “여느 공연과는 아주 분위기가 다른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며 “국내에서도 게임과 다른 문화를 접목한 이러한 시도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