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아이콘'으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
그는 사용자 경험(UX)을 신봉하는 대명사로 통한다. UX에 대해서만큼 그는 편집증적인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는 후문이다. 애플이 신제품을 내놓을때 '와우'(WOW)가 자주 쏟아지는 것도 그의 이런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 잡스없는 애플은 애플이 아니라는 얘기도 들린다.
UX도 마찬가지. 아이폰과 아이팟에 깔린 수준높은 UX를 보면 스티브 잡스식 편집증이 진하게 풍긴다. 애플식 UX는 스티브 잡스를 먼저 만족시켜야 세상에 나올 수 있는 탓이다.
역사적으로 UX 부문에서 커다란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사례를 보면 애플처럼 경영자가 총대를 맨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에서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포드 모델T나 20세기가 열리기전에 일반인들이 쉽게 카메라를 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이스트먼 코닥이 대표적이다.
1888년 코닥 창업자 조지 이스트먼은 코닥 카메라를 발표했다. 사진이라는 개념 자체를 뒤흔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코닥 카메라는 롤 필름을 활용해 일반인들도 쓸 수 있는 대중적인 카메라 시대를 열었다. 경영자의 철학이 UX 혁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다시 애플 얘기다. 아이폰은 다른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기능이 많지 않다. 신제품을 내놓을때 경쟁사보다 많은 기능을 집어넣으려 하는게 상식인데, 애플은 거꾸로 방향을 틀었다. 많이 쓰는 기능만 살리고 경험에 집중했다.
기업들은 제품을 내놓는 과정에서 많은 회의를 하게되는데, 이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기능을 많이 넣게 된다. 기능을 줄이고 핵심에 집중하는 것은 대단한 통찰이나 책임을 질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경영진이 밀어주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서울여대 산업디자인학과 이지현 교수의 말이다. UX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팀단위 프로젝트를 넘어 경영진 차원에서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UX는 경영전략이라는 얘기다.
서울대 이중식 디지털융합학과 교수도 기업이 UX를 얼마나 심각하게 고려하는지는 몇명의 임원들이 투입됐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면서 UX와 경영진의 관심 사이에 함수 관계를 강조했다.
■디자인 경영 '확대일로'
미국의 경우 UX를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되서인지 MBA 과정에서도 디자인적 사고가 강조된다. 경영자들이 처음부터 UX를 진지하게 바라봐주도록 해주는 구조다. 이는 미국이 UX 분야에서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이유중 하나로 꼽힌다.
UX를 향한 미국 기업들의 행보는 갈수록 가속도는 모습. 애플은 말할 것도 없고, '검색황제' 구글도 최근들어 UX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한다. 일찌감치 UX에 전력을 전진배치했던 야후로부터 UX 전문가들도 대거 영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MS에게도 UX는 전술을 넘어 전략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MS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와 개발 플랫폼, 그리고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 UX 관련 인력을 배치했다. 크게는 수백명 단위 UX 리서치 및 디자인 팀이 여럿 활동중이다. 기술 엔지니어보다도 UX디자이너를 더 많이 뽑고 있을 정도다.
인터넷 업계에서 'UX의 원조'로 불리는 야후도 부활을 위한 승부수로 UX를 꺼내들었다. 야후는 최근들어 사용자 분석을 위해 사회과학자들 영입에 적극 나섰다. 지난해 야후 지휘봉을 잡은 캐롤 바츠 최고경영자(CEO)가 인문학자 영입의 선봉에 섰다. 야후 역시 경영자가 UX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현재 야후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회과학자수는 현재 25명에 이른다고 한다. 야후가 인문학 전문가를 늘리는 것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심리와 행동 성향을 좀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UX를 제대로 하려면 사용자를 알아야 하는데, 기술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인문학자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야후에서 일하는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처칠은 무엇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며 “야후의 향후 경쟁력은 여기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업계에서 UX가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야후 뿐만이 아니다. UX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대다수의 IT업체들이 인지심리학, 인류학, 사회과학 등 인문학 전문가 영입에 앞다퉈 뛰어들었다.
국내 기업들도 급은 다르지만 방향은 비슷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경영진 차원에서 관심도 높아졌고 투입되는 실탄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연세대에서 HCI(휴먼 컴퓨팅 인터액션)랩을 이끌고 있는 김진우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에서 UJX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많은 받는 전화중 하나가 석사 졸업생 한명만 보내달라는 것이다고 전했다. 이를 보여주듯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임원급 인사를 UX 분야에 배치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삼성전자 무선 사업부의 경우 장동훈 전무가 맡아 UX팀을 이끌고 있다. UX전담 조직 인력만 150명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적으로 애플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이 폭발적인 성장을 구가함에 따라 UX를 향한 삼성전자의 공세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국내 최대 인터넷 업체인 NHN도 이사급인 조수용 CMD(Creative Marketing & Design) 본부장이 UX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전담조직을 가동한지 벌써 6년째며 조수용 본부장은 NHN 최상위 임원진에 포함돼 있다. 그만큼 회사차원에서 UX를 밀어주고 있다는 얘기다.
NHN의 경우 마케팅과 디자인팀이 통합돼 있다는 것도 특징. 흔치 않은 조직구조다. 이에 대해 조수용 이사는 브랜드 마케팅과 UX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NHN은 UX 인사이트란 사내용 UX 매거진도 발행해 UX관련 흐름이 전사적으로 공유될 수 있도록 했다. 조수용 본부장은 UX는 지금 회사가 지향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넥슨, 다음커뮤니케이션, 야후코리아, 삼성SDS, LG CNS, 아이리버 등도 UX에 투자를 늘리는 곳으로 꼽힌다. 넥슨은 현재 20명 정도로 구성된 UX전담팀을 운영중이다. CEO 직속이라고 한다. MP3플레이어와 전자책리더 업체 아이리버의 경우 신현용 이사가 디자인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중소기업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적극적인 행보라 하겠다.
■높은 관심, 투자로 이어져야
지난해 서울대 이중식 교수팀이 국내 기업 UX 담당자들을 조사해 작성한 백서에 따르면 UX는 기업 전문성과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의 반열에 올라섰다. 또 톱다운 방식으로 접근할 고위 직급의 UX에반젤리스트 역할이 기업에서 UX를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영진들의 인식이 UX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경영진이 UX전략의 전면에 섰다. IT전략은 최고정보책임자(CMO), 마케팅은 최고마케팅책임자(CMO)가 맡는 것처럼 UX를 총괄하는 임원들의 직급에도 중량감이 실리는 모습이다.
국내 기업들도 일단은 UX의 가치는 인정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관심이 실질적인 투자와 체계적인 프로세스로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분야별 선도 기업들을 제외하면 아직도 UX에 대한 전략적 가치는 높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떤 기업에서는 구조조정시 UX 담당자들을 먼저 내보냈다는 사례까지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는 많은 기업들 사이에서 UX가 아직 조직 깊숙히 파고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관심과 투자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셈이다.
NHN의 조수용 본부장은 조직 내부에서 UX가 자리를 잡지 못했을 경우 UX는 누구나 한마디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만다면서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일관성을 갖고 나갈 수 있는 조직과 프로세스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UX에 대한 정책이 일관되지 못하고 그때그때 바뀌는 기업은 UX 경쟁력이 낮다고 보면 된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UX가 차별화 전략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수익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분석 방법론이 자리를 잡지 못한 점도 경영진들이 UX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도록 하는 이유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UX와 ROI간 함수관계를 풀기 위한 연구는 빠르게 진행중이다. 연세대학김진우 교수는 UX와 ROI간 연관성은 지난 10년간 풀지못한 숙제라며 그러나 요즘들어 데이터들이 쌓이고 있는 만큼, 관련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글로벌 UX 컨설팅 업체 어댑티브패스 비즈니스 전략가 스콧 허쉬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용자 경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ROI를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보고서는 UX ROI는 사전 예측 및 사후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조직내 UX 역량과 UX 관련 부서 영향력을 증대시키며 비즈니스 가치 기반 의사 결정 문화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ROI와 UX간 함수관계를 풀지 못했지만 UX는 경영 전략차원에수 투자할만한 매력을 갖췄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서울여대 이지현 교수는 UX는 ROI로 증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낼 수 있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로도 이어진다면서 닌텐도 사례를 예로 들었다. 닌텐도가 위(Wii)를 통해 동작인식이란 새로운 UX를 제공하면서, 노인이나 여성 등 게임과는 거리가 있었던 사용자층을 새로운 시장으로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UX를 향한 관련 업계의 행보를 보면 UX는 기업 경영전략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디자인 경영이 화두로 떠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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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내부에서 UX는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가?,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을 넘어 경영진들은 UX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투자는 얼마나 하고 있으며 어떤 직급의 인물이 UX를 총괄하고 있는가?
전문가들은 기업의 UX경쟁력을 따질때 이같은 질문을 CEO에게 먼저 던져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