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새로운 10년, 뒤늦은 근대화로의 초대

전문가 칼럼입력 :2010/01/04 08:47

김국현

2010년. 21세기의 10년이 흘러 갔다. 그리고 20세기 소년소녀들에게 미래의 한복판이기만 했던 바로 그 해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우주 함대도 변신 로봇도 결국 SF적 상상의 영역에서 지쳐 있었지만, 컴퓨터와 통신 기술만큼은 당시의 상상력을 비웃듯 공상 이상의 세계를 가져다 주었다. 빛의 효율로 현실을 대체하며 증폭, 거대한 대안 세계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는 수중 도시를 만든다거나 천공의 성을 만드는 공학적 현실 개혁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으로 현실을 바꾸는 공학적 방법을 찾아 가기 시작한다. 현실을 물질로 개선하는 대신, 물질을 성공적으로 가상의 신호로 변환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체재 들에 의한 현실의 침식은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마치 현실의 미래는 그러한 비현실 속에 있다고 말하는 듯.

예컨대 물리적 이동은 정보의 이동으로 대체된다. 정보는 물질의 실질적 이동마저 최적화 한다. 택배업의 성장은 인터넷 쇼핑이라는 현실 파괴자에 의한 산물이다. 시장에 가는 대신 손가락을 움직여 물리적 이동을 외재화해 버렸다. 나를 위한 이동이건만 실제로 일어난다는 감각이 없다. 버튼을 클릭하면 문자가 오고 초인종이 울린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굳이 직접 만나서 부어라 마셔라 할 필요 없이, 트위터로 미투데이로 더 많은 이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한 듯한 느낌을 가지려 한다. 막걸리 한 잔 너머의 축축한 대화처럼 비효율적인 것은 없는 듯한 사회가 되어 간다. 현실의 감각마저 효율적으로 대체함으로써 '현실'에서 감각이라는 ‘가치’가 분리된다.

그 과정이 기성 세대의 눈에는 자폐 상태에 탐닉해 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러한 미래 따위 받아 들이기 싫더라도, 지난 10년이 그랬듯 앞으로의 10년 상상조차 힘든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변화하려는 모든 것에는 더 없는 기회다.

그러나 이 사회의 틀은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후진적, 심지어 봉건적 현실에 침몰된 채 헤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 이 사회는 여전히 근대화 이전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선진의 저편은 무엇일까?

그 것은 과거 인류가 경험했던 어느 무엇보다 공평히 선택과 기회의 자유를 주는 세상. 지금 이 비트가 대체하려는 세계의 본질이다. 예컨대 40만원이면 넷북도 넷탑도 살 수 있다. 이 비근함은 나의 추억과 오버랩되며 어떤 확신을 준다.

고교를 졸업 하던 그 해 1월, 어머니는 당신의 두달치 월급을 모아 내게 PC 구입비를 챙겨주었다. 그 무리함에서 나의 커리어는 시작되었다. 현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부조리를 관통할 미래로의 창은 그렇게 소박하게 찾아 와서 작은 기회를 내밀었다. 오늘날의 넷북은 굳이 두 달을 모으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내가 그 겨울에 느꼈던 그 희망은 더 일반적이 된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같은 무지개를 좇을 수 있게 된다.

그 넷북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른다. 존재하지 않았던 기발한 기획을 할 수도, 사회를 흔들 논문을 꿈꿀 수도, 스마트폰 개발을 시작할 수도, 아니 한국의 탁월한 네트워크 사정이라면 넷탑에 웹서버를 띄워 나만의 닷컴을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 따위 일거에 리셋할 수 있다는 패기를 품게 된다.

지금은 40만원의 넷북이지만 IT의 약속대로 성능은 올라가되 가격은 떨어질 것이고, 그 변화의 속도와 굉음은 지금까지 언감생심 IT는 꿈도 못 꾸어 본 지역과 계층에게까지 기회를 보여 줄 것이다. 정보의 효율은 빛의 속도로 지구를 배회하며 아직 남아 있는 염가의 현실성을 맹렬히 빨아 들일 것이다. 그 곳의 재능과 패기까지 덤으로…

물리적 제약이 사라진 미래는 인적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오프쇼어를 일으키고, 대신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재능과 가치의 메이저 리그를 마련해 줄 것이다. 지구 의 천국과 지옥은 동시에 찾아 온다. 일자리에 대한 걱정은 이러한 이율배반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변화에 대한 이 불편한 불안감은 오히려 청춘보다 기득권이 먼저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 속 나의 존재 이유를 지키는 방식은 이 회로의 설계자, 즉 플랫폼을 소유하거나, 아니면 이 회로에서 오히려 두드러질 수 있는, 즉 어텐션을 끌어 낼 수 있는 창조력이나 혁신성을 지니는 일일 텐데, 기성 세대에게는 어느 무엇 하나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 안분지족중인 지금 이 현실은 근대화 이전이다.

이 와중에 토건 개혁에 매진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으로 순진하다. IT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피상적 판단을 하다가 갑자기 최근 추켜 새우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여전히 IT를 하나의 산업 분야로 보는 짧은 시각은 교정되지 않았다. IT는 성장산업으로 규정되어야 할 무엇이 아닌 모든 산업을 변모시킬 파괴적 촉매임을 자칭 사회의 어른들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산업, 모든 학문은 앞으로의 10년, 이 빛의 효율 덕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나 경제와 같은 기득권의 텃밭도 포함된다.

만약 미래를 걱정한다면, 적어도 젊은 청춘들에게 밝은 미래가 될 터전을 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들이 앞으로 피어낼 가치가 왜곡되지 않고 퍼져나갈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적 경제적 인프라와 제도를 만들어 주는 일을 도모해야 한다. 즉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불도저식 건설 의지를 향후 10년을 위한 사회적 경제적 인프라와 제도를 짓고 세우는데 돌리는 일이다. 예를 들자면,

●미래의 부동산, 유무선망과 관련된 ‘토지 개혁’: "기존 전파 이권의 굴레를 끊는 새로운 도전을 어떻게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전통적 망개방 이슈 뿐만 아니라, 과연 현재의 유무선망이 비즈니스 프렌드리한지에 대해 반성"

●각종 산업의 IT 투자에 대한 감세: "IT는 기존 산업의 보조재가 아니라, 기존 산업을 다시 쓰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

●가치의 네트워크, 금융 IT에 대한 규제 완화: "공인인증체제에서부터 전자 금융 관련 인허가 규제에 이르기까지 집요한 쇄국 정책에 대한 개항안(開港案)"

●IT 창업 절차의 간략화 및 안전망 강화: "개혁을 위한 신진 세력의 자생적 발생을 위한 토대 마련."

●사회적 약자를 위한 IT 부조안(扶助案): "기본권으로서의 네트워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앞으로의 10년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정부가 성장 산업을 규정하고 이를 중앙 통제적으로 선택된 일부 기업들과 함께 전략적으로 집행하고 견인하는 20세기적 정책이 아니라, 무모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짓을 젊은 패기를 지닌 이들이 마음껏 튀어나와 해보도록 북돋는 사회의 룰로 개혁해 내는 일, 일종의 IT 유신(維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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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이 일에 모든 총력을 기울여도 될까 말까한 시점에 접어 들고 있다. 이러한 제도 설계와 시스템의 건설은 현실의 토목 건축물과 달리 고립된 축조물이 아니라 다른 세계와 그리고 우리의 사회와 질서와 정서를 연결해야 하는 적지 않은 과업이기 때문이다.

2010년. 적어도 역사에 그 과업의 용기가 필요했던 마지막 시점을 놓쳤다 기록되는 일만큼은 막고 싶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