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⑦넷북 돌풍, PC시장 부활 신호탄

일반입력 :2009/12/28 17:09    수정: 2009/12/30 10:17

류준영 기자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됐던 올해, 전형적인 불황형(저가) 제품인 ‘넷북’의 고공행진은 PC 수요 가뭄 속 대이변을 연출했다.

성숙기 PC시장에서 ‘세컨드PC’란 새로운 세그먼트를 창출했으며, 반도체 시장의 수급상황 개선에도 일조했다. 또 스타일을 강조한 패셔너블한 넷북은 디지털제품을 ‘액세서리’로 승격화해 자신만의 개성을 연출할 수 있는 패션아이템으로 주목을 끌었다.

작지만 강한 넷북 “이젠 퍼스트가 된다”

넷북은 반도체 업계에 불어온 변화의 패러다임에 첫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다. 올해 PC시장 불황의 큰 특징은 과거만큼 수요가 받쳐주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PC 성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 반면 소비자는 더 이상의 고성능 제품보단 일정 수준의 메모리 용량과 처리속도에서 만족해 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PC의 보편화로 수요성장률이 20%에서 10%대로 ‘뚝’ 떨어졌다.

PC 수요부족에 의한 공급과잉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PC 업그레이드 사이클도 동시에 늘어나면서 인텔과 같은 반도체 업계는 넷북이나 MID 등 신시장 수요를 적극 발굴해야 하는 숙제를 껴안게 된 것.

이 같은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주전으로 선발된 넷북은 인텔의 예상을 넘어선 성과를 거두며 일약 PC시장의 ‘거물급 스타’로 떠올랐다.

이는 불경기 때 IT시장을 견인해온 기업시장이 아닌 소매시장에서의 승리였던 까닭에 향후 넷북 시장에 관한 성장잠재력은 계속 지속될 것이란 낙관론이 크게 작용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전세계 올해 넷북 출하량은 2천438만대, 내년엔 3천354만대를 거쳐 오는 2012년엔 4천740만대로 성장, 연평균 37.9% 고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넷북의 고성장은 무엇보다 중국(연평균 50.7%↑)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연평균 29.4%↑), 남미(연평균 28.6%↑) 등 이머징마켓 중심의 PC보급률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넷북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저가라는 충격적인 매력포인트를 동원, PC시장에서 막강한 배수진을 친 넷북은 불황기 이슈가 됐던 시장현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해석이다.

예컨대 올해 자동차 시장에서 경차가 날개 돋힌 듯 팔렸고, 10만원이 훌쩍 넘는 프리미엄 진(Jean)이 2~3만원대로 가격포지션을 바꾸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듯 전례 없는 PC 시장의 가격파괴는 “더 이상 주저할 것 없는” 제품(넷북)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동통신사들 역시 넷북의 수혜주로 부각됐으며, 벼랑 끝에 놓여진 와이브로 산업은 위기 찰나에 구세주를 맞이했다.

넷북 트렌드에 발빠르게 편승, 불황기 속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업체는 대만PC제조사다.

업체별로는 에이서가 넷북 1위를 기반으로 지난 3분기 순이익 34억7천만 대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PC시장에서 델을 누르고 전세계 2위 업체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도 3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넷북 판매량이 증가했고, 관련 사업부의 실적이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였으나 대만기업들에 비해선 초라한 수준이다. 다만 국내시장에서 삼성의 넷북은 3분기 29.5%로 대만PC업체 아수스와의 격차를 두 배 이상 늘렸다.

대만과 중국 업체들이 넷북시장에서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내시장에선 소비자들 사이에서 팽배했던 ‘대만제=품질저하’란 딱지를 때는 보너스를 얻기도 했다.

지안프랑코 랜시 에이서 최고경영자(CEO)는 “내년 경기회복세와 맞물려 (에이서의) PC 제품의 전체 출하량은 5천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전 세계 시장 1위 업체인 HP를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래서일까. 익명을 요구한 국내 S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 대만 PC업체들의 콧대가 높아지고, 제품생산 단가도 높아져, 생산공장의 중국이전을 염두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애플의 PC 제품들 대부분도 폭스콘의 중국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처럼, 제조단계에서 중국의 리스크가 예전보다 현격하게 줄었다”고 말했다.

또 “대만 PC제조사와 한국기업이 가격경쟁을 치뤄야 하는 상황에서 생산기지 중국이전은 2010년에 최우선으로 고려할 점”이라고 덧붙였다.

넷북의 출연은 세계 경기 불황 속 부품산업의 충격파를 막아준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노트북 경량화와 궤를 맞춰 3.5인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서 2.5인치로 수요 이동을 일으키면서 올해 2.5인치 HDD 수요는 분기별 최고 20%까지 올랐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신성장산업인 HDD 부문은 올해 분기별 판매량이 50%(300만대(1분기)→590만대(3분기)) 가까이 뛰었다.

그래픽카드 시장에선 엔비디아가 메인 프로세서에 그래픽 프로세서를 추가한 ‘아이온(ION)’을 개발, 넷북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고화질 영상 재생과 3차원(D) 게임 플레이를 자유자재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인텔은 “넷북보다 더욱 얇은 디자인 연출이 가능하고, 성능은 넷북 보다 훨씬 뛰어난 울트라-씬(Ultra-Thin) 플랫폼이 아톰과 함께 세컨드PC시장 열어갈 것”이라고 박혔다.

또 넷북은 현재 아톰 프로세서보다 60% 가량 작고 전력소모는 20%까지 줄인 ‘파인트레일(코드명)’을 앞세워 새로운 디자인으로 탈바꿈한 넷북 등장을 예고했다. 때문에 세컨드PC 시장의 규모는 지금보다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OLED 디스플레이와 터치 UI(사용자 환경) 보안시스템이 접목된 넷북이 다음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세컨드PC는 물량이나 금액적인 측면에서 되레 기존 노트북 시장을 넘어서는 ‘퍼스트(First) PC’가 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넷북의 용도는 서브 노트북이었지만 지금은 PC시장의 전체 매출을 이끌 정도가 됐다”고 했다. 문제는 넷북의 운명을 갈라놓을 PC 교체주기인 2~3년 후에 집계될 재구매율이다.

당장 통계를 내기는 어려우나 관련 유통업계 담당자의 이야기론 현재로썬 제로(0)에 가깝다.

때문에 인텔은 '울트라-씬' PC란 보완제를 내놓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 제품은 판매가가 일반 노트북에 가까워 판매력에선 넷북보다 열세다.

삼보컴퓨터 디자인총괄 김종길씨는 “넷북은 앞으로도 시장의 파이를 유지되거나 상승할 것”이라며 “재구매율을 높이기 위한 제조사들의 노력은 초입시장에서보단 지금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고, 로우코스트(Low-Cost) 노트북의 가장 큰 장점인 모빌리티(이동성)을 가장 잘 살린 제품은 현재로썬 넷북 뿐”이라고 설명했다.

케빈두, 공번서 지사장, 본사-한국소비자간 소통의 창구 국내 넷북시장 보편화에 일등공신이라면 대만PC업체 수장인 케빈 두 아수스코리아 지사장과 공번서 MSI코리아 지사장을 꼽을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대만계 한국인으로 한국어가 유창하고,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이 높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토종업체의 장벽이 유난히 높은 국내시장에서 두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높을 수 있었던 까닭은 한국소비자들의 요구를 생산라인에 재빠르게 반영한 두 지사장의 소통 능력 덕분이다.

예컨대 케빈 두 지사장은 아수스 넷북인 ‘이(Eee)PC 901’의 12기가바이트(GB)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장착하자고 강하게 요구했다. 당시 4GB SSD를 채용한 제품은 용량이나 속도 측면에서 한국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또 이 제품의 인터넷 속도를 늘리기 위해 국내 출시 제품에만 ‘익스프레스 게이트’를 장착한 것도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의 지사장을 겸하고 있는 케빈 두 지사장은 “자국 브랜드 선호도가 월등히 높은 두 나라에서 아수스의 제품을 알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소비자들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제품라인업을 공격적으로 선보인 것이 삼성전자나 LG전자 넷북보다 시선을 더 끌 수 있는 판매기법으로 통했다”고 밝혔다.

또 국내 시장진출 2년여 만에 시장점유율 7위까지 ‘껑충’ 뛰어오른 MSI코리아의 공번서 지사장은 빠른 판단력과 기동력을 무기로 넷북에 이어 ‘울트라-씬’ 노트북PC, 올인원PC까지 시세확장을 거침없이 시도하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자 프리미엄부터 보급형 제품까지 가격대별 다양한 신제품 라인을 다량 선보이며,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제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MSI란 브랜드를 국내시장에 정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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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시장 돌파력은 물론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MSI코리아 직원들이 말하는 공번서 사장의 평가다.

공번서 사장은 “본사 임원들이 '이제 한국사람 다됐다'고 할 때마다 뿌듯하다”라며 “새로운 PC시장 보급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