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럽다. 허둥대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대형 사고’ 쳐놓고 막상 일 터지니 허겁지겁이다. 정통부, 과기부를 한칼에 날린 정부이다. 효율과 실용이 국정 철학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IT는 "일자리 빼앗는 전산화”의 굴레를 뒤집어 썼다. 대신 삽과 포클레인이 시대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찬 밥 신세였던 IT가 지난 세달 간 ‘떴다’. 먼저 7월로 돌아가 보자. 청와대, 국회, 언론사 등 국내 주요기관의 웹사이트가 먹통이 됐다. 사이버 테러를 당한 것이다. 분산서비스거부(DDoS)라 불리는 공격에 속수무책 당했다. 심지어 한국 사이트를 매개체로 백악관까지 피해를 입었다. 세상이 발칵 뒤집어 졌다. 나라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호들갑이었다.
검찰 경찰 국정원이 총동원 됐지만 ‘북한 소행’이라는 심증 뿐이었다. 방통위나 행안부, 인터넷 관련기관들은 뒷전이었다. 사이버 공격을 담당하던 전문가집단 정보보호진흥원은 기관 통폐합 와중이었다. 뒤죽박죽이었던 셈이다. 뒤늦게 대비책 세운다고 법석이지만 아직도 별무소식이다. 당연히 인터넷 공간에선 지적이 잇따랐다. “정통부 없앨 때 이미 알아 봤다.”
8월에는 블랙코미디가 상영됐다. 우주를 향한 5천만 겨레의 꿈이 물거품으로 바뀌었다. 나로호가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채 사라졌다. ‘IT강국’, ‘우주강국’,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건만 실패였다. 교육부와 과기부가 통합된 교과부장관이 국민 앞에 나섰다. 원인과 정부의 대책을 발표했다. TV로 생중계된 장면이다. 시청자가 오히려 가슴 졸였다. 정치학 박사인 교과부장관이 고도의 과학이론이 동원되는 우주발사체 설명을 제대로 할까. 과학자 출신 장관이 읍소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국민의 걱정이 앞섰다.
정치권은 한걸음 더 나갔다. 일본을 비롯한 수많은 선진국들도 첫 발사에서 실패했으니 자책하지 말란다. 궤변이다. 웬 자유당 때 논리가 튀어 나왔다. 그들의 첫 발사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과학과 기술이 혁명적으로 진보한 2009년의 첫 발사, 그것도 대한민국의 실패에 들이밀 잣대이던가. 인터넷 공간 역시 똑같은 지적이었다. “과기부 없앨 때 이미 알아봤다.”
9월은 IT가 소생한 달이다. 정부가 이른바 ‘IT홀대론’의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IT의 신메카로 떠오른 누리꿈스퀘어에서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가졌다. 수십조원을 투입하는 ‘IT코리아 5대 미래 전략’이 발표됐다. 모처럼 IT기업인, 정 관 학계의 저명인사들이 모여 대통령에게 건의사항도 ‘올렸다'. 대통령도 "우리 산업 경쟁력의 원천은 IT"라며 화답했다. 흐뭇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옥에도 티가 있다. TV 화면에 비치는 화합과 결의의 장면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았다. 대통령부터 참석자 모두의 옷차림이 한결 같았다. 약속이나 한 듯 노타이 정장 차림이었다. 마치 유니폼을 착용한 듯한 모습이다. 청바지에서 맥을 꺼내는 스티브잡스는 언감생심이다. 남방셔츠 차림으로 대통령 만나는 빌 게이츠는 바라지도 않는다.
세상은 창의력과 상상력, 감성으로 승부하는 시대로 벌써 진화했다. IT는 그 한복판에 서 있다. TV중계 화면속 그날 행사는 영락없다. 박정희, 전두환 장군이 통치하던 권위주의 시대 ‘어전회의’ 모습이었다. 행사는 ‘실세’인 미래기획위원장이 주도했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도 가만 있지 않았다. “역시 IT보다는 건설 토목이 제격이야.”
우리는 3무(無) 정부를 갖고 있다. 정통부, 과기부가 없다. 또 각료들 가운데 이공계 출신이 없다, 정운찬 내각에선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나' 였다. MB정부 출범 이래 ‘이공계 제로’ 내각의 기록은 계속 경신중이다.
정통부 과기부 이공계는 공통의 가치를 향유한다. ‘미래’이다. 당장의 먹거리를 해결할 뿐 아니라 우리가 자식들에게 물려 줄 ‘내일’을 책임지는 곳이요,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부처가 없어졌지만 기능은 살아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공계 출신 인물이 반드시 입각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도 없다. 여전히 우리 경제는 순항 중이다. 집권 세력의 지지도는 야당을 앞선다. 그런 탓일까. 자신감이 오만으로 전이되고 인식의 천박성을 ‘과시(?)’하는 일에도 겁이 없다.
IT홀대론이 대표적이다. IT인들 사기 높여 준다며 립 서비스가 전부이다. 우는 아이 떡하나 더 주는 꼴이다. IT인들은 지금 철학을 논하고 있다. 가치를 말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앞세우는 것이다. 건설과 토목이라는 국정지표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미래에 IT와 과학 역시 중요하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정부의 ‘틀림’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 목소리를 ‘틀림’으로 간주하고 ‘무마’에 총력을 기울이는 정부의 수준이라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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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지난 20여년의 성장동력 IT와 기초과학, 원천기술은 싸늘히 식어 가고 있다. IT가 여타 산업 보다 3배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전문기관의 보고서는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다.
2년 지내봤으면 됐다. 걸핏하면 위원회 만들어 실세들 자리 만든다는 비판도 지겹다. ‘한식 세계화’로 미래를 대비한다는 ‘미래 타령’도 적당히 하자. 차라리 정통부 과기부 부활시키고 이공계 인사 입각 시켜라. 미래에 대한 철학과 가치를 보여주는 일이다. 미래를 ‘타령’으로 준비할 수는 없다.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서부터 우리의 미래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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