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오라클이 넷북까지 만든다면...

기자수첩입력 :2009/06/03 14:24

황치규 기자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놀던 오라클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넷북 시장까지 진출할까? 지금까지의 오라클을 보면 생각하기 쉽지 않은 시나리오다. 자동차 팔다가, 유아용 자전거까지 만들겠다는 것과 오십보백보다.

그러나 미래의 오라클이 계속해서 기업 시장에만 머물러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라클은 자바 기술을 소유한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인수 완료를 앞두고 있다. 자바는 21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포함해 총 45억 개 이상의 단말기에 탑재돼 있다. 오라클과 지금까지 거리가 멀었던 분야다. 그런만큼 오라클이 스스로 고정관념을 깨는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헤드라인부터 눈에 확 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가 넷북 시장 진출을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래리 엘리슨이 넷북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래리 엘리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자바원 컨퍼런스에 참석, 이렇게 말했다.

"썬-오라클로부터 넷북과 같은 기기들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이다. 약간 침소봉대하면 오라클이 넷북을 팔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이에 대해 오라클 대변인은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애널리스트들은 오라클이 넷북 분야에서 무엇을 할지 언급하기는 너무 이르다는 입장이다. WSJ은 ISI그룹의 빌 와이먼 애널리스트를 인용해 "(래리 엘리슨이)생각하고 있는 것을 도발적인 방법으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중 일부는 장기적으로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언급한 엘리슨의 발언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핵심은 아니었다. 그가 자바원 컨퍼런스에서 강조한 것은 SW였다. 하드웨어보다는 넷북용 자바SW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넷북 업체들이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부각했다. 리눅스에 기반한 안드로이드는 자바 기술도 포함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래리 엘리슨이 썬 인수를 통해 자바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북과 휴대폰 시장에서 자바 지분을 확대하겠다는 것도 분명히 했다. 오라클판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지금 시점에서 오라클이 넷북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심하게 급진적인 시나리오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해서 기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네트워크 장비 팔던 시스코시스템즈는 지금 동영상 캠코더 시장까지 진출해 있다. 거대 IT기업들이 성장을 위해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변신하는게 요즘 추세다. 이른바, '대통합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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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이 썬 인수 후 어떻게 변화할지는 국내서도 핫이슈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유통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 일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오라클이 레드오션인 서버 보다는 자바를 활용해 소비자 가전쪽으로 뛰어드는게 낫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WSJ 기사와 오버랩시켜보니 중장기적으로 오라클이 넷북이나 모바일 기기를 선보인다는 뉴스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SW와 하드웨어 그리고 서비스를 결합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부러워(?)하는 래리 엘리슨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