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위피 의무화 폐지와 국내 무선 인터넷 변화

일반입력 :2009/01/19 10:12    수정: 2009/01/19 10:12

박민우
박민우

지난 2008년 12월10일 방송통신위원회는 43차 회의를 열어 ‘이동전화단말기의 표준 플랫폼 규격 준수에 관한 전기통신설비 상호접속기준(고시)’을 개정해 2009년 4월1일부터 위피 탑재 의무를 해제하기로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위피(WIPI)는 결국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 것 같다. 하지만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하지 않은가, 지난 4년간 위피 탑재 의무의 독재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고 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위피의 탄생 배경부터 폐지 논란까지 주요 논쟁들

실제 위피가 탑재 의무화가 된 것은 2005년 4월이다. 정확히 만 4년이 되는 시점에 폐지가 되게 된 셈이지만, 시대를 거슬러 가보면 위피의 시작은 2001년7월 KWISF(한국 무선인터넷 표준화 포럼)의 모바일플랫폼 특별분과가 신설되면서 본격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당시 무선인터넷 플랫폼은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였다. 3개의 이동통신사는 각기 다른 플랫폼(SKT-SKVM, GVM / KTF-MAP, BREW / LGT-EzJava 등)에서 컨텐츠와 솔루션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하나의 이통사에서 2개 이상의 다른 플랫폼이 존재하여, 컨텐츠/솔루션 제공업체들은 처음부터 어떤 플랫폼에 탑재하게 될지를 충분히 검토하여 공급해야 하였다.

텍스트 정보부터 멀티미디어 컨텐츠까지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컨텐츠 프로바이더(CP)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모순된 구조에서 지속적이고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 이통사에게 통합 플랫폼을 제공해 달라는 요구는 감히 CP들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표준화 포럼 등을 통해서 통합 플랫폼의 필요성이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소규모 특별분과에서 시작된 위피가 정부의 관심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해외로 로열티 유출이라는 새로운 명분을 얻었기 때문이다.

당시 CDMA 로열티로 퀄컴에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엄청나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는 시점이었고, KTF가 퀄컴의 무선인터넷 플랫폼인 BREW를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논쟁이 자연스럽게 표준화된 국산 무선인터넷 플랫폼에 대한 필요성으로 발전하게 되어 2002년 3월 “위피 1.0” 스펙이 발표되면서 80억 정부자금으로 플랫폼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위피 1.0의 탄생 목적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표준화된 통합 플랫폼의 제공으로 컨텐츠 제공을 위한 중복투자를 해소하고, 퀄컴의 BREW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J2ME와 같은 플랫폼에 로열티 지출을 막고, 다양한 언어(C & Java)를 제공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출시 이후 위피의 상당부분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특허를 침해하고 있었고, 결국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 로열티를 다시 내야 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충분한 준비 없이 급하게 표준화만 시도하다가 또 다른 암초를 만나게 된 셈인데, 이 이후 위피 플랫폼에 부정적인 시각이 부각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초기 시작 단계부터 위피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나타내기 시작하였지만, 정부는 위피에 대한 집착이 점차 강해졌다. 무선인터넷 시장이 점차 성장하고 있지만 정부에서 이통사를 통제할 만한 충분한 명분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위피는 로열티 유출 방지와 플랫폼 표준화란 미끼로 얼마든지 이통사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수단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2004년 2월 “위피 2.0” 스펙이 발표되었고, 2005년 4월 결국 위피 탑재가 의무화 되었다. 이후 2006년 11월 1년반 만에 위피 탑재폰이 천만대를 돌파하는 등 위피가 순조롭게 시장에 적응 하는 듯 보였다.

위피 탑재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컨텐츠 제공을 위한 중복투자 방지가 실제로는 컨텐츠 호환성이 11% 수준으로 중복투자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었다. 오히려 강제로 무선인터넷 기능 제공으로 휴대폰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여, 음성통화만 가능한 저가 휴대폰의 출시를 막게 되어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게 되었다.

위피 폐지 논란이 본격화 된 것은 2007년 3월 KTF가 공식적으로 위피 미탑재 허용을 정통부에 요청하면서부터 시작 되었다. KTF 요청의 요지는 무선인터넷 접속 기능을 뺀 HSDPA 단말기에서 위피를 탑재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해 달라는 것으로 위피 탑재에 대한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무선인터넷 접속 기능 자체를 제외시키면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메모리 등 부품 단가를 낮춰서 저가 휴대폰을 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9월 방송통신위원회 자료를 보면 무선인터넷 접속기능 탑재 여부에 따라서 단말기 가격이 최대 2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고 되어있다.

KTF의 요청 이후 SKT는 정통부가 이를 허용할 경우 SKT는 HSDPA 뿐만 아니라 기존 휴대폰에서도 위피를 제외시키겠다고 반발하였다. 한참 3G로 통신망이 전환되는 시점에 SHOW라는 브랜드로 마케팅에 열중하는 KTF를 견제하기 위한 SKT의 전략이었다.

결국 KTF는 무선인터넷 기능이 없는 HSDPA 전용폰인 LG-KH1200을 3만대나 구매하였으나, 정통부의 제재로 개통하지 못하였고, SKT에서 도입한 블랙베리도 휴대폰으로 간주되어 출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정통부는 2.7인치 이상 PDA폰에는 위피 탑재 의무화의 예외를 적용한다는 이상한 규정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달 뒤인 4월 정통부는 “인터넷 서비스가 되지 않는 휴대폰에 한하여 위피 미탑재를 허용한다”고 발표하였고, 다시 5월에는 “법인 등 특정기관의 업무처리용 PDA폰에 한하여 위피 탑재 예외 규정을 허용한다”고 공문을 이통3사에 전달하였다.

어떠한 견고한 원칙도 예외 사항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하면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정통부의 위피 의무화는 2007년 예외사항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결국 폐지론까지 발전하게 된 셈이다. 특히 당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PDA폰의 경우 법인용 휴대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고, 이통사가 실 구매자가 개인인지 법인인지 유통과정까지 관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와 같이 위피 탑재 의무에 대한 예외 주장이 나오고, 정통부 또한 예외를 인정하게 되자 위피 의무화 폐지는 더욱 가속을 받게 되었고 결국 2008년 12월 위피 탑재 의무화 폐지를 공식 발표하게 되었다.

위피 의무화 기간 4년 동안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들

2005년 4월부터 2009년4월까지 4년간 위피 탑재 의무화를 통해서 가장 큰 수확은 국내 시장 보호라는 측면이 될 것이다. 한미 FTA나 WTO 등에서 위피가 통상마찰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외산폰 출시를 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통사의 경우도 위피가 탑재된 폰들이 많을수록 무선인터넷 접속의 기회가 증가하기 때문에 위피가 폐지되는 것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 결국 이통사와 휴대폰 제조사는 정부 차원에서 분명한 보호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위피의 원래 목적이었던 컨텐츠 중복투자 해소로 인한 컨텐츠 관련사업 육성은 오히려 뒷걸음만 치게 되었다. 11% 수준의 호환성으로는 중복투자를 해소 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해외진출이나 국제 표준화에 뒤쳐지는 결과만 초래하게 되었다.

결국 국내 컨텐츠 및 솔루션 개발사들을 지원한다고 만든 정책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위피 초기 정책의 목적은 어디로 실종된 것인가?

위피 의무화의 최종 피해자는 결국 또 소비자다. 정부는 오락가락 정책과 이통사나 휴대폰 제조사 보호에만 급급한 나머지 소비자의 권익을 찾아주는 데는 항상 실패한다. 위피 탑재 의무화로 소비자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휴대폰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었고, 저렴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가 침해되었고, 다양한 해외 제품들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통상압력의 빌미를 제공하여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자발적 참여유도를 저해 하였다. 결국 득보다 실이 많은 위피 의무화 정책은 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위피 의무화 폐지 이후 예상되는 시장 환경의 변화

그렇다고 위피 의무화가 폐지 되었기 때문에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긍정적인 영향만 생길 것이라는 추측은 금물이다. 우선 소비자 입장에서 과연 위피가 탑재되지 않은 저렴한 외산 단말기를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3G 환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통사의 잔머리(?)로 인하여 완전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김국현씨의 “2009 전파 개국론”이라는 컬럼에서 잘 언급되어 있는 사실처럼 외산 단말이 국내에 들어오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해당 단말기가 어떤 이통사를 통해서 개통이 가능한지를 확인하여 해당 대리점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 이통사와 대리점의 보조금 정책에 따라서 단말기 가격이 달라지는 촌극을 다시 봐야 할 것이다. 많은 얼리어답터들이 기대하는 3G 아이폰이 이통사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가격과 출시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위피가 탑재되지 않은 국내 제조사 단말기들 가격은 충분히 저렴해 질 것으로 기대한다. 어차피 이통사 입장에서는 1년에 한번도 무선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가입자들을 빨리 3G 환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서 빠르게 2G 사용자들을 3G로 전환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위피 의무화가 폐지되면 고가의 스마트폰들이 저렴해 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수출 비중이 83%에 해당하는 삼성전자가 저렴하게 내수용 폰을 제공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수출용 단말기 현지 가격을 역으로 환율을 적용하여 국내 시장가격을 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수준이라면 외산 단말은 환율 때문에 한동안 고가를 유지할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굳이 고가의 프리미엄 폰들을 국내에서 저렴하게 제공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오래된 제고 모델들은 위피가 빠지면서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동안 이통사에 컨텐츠와 솔루션을 제공하던 CP들은 이제 위피 뿐만 아니라 심비안을 포함한 더 많고 다양한 플랫폼을 수용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또 다른 중복투자를 피할 수 없으며 이번 폐지 결정으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국내 이통사 가입자가 폰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아마도 초기엔 무선인터넷을 필요로 하지 않은 가입자들부터 폰을 변경할 것이다) 약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무한 경쟁이 불가피 하다.

단순히 무선인터넷 플랫폼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폰 운영체제까지 고민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위피, BREW, 심비안 뿐만 아니라 MS의 윈도모바일, 아이폰에서 사용되는 맥OS, 구글폰에 사용되는 아드로이드까지 고려를 해야 한다.

앞으로 컨텐츠 솔루션 CP들은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CP들과 모바일 솔루션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애플 어플리케이션 오픈 마켓인 “앱스토어”를 예로 든다. 앱스토어는 2008년 7월 오픈 이후 6개월만에 1만개가 넘는 어플리케이션들이 등록 되었고 3억 건의 다운로드가 이루어질 만큼 엄청난 성장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포천지는 12월 기사를 통해서 “소프트웨어 플랫폼 역사상 최고의 성공작이라 불리는 앱스토어가 싸구려 물건을 파는 99센트 숍으로 변질되고 있다”라고 불안한 시선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유료 어플리케이션 판매 비중이 77%나 되지만 그 중 절반 가까이인 35%가 99센트짜리 어플리케이션들이다. 국내 오픈 마켓 같이 가격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품질보다 싼 가격의 제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스마트폰 시장이 활성화되고 사용자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오픈마켓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고비용이 드는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더라도 비싼 가격에 판매가 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을 이제 위피 의무도 폐지되었으니 업체들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다면 정부는 또 다시 무책임의 전형을 보여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동안 이통사와 단말 제조사 배불리기에 노력을 다했던 만큼 지금부터는 컨텐츠와 솔루션 제공 업체들을 장기적으로 육성하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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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피 의무화로 잃어버린 4년의 책임을 기업들에게만 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국내 시장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컨텐츠 육성 프로그램과 더불어 해외 시장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세계 표준에 부합하는 차기 위피 버전에 대한 투자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차기 위피는 외산 단말로부터 국내 제조사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국산 플랫폼이 외산 단말기에 쉽게 수용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하여야 한다. 언제나 한국은 위기에 강했다. 지금의 위기가 글로벌 무선인터넷 플랫폼으로 위피가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민우 IT컬럼니스트

IT 칼럼니스트, Convergence service platform Consul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