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과서 상용화와 어린이를 위한 User Experience

박민우입력 :2008/10/28 13:31    수정: 2009/01/05 00:19

박민우
박민우

'디지털교과서` 수업 오산대원초교를 가다

최근 기사 중에 한동안 잊혀졌던 디지털교과서 시범사업 사례를 소개하는 내용의 기사를 보게 되어, 다시 한번 디지털교과서 상용화 계획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07년 상반기에 발표한 '디지털교과서 상용화 계획'은 1년이 넘게 지났지만, 가시적인 성과나 효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정권교체에 따른 후유증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본 상용화 계획을 발표할 당시에는 교육인적자원부 였다.)

디지털교과서 상용화 계획은 2013년부터 초등학교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까지의 교과서를 말 그대로 디지털화 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교과서의 디지털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는지, 교과서 내용뿐 아니라 참고서, 학습사전, 동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정부와 민간업체가 함께 개발하여 보급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디지털교과서는 칠판을 대신하는 대형 디스플레이, 책과 공책을 대신하는 태블릿PC등의 학습단말기를 통해 보여지며 사용된다. 즉, 교과서의 단순 디지털화가 아닌 능력 평가, 학생에 대한 감시 등도 이루어지는 '학교 수업 시스템'의 변화이기도 하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시스템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디지털교과서란 단순히 교과서의 디지털화가 아닌 '학교 수업 시스템'의 디지털화라고 보아야 합당하다. 즉,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거대한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업체들은 안타깝게도 '교과서의 디지털화'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거 같다.

전자교과서 도입의 장점으로 꼽고 있는 목록들이 '책가방이 가벼워진다', '성적 평가가 쉬워진다', '학습 집중도가 높아진다', '교육격차가 해소된다', '사교육 의존도가 줄어든다' 등으로 현재의 교육 패러다임 안에서 약간 개선되는 사항들로만 한정되어 있다. 성적의 수치화라는 현행 교육제도의 틀도 그대로 둔 채 사교육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모순적인 모습이 보인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애석하게도 제법 오랜 시간 동안의 실험에서도 새로운 환경 속의 사용자인 초등학교 학생들로부터 전자교과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적절한 데이터들을 모아 그 경험을 녹여내는 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어린이라는 사용자로부터 적합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전자교과서의 주된 대상이 초등학생임을 염두에 두고 분석 작업의 어려움을 이해한다고 하여도, 현재와 같이 사용자의 경험이 등한시된 채 개발하고, 집행하는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환경, 어린이가 좋아할법한 GUI 수준으로 전자교과서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전자교과서는 교사, 학부모, 교육당국 등이 사용하는 행정 시스템이 아닌 어린 학생들이 사용하게 될 새로운 서비스이자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그 사용자는 보이지 않고, 제품만 보이고 있다.

디지털교과서에서의 사용자 경험(UX)

디지털교과서는 어떤 새로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을 주려고 하는 것일까? 디지털교과서에서의 UX는 무엇일까? 초등학생들이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컴퓨터와 사용자 사이의 상호작용(Interaction) 연구에서 시작된 UX(User Experience)는 어떤 시스템, 제품, 서비스를 직, 간접적으로 이용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사용자의 총체적 경험을 말한다. 좋은 사용자 경험은 사용자의 니즈에 맞추고, 사용하는데 즐거움을 주며, 사용자의 구체적 욕구를 채워 주는 것 이상을 만족시킨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제품과 서비스를 구축하는 단계에서부터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단계까지를 모두 아우라야 하기에 엔지니어링, 마케팅, 디자인, 심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사용자가 서비스를 어떻게 이해해서 받아들이고,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게 되는지에 대한 모든 상호작용을 설계하는 과정이 '사용자 경험 디자인 - UX design'이다.

UX는 정의도 다양하고, 사용성(Usability)과 쉽게 혼동되기도 하는데, 사용자 경험이 '사용자가 원하는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는 사용성과 구별되는 지점은 '사용자가 경험을 통하여 얼마나 기뻐했는가'일 것이다.

경영난 때문에 시의회로부터 폐쇄 결의안이 채택되었던 일본 북해도의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의 인기 동물원으로 바뀐 건 새로운 스타 동물을 영입하는 '신제품 출시'나, '동물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라는 사용성 개선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구경하는 관점의 변화를 통해 동물원 관람객의 경험을 즐겁게 바꾸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경험은 다른 경험에 비해 더 매력적일 뿐 아니라 사용자들이 더 많이 시도하게 하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닌텐도에서 내놓은 게임기, DS와 Wii도 재미있는 사용자 경험으로 성공한 대표적 예이다. 단순한 게임들을 터치 스크린과 모션 센서로 재미있게 조작할 수 있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수학 문제를 풀며 두뇌를 단련시키거나 TV앞에서 땀 흘리며 육체를 단련하게끔 만들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UX는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하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디지털교과서가 초등학생 어린이들에게 주는 사용자 경험은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책 형태의 교과서가 디지털화되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 책, 공책 그리고 참고자료 등을 함께 펼쳐두고 학습하는 형태가 아닌 단말기 한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점등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은 새로운 경험이라기 보다는 사용성 향상에 가깝다. 매개체가 바뀌었다는 것뿐 Task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재미있는 경험을 주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MIT 미디어랩의 설립자이자 <디지털이다>의 저자로 유명한 네그로폰테 교수가 이끌고 있는 OLPC(The One Laptop Per Child association)는 '100달러 노트북 컴퓨터'로 앞서 언급된 한계들을 극복하면서 어린이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실험하고 있는 대표적 예이기도 하다.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다섯 가지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어린이 소유여야 한다.

2. 어린이가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

3. 충분히 보급되어야 한다.

4.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5. 자유롭고 공개된 소스여야 한다.

이 원칙들은 사실 좀 더 넓게 '어린이를 위한 사용자 경험의 핵심 조건'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것이다.

디지털교과서를 위한 보다 국내 현실에 맞는 어린이를 위한 UX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오히려 어린이의 경우 세상의 흐름과 유행에서 떨어져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글로벌 하게 연구되어 온 위의 5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세부 연구 항목들을 분석하는 단계부터 시작하여, 한국적인 어린이를 위한 UX의 연구가 시작되어도 좋을 것 같다.

어린이를 위한 UX - 한국적 현실과 모순

웹 2.0의 열풍을 타고 한국에서도 UX design이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전의 웹사이트들이 화려한 GUI와 다양한 서비스로 보다 많은 사용자 유치에 집중했다면, 소위 웹 2.0 사이트들은 사용자의 범위를 좁히되, 기존의 사이트들이 제공하지 않았던 개방에 의한 상호 연결, 목적을 빠르고 쉽게 이룰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으로 사용자들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웹 2.0의 핵심 가치라 할 수 있는 참여와 공유는 사용자들이 이용하는 서비스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이고, 높아진 신뢰도가 쓸만한 콘텐트를 만들게 되며, 결국 서비스의 유용함으로 귀결된다. 그렇기에 많은 참여와 쉬운 공유를 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함께, 물질적 보상을 대신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의 UX design이나 연구는 성공 사례를 열거하기엔 사회적, 문화적 측면이 덜 반영된 걸음마 단계일 뿐 아니라 사용자 인터페이스보다 조금 더 확장된 개념 정도로 받아들여져 사용되고 있는 인식의 문제도 있다.

또한 폭넓은 포커스 그룹 인터뷰나 현장 조사 등을 하더라도 복잡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오랜 시간 사용하면서 익숙해져 사용하기 쉽고 편하다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해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지 못하거나, 이미 익숙함을 느끼는 많은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강요'하기 부담스러워서 추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재미있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모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기업들이 주요 구매자 또는 사용자로 분류하고, 그 분석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성인들을 위한 연구도 부족한 현실 속에서 디지털교과서의 주요 구매자로 분류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UX 연구 사례에 대해서는 그 자료를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누가 이런 연구를 해야 하는가?

'디지털교과서 상용화 계획'의 주체인 교육과학기술부의 몫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와 학부모인가?

사범대학 심지어는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사교육인 방문학습업체들과 연계한 연구가 필요한 것인가?

교육,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단순한 교과서 디지털화는 특히 성장하는 어린이들에게 정서적으로 교육적으로 잘못된 영향의 우려가 크다.

당사자인 어린이들에게 실질적이고 유용한 가치를 전해주지 못하는 디지털교과서 사업은 그에 투입되는 많은 예산과 노력을 헛되이 할 뿐 아니라, 피교육자들에게 많은 고통과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전자교과서를 위한 UX 연구와 적용은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디지털화된 교과서와 그 교과서만을 열람하기 위한 학습 컴퓨터를 통해 교육받은 어린이들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행여나 기대와는 달리 컴퓨터 자체를 외면하고 교육 자체를 부정하게 되지는 않을까? UX란 쉽게 말해 재미있는 드라마와 같이 어떤 가치를 사용자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주는 모든 과정이다.

같은 행위도 새로운 경험으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가치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 교과서가 갖는 위치를 생각할 때 디지털교과서는 그 기술적 논의나 실험에 앞서 어떤 가치를 학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교육계에서는 교육 현장과 교육학, 심리학, 아동학, 인류학 등 관련 학계와 함께 보다 심도 있게 논의하고 고민해야 하며, 그 결과를 토대로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의 GUI의 버튼 디자인 하나까지 충실한 전달자이자 플랫폼을 만들 수 있도록 IT업계와도 긴밀하고 적극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어린이들에게 재미있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성공적인 디지털교과서 사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교육과 UX에 정해진 정답이란 없다. 어떤 방식이든 장점과 단점이 있으며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관련 업계와 학계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며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을 제공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생명력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민우 IT컬럼니스트

IT 칼럼니스트, Convergence service platform Consul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