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경매 문화에 대한 e베이의 파괴력은 급변하고 있는 경제 변화의 전형이다. 새로운 산업과 마켓플레이스가 탄생하고 여러 곳으로 퍼져나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기존의 것들은 소멸된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e베이에 대해 고객은 ‘찬사’와 ‘넋두리’를 함께 한다. 몸은 온라인으로 움직이지만, 아직 마음이나 생각은 100% 온라인화 되지 않은 까닭이다.
로버트 맥키언의 집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가 장난감 수집가라는 사실을 먼저 알 아 차린다. 거실의 한쪽 벽면은 1960년대 중반 처음 등장한 바비 인형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빈티지 바비로 가득 차 있다.
1960년대 TV 프로그램인 ‘UNCLE에서 온 남자’의 주연 배우들은 교외의 아이콘을 오만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오래된 라디오 미스테리 프로그램인 섀도우 크라임 파이터 보호벨트가 바로 옆의 책장에서 ‘사람의 마음속에 잠재된 악마’를 찾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3000개 이상의 물건들이 맥키언의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e베이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그는 e베이가 오픈한 후 2주 정도 지난 뒤부터 e베이의 단골 고객이 됐다. 그와 그의 아내 디안 리틀은 온라인에서 수천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은 재판매하는 물건들이다. 이 부부는 독립 영화의 DVD 사업권과 배급 사업을 하고 있다.
호리호리한 스타일로 올해 39세인 맥키언이 집 근처 교외에 있는 한 중국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올해 노동절에 10주년을 맞는 e베이에 대한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e베이가 그레이 마켓 경제 체제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자신과 같은 수집가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때 수집가 커뮤니티를 대표했던 골동품 전시회나 교환 행사 등 화기애애하고 단란한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며 한탄했다.
“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수많은 물건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을 e베이 탄생 이전의 문화와 맞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막강 온라인 비즈니스 창출
e베이는 실제로도 막강한 온라인 경제 파워를 과시한다. e베이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이용자만 1억 5700만명에 달하며, 그중 7500만명은 미국인이다. 또한 분기당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경매와 다른 판매 지원을 통한 판매규모도 분기당 110억 달러에 달한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경제학자 알빈 로스는 “e베이는 전에는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지역 시장에 그쳤던 많은 상품들에 대해 전국적인 규모의 시장을 제공했다. 또 존재하지도 않던 시장도 새롭게 만들어냈다. 이로써 전반적인 경제 효율성도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e베이를 좇아 인터넷에 합류하지 않은 사람들의 반론이다. 오레곤 유진에서 골동품 딜러를 하고 있는 스티브 나톨리는 “e베이는 골동품 비즈니스를 파괴하고 있다. 과거의 전시회는 문을 닫았고, 지금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조차 힘들다”고 토로했다.
1995년 옥션웹으로 출발
제네럴 매직의 엔지니어였던 피에르 오미디아르가 1995년 ‘옥션웹’이란 사이트를 처음 오픈했을 때만 해도 이 사이트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미디아르에게 이 사이트는 단순한 취미 이상이었다. 그는 당시 자신의 고장난 레이저 포인터를 14달러에 판매한다며 처음으로 사이트에 등록했다.
당시에는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 지역별 전시회가 일반적이었고, 참석률도 높았다. 최고로 꼽혔던 대부분의 전시회는 진정한 커뮤니티로 인정받았으며, 정기적으로 참가하는 사람들은 서로 잘 알고 지내기도 했다.
나톨리는 “바로 눈앞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만져볼 수도 있고, 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바로 눈앞에 있다. 관련 지식도 이곳에서 얻을 수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물건을 볼 수 있고, 그중에서 자신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고 회상했다.
예를 들어, PMA라는 전시회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의 컨벤션 센터 빌딩 3개를 임대해 성대하게 열렸다. 사람들도 e베이 본사로부터 몇 마일 떨어진 주차장까지 넘쳐났다.
PMA를 주관했던 패트릭 브로간은 e베이와 제휴하는 것까지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신설된 지 얼마 안 된 온라인 경매업체였던 e베이는 1998년 PMA 전시회에 부스를 마련했다. 그러나 e베이 직원들이 전시회 참관객들에게 참가비를 내면서까지 골동품 전시회에 오지 않고도 e베이에서 무료로 쇼핑할 수 있다며 설득하자 브로간은 e베이와의 관계를 즉시 단절해버렸다.
당시 수집품들을 두루 살펴보았던 e베이 CEO는 행사가 열린 시점은 자신이 e베이에 합류하기 이전이지만 e베이는 행사를 계속 후원했으며 다른 전시회에도 참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지난해 말에는 수집품 시장 관계자들과 좀 더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들을 e베이 사무실로 초청했다고 덧붙였다.
e베이 수집품 부문 수석 카테고리 매니저 로렌스 토니는 “e베이가 오프라인 시장을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또 다른 공급채널을 제공하려는 것뿐이다”며, “우리의 목표는 커뮤니티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수집품 관련 분야가 계속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점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도 수집가들의 문화에는 이미 전자적인 방식이 침투하고 있었다. 당시 토이숍 매거진 등 일부 업체들은 전화 경매를 후원했다. 또한 판매자들도 인터넷의 유즈넷 뉴스그룹을 이용해 광고 형식으로 물품 자료를 온라인에 올리는 등 이메일 기반의 경매를 이미 경험하고 있었다.
1998년 기업공개 후 급성장 가도
나중에 ‘e베이’로 사이트명을 바꾼 오미디아르의 옥션웹은 맥키언 같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새크라멘토 장난감 수집가였던 맥키언은 이 사이트가 오픈하고 2주가 지난 뒤 오픈 소식을 알게 됐고, 곧바로 단골 고객이 됐다. 맥키언에 따르면 당시는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품이 거래되고 있었다. 또 유즈넷이나 전시회에서 구매하는 것들보다 훨씬 저렴한 물품도 종종 눈에 띄었다.
오미디아르 스스로도 이 사이트가 커뮤니티로서 자리잡았으며, 최소한 오프라인에서 수집가들의 전시회나 물품 교환 행사 정도로까지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정기 방문자들에게 만족도를 묻는 이메일을 자주 발송했고, e베이뿐 아니라 방문자들이 원하는 다른 경매에 관해서도 토론할 수 있도록 포럼을 개설했다.
초기에는 정기 방문자였지만 현재는 e베이의 대변인(공식 직함은 e베이 교육 학장)을 맡고 있는 짐 그리프 그리피스의 이직도 이 포럼이 계기가 됐다. 그리피스는 1996년 e베이 포럼에 자주 글을 올렸다. 오미디아르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 경매시스템에 낯선 사람들을 위해 안내와 길잡이를 맡아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e베이의 가장 대중적인 사람 중 하나인 그리피스는 “커뮤니티의 힘은 e베이의 시작 때부터 소유권과 경계를 짓는 무언가를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이 커뮤니티에서 매우 강력한 힘을 느꼈다. e베이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e베이는 지난 10년 동안 단순한 취미 사이트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파워사이트로 변신했다. 1995년 9월 피에르 오미디아르, 옥션웹(AuctionWeb) 오픈 1997년 9월 옥션웹, e베이로 사이트명 공식 변경 1998년 5월 멕 휘트먼, CEO로 선임 1998년 7월 기업 공개 1998년 9월 e베이 주가, 거래 첫 날 160% 이상 증가 1999년 4월 e베이, 버터필드 앤 버터필드(Butterfield & Butterfield) 옥션하우스 인수 1999년 4월 휘트먼, IT 업계 최초 여성 CEO 등극, 페이팔(Paypal) 인수 2005년 6월 쇼핑닷컴(Shopping.com) 인수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에 졸속으로 만들어진 커뮤니티에 대한 느낌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해즈브로 중역이던 맥 휘트먼이 1998년 초 e베이 수장으로 영입되면서 같은 해 기업 공개도 이뤄졌다.
기업 공개 후 몇 년 동안 e베이는 세계 시장으로 급속히 확장됐고, 미국에서도 기능 뿐 아니라 회원수가 급증했으며, 온라인 지불업체 페이팔과 다른 기업들도 인수했다. 야후와 뉴스닷컴 운영업체인 CNET네트웍스 등 다른 기업들도 자체 경매 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e베이의 경쟁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e베이의 이같은 확장에 대해 일부 사용자들은 커뮤니티가 전과 달라졌다며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또 수수료가 계속 오르면서 부작용도 생겨났다. 일부에서는 골동품 수준인 구식 머스켓총까지 포함해 모든 화기에 대한 거래 금지와 취소된 경매에 대한 이의제기 프로세스 부족을 거론하며 e베이가 너무 독단적이라는 불만도 제기하고 있다.
e베이 중역들은 분기마다 ‘Voices’ 프로그램까지 운영하면서 사용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Voces’ 프로그램은 커뮤니티의 다양한 사람들을 초청해 e베이의 운영에 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e베이도 100만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초기 수천 명의 의견을 듣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온라인 경매 방식도 계속 진화해야 한다
그리피스는 “초창기 커뮤니티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자체적으로 유지됐다. 지금도 유사한 방식이기는 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면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적절히 절제하도록 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크나큰 도전이다”고 토로했다.
e베이가 급성장하고 있는 사이 오프라인 문화도 완전히 바뀌었다.
수집가들로 발 디딜 틈 없었던 대부분의 전시회가 문을 닫았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이어리어에서 열리는 브로간의 PMA 전시회도 참가자가 반으로 줄면서 컨벤션센터 빌딩 임대를 3개에서 1개로 축소됐다.
아직도 골동품을 수집하고 있는 그리피스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낀다면서도 변화는 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수집가들, 딜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들 중 누구도 e베이가 실제로 세계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라도 어떤 시장에서 스스로를 보통사람이라고 여기고 정지된 채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장의 변화는 언제나 앞서갈 수밖에 없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