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창조한「킬러 애플리케이션」

일반입력 :2003/02/08 00:00

안윤호 (아마추어 커널 해커)

양서류인 두꺼비는 생존을 위해 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두꺼비 중에는 사막에 사는 종류가 있다. 미국의 남서부 사막은 몇 달씩 비가 내리지 않고 때로는 몇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이 없으면 양서류의 피부 호흡이 중지되고 세포들은 말라 버릴 뿐 아니라 올챙이를 만들어 낼 물웅덩이도 찾을 수 없다. 하나의 기적이지만 두꺼비는 이러한 조건에서도 멸종하지 않는다. 소나기와 천둥두꺼비의 생존 전략은 매우 간단하다. 건조한 시기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보존한다. 모래 구멍을 뚫고 들어가 모든 대사를 최소화한다. 물 한 방울도 아끼고 체내 에너지 소모를 극소화하면서 몇 달을 버틴다. 두꺼비는 비가 올 때까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휴면 상태에서 너무 빨리 깨어나면 물과 영양분을 소모해 버리기 때문에 다시 모래 구멍으로 들어가더라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어려운 시기에 살아남는 두꺼비는 오랫동안 확실한 비가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잔다. 폭우가 내리면 두꺼비는 지표 밖으로 나온다. 이때 두꺼비의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난다. 두꺼비는 호르몬의 변화를 감지하고 물웅덩이를 찾아 미친 듯이 몰려든다. 이러한 상황은 두꺼비들에게는 일종의 천국이 된다. 그래서 두꺼비의 번식도 비가 내리는 동안 이루어진다. 평상시에 움츠리고 조용해 보이던 두꺼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동물학자들은 몸 안의 테스토스테론(스테로이드계의 웅성(雄性) 호르몬)이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두꺼비에서 보는 것과 같은 갑작스러운 테스토스테론의 다량 분비는 자연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이다. 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는 미친 듯이 활동을 해야 두꺼비는 살아남고 번식할 수 있다. TV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이러한 장면들은 다른 동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자원이 사라지면 에너지의 소비는 갑자기 움츠러들고 다시 자원이 생기면 갑자기 에너지가 분출된다. 에너지의 소스가 발견되면 자연의 메커니즘은 이전에 비축된 몸의 에너지를 미리 분출시킨다. 몸의 대사장치는 새로운 음식이 흡수되면 자연적으로 저장되었던 에너지를 혈관 속으로 분출한다. 음식물이 몸으로 다 흡수되기도 전에 힘과 포만감이 넘치며 자신감과 공격성이 넘쳐나게 된다. 당연히 활동성도 증가하여 다른 개체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선점하려 한다. 때로 테스토스테론은 양이 너무 많아지면 동물의 광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도 한다.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집단도 비슷한 경과를 겪는다. 급격한 행운을 누리게 되는 집단은 승리감에 도취되고 이들의 테스토스테론 레벨은 급격하게 높아진다. 자신감과 공격성이 극적으로 증가하며 아주 작은 번영의 단초 역시 자신감과 힘을 주입할 수 있다. 초기의 승리로 얻어낸 다른 집단과의 작은 차이는 나중에 IT의 역사를 다시 쓸 만큼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컴퓨터의 역사에서도 이러한 일들은 여러 번 있었다. 고난의 시기에 움츠러들어 있던 사람들이 어떤 변화의 예감을 느끼고 어느 날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다. 초기에 성공적으로 변화할 수 있던 운이 좋은 사람들은 변화를 주도할 수 있었다. 나머지 참여자들은 다시 조용히 살게 되었다. 때로 정보산업의 역사가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패턴은 문학이나 역사에서 ‘혁명’이나 ‘전쟁’과 같은 모습으로 많이 볼 수 있는 테마이다. 많은 경우에 운(運)으로 보이는 힘이 작용한다. 8비트 시장의 형성 사람들의 절망이나 도전을 위한 모색은 가끔씩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1970년대 냉전세대의 광기 어린 분위기 속에서 반도체 회사의 쓰레기통을 뒤지던 10대들에 의해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필자는 지난 컬럼 ‘펠젠스타인과 홈브루 컴퓨터클럽’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의 주된 출처는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이라는 스티븐 레비의 책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애플, 아타리, 코모도어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같은 회사들은 그 당시의 역사(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책의 2부인 하드웨어 해커 편에는 펠젠스타인이라는 사회주의자 해커와 이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양한 과거를 가진 하드웨어 해커들이 등장한다. 순수한 기술적인 관심사, 컴퓨터를 만들고 싶다는 어린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그리고 이들로부터 마이크로컴퓨터와 퍼스널 컴퓨터 산업이 시동되었다. 실리콘밸리 키드들은 Don Lancaster의 「TTL cookbook」이나 Adam Osborne의 「Introduction to Microcomputer」 같은 책을 보고는 미친 듯이 개발에 뛰어 들었다.앞서 말한 스티븐 레비의 책을 독자들이 읽어본다면(다른 책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과거의 기록이나 파편들이 말하는 8비트 컴퓨터를 본 적조차 없기 때문에 책 내용의 일부는 상상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쓰레기 매립장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이러한 기계들에 역사의 단서가 묻혀있다. 이 기계들의 잔해와 기억의 파편 속에서 PC 왕국의 역사를 찾을 수 있다. 대체로 초기의 제품들은 성능상 도저히 컴퓨터라고 부를 수 없는 디지털 전자장치지만 화면이 있고 키보드가 있었으며 간단한 연산이 가능했다. 빌 게이츠의 MS는 초기의 마이크로컴퓨터들에서 동작하는 베이직 인터프리터를 구현하면서 출발하였고, 1975년부터 1977년 간에 걸쳐 갑자기 엄청난 수의 마이크로컴퓨터들 중 많은 수가 홈브루 컴퓨터클럽의 멤버들로부터 출발하였다. 애플은 그 이전까지는 컴퓨터라고 부르기 힘든 제품들과 차별화된, 그래도 키보드와 디스플레이 화면이 있는 제품을 출하하면서 가장 초기에 시장으로 진입한 회사였다. 디지털 로직 회로 설계에 소질이 있던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차고에서 애플 I을 만들었다. 이들 역시 홈브루 컴퓨터의 일원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근처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이들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계산기와 폭스바겐 밴을 팔아 자금을 만들고 잡스의 집에 있던 차고에서 애플 I을 개발했다. 목재 합판에 회로판과 키보드를 얹은 애플 I은 근처의 전파상 같은 곳에서 바로 팔려나갔고 작은 규모의 투자를 받아 애플 II가 개발되었다. 애플 II와 다른 마이크로컴퓨터들의 초기에는 열광적인 수요가 있었다. 애플 II는 하얀 플라스틱 케이스 속에 담겨 있었으며 전자제품 같이 보이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좋아했기 때문에 애플 II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으나 곧바로 문제에 봉착하였다. 애플뿐만 아니라 다른 컴퓨터 업체들도 갑자기 이 문제에 봉착하였다. 그 문제란 바로 컴퓨터를 가지고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초기의 판매량은 컴퓨터 자체에 흥미를 갖는 기술지향적인 집단이 취미로 구매하였으나 일반인들은 베이직만 들어 있는 컴퓨터를 가지고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이로 인해 판매는 갑자기 정체되기 시작했다. 컴퓨터광이나 게임 마니아들에 대한 컴퓨터 판매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모처럼 일어나기 시작한 퍼스널 컴퓨터 산업은 쇠락 국면에 들어가는 듯 했다. 새로운 수요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컴퓨터로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자랑하던 기술적인 사용자 집단의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이들을 제외하면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료처리용 소프트웨어가 몇 종 발매되고 있었고, 일반인을 위하여 간단한 데이터베이스와 회계용 패키지들이 개발되기는 하였으나 이들은 당시의 하드웨어에 적용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로 인해 마이크로컴퓨터 혁명은 5년을 못 넘기고 사그러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이 대두되었다. 비지칼크「우연의 왕국」이라는 로버트 크린즐리의 책이 있다. 책의 내용은 인간적인 약점과 실수 투성이의 주인공들로부터 실리콘밸리의 거대 산업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로버트 크린즐리는 IT 세계의 가십성 기사를 많이 썼으며 ‘현장으로부터의 목소리’라는 컬럼을 연재했다. 사람들은 인포월드에 실린 크린즐리의 글을 좋아했다. 크린즐리는 미국의 정보산업에 대해 선정적이고 신랄한 글을 썼다. IT 산업에서는 루머와 소문이 일종의 법칙과 같은 것이며 일종의 유용한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 크린즐리의 지론이었다. 애플의 12번째 입사한 사원이기도 했고 스탠포드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으며 PBS에서 I,Cringely라는 코너를 담당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우연의 왕국」은 얼마나 많은 우연(통제할 수 없는 변수)이 산업의 부침에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크린즐리의 신랄한 필법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가리지 않는다(이 책은 전자신문사에서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절판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의 성공은 우연에 좌우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책에서 크린즐리는 성공의 제일 큰 요소가 운(재수)이며 절대로 운이 없는 사람들과는 사업을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다. 노력이나 실력보다도 운이 최고라고 단언한다. 애플 II를 개발하던 당시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우연히 개발된 스프레드시트가 애플 II의 진입장벽을 낮추어 주었다. 스프레드시트는 지금의 MS 액셀의 전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액셀 이전에는 로터스 1-2-3가, 그리고 최초의 스프레드시트로는 비지칼크(VisiCalC)가 있었다. 비지칼크는 기업체 중간 관리자들의 인기를 차지하였다. 메인프레임을 사용하지는 못했으나 계산 처리를 하고 중소 기업의 고객들에게 상담을 해주어야 하는 관리자들은 비지칼크의 사용법을 빠르게 배웠다. 비지칼크는 초기에 애플 II 기종에서만 동작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애플 II는 호사가들의 장난감이 아닌 사무용 기기로 사용될 수 있었으며, 메인프레임과 미니컴퓨터가 아닌 퍼스널 컴퓨터의 새로운 영역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비지칼크를 사기 위해서 사람들은 애플 II를 구입하였다. 이 프로그램의 개발자 댄 브리클린은 프로그래머 생활을 하기는 하였으나 졸업 후 경영대학원에 입학하였다. 경영대학원에서 필요했던 기능을 구현하다 보니 스프레드시트가 개발되었다. 대학원생이던 그는 계산마다 일일이 프로그래밍하는 대신 융통성 있는 포맷의 프로그래밍을 모색하였다. 비디오 게임기와 유사한 모양의 휴대용 계산기를 만들려 하였으나 당시의 하드웨어 기술은 그 정도의 수준을 만족할 수 없었다. 브리클린의 대학원 재학 시절 제조업 분야의 강의는 커다란 칠판에 시간, 재료, 인건비 등을 적고 이들을 항목별로 나누어 적고 따로 계산을 하며 정리하였다. 인건비나 임금비율이 한 항목이라도 바뀌면 칠판 몇 개를 다시 계산해야 했다. 브리클린은 이런 일반적인 계산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와 계산방식이 주어지고 이들의 관계만 설정되면 하나의 항목이 바뀌어도 모두 자동으로 재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날 액셀의 사용자들이 계산 테이블을 만드는 방식이 바로 이런 방식이다. 브리클린은 주말을 이용하여 자신의 버전을 테스트하였다. 처음에는 베이직으로 작성되어 매우 느리기는 하였으나 기본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하나의 항을 변경시키면 관련된 모든 계수가 바뀌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사용자들은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었다. 컴퓨터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어도 간단한 프로그래밍만으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하게도 1978년 초에 브리클린이 비지칼크를 만들어 테스트하고 있을 때 시장은 애플 II, 코모도어 PET와 라디오 샥의 TRS-80으로 삼분되어 있었다. 브리클린은 마이크로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특정 컴퓨터에 대한 선호도 같은 것은 없었다. 그의 개발 동료인 밥 프랑크스톤과 함께 비지칼크를 작성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업자로부터 빌려온 컴퓨터가 바로 애플 II였다. 한 달을 예상한 개발기간이 1년 정도로 연장되고 시장에 나왔을 때 처음의 반응은 별로 없었다. 애플의 반응도 매우 미온적이었다. 제품이 출하되어도 판매가 신통치 않았으며 애플 이외에 메이커의 반응도 미온적이었다. 당시까지는 이러한 제품이 없었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스프레드시트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다. 초기에 비지칼크를 구입한 사람들 중에는 기업인들도 끼여 있었다. 이들은 복잡하지 않은 비지칼크로 자신들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스프레드시트의 중요성을 즉각 파악하였다. 유용성이 입증되면서 기업이나 회사에서도 비지칼크를 구입하였고 이에 따라 애플 II의 판매도 증가하였다. 당시 애플 I의 판매 전략의 우수성보다는 비지칼크를 사용한 열성적인 팬들에 의해 애플 II가 성공할 수 있었다. 애플의 성공 이면에는 비지칼크라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있었던 것이다. 비지칼크는 이른바 ‘킬러 애플리케이션’ 또는 ‘킬러앱스’라고 불리는 제품들의 효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킬러앱스들은 최초로 시장에 나와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시장을 지배하는 제품들을 말한다. 킬러앱스들의 성공은 전혀 무관한 제품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시장을 재구성하며 기존의 제품들을 시장에서 추방하기도 한다. 경쟁사, 제품, 회사 모두의 관계는 혼돈에 빠지고 시간이 지나야 재편이 이루어진다. 비지칼크 이후로 기업에서는 퍼스널 컴퓨터를 활발하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메인프레임 컴퓨터나 미니컴퓨터에 대한 의존이 낮아지고 시장의 개편이 일어났다. 8비트 시장에서 애플 II는 일종의 킬러앱스가 되었다. 기술지향적인 사용자만의 시장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면서 갑자기 커다란 수요가 일어났다. 기술적인 해커들만 마이크로컴퓨터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훨씬 나중인 1990년대 초반에 나타난 다른 부류의 킬러앱스인 월드 와이드 웹(WWW)의 등장은 현재에도 모든 것을 재정립하고 있다. 킬러앱스는 개발자에게 부나 명성을 갖다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킬러앱스에 의해 고사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킬러앱스는 우연히 나타나 세이(장 뱁티스트 세이)의 법칙인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등식을 생각나게 한다. 킬러앱스의 탄생은 하나의 징표를 나타낸다.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것이 무엇인가가 안개 속에서 윤곽이 드러나듯 나타나고 시장은 재편된다. 초기의 킬러앱스는 무시되거나 비난받지만 얼마 후에는 신성시된다. IBM PC8비트 퍼스널 컴퓨터가 자리를 잡아가던 1980년경 애플 아타리 코모도어 등의 마이크로컴퓨터 회사는 10억불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IBM의 매출은 500억 달러에 달했다고 하는데, IBM 소속의 한 연구소인 ESD(Entry System Division)의 개발 책임자는 1년 만에 퍼스널 컴퓨터를 개발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제품을 내놓은 이유는 각 개발 부서간의 알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책임자인 빌로는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의 IBM으로는 파격적인 전략이었다고 평가받는 이 결정은 PC의 역사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8비트의 부속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나 성능은 떨어지는 인텔의 8088 프로세서를 채택하였다. ESD 팀은 8086이나 진보적인 다른 회사의 제품을 차분하게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기본 하드웨어는 사업개시 결정 후 1개월만에 설계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소프트웨어는 당시에 유력한 8비트 운영체제인 CP/M을 선정하기로 하고 베이직 인터프리터는 당시로서는 작은 업체 중 그래도 전통이 있다고 생각하는 MS의 제품을 채택하기로 결정한다. 사업이 확정되면서 운영체제 선정을 위해 직원들을 당시의 시장 점유율 1위인 CP/M이라는 8비트 운영체제 개발사인 디지털 리서치로 파견하였으나 사장인 개리킬달은 자가용 비행기로 하늘을 나는 취미에 빠져 사전 약속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지 않았다(날씨가 너무 좋아 비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IBM의 불평등한 비밀유지 계약이나 경영자보다는 개발자에 가까운 개리킬달의 경영방식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곤 한다. IBM은 인터프리터와 함께 운영체제를 MS에 맡겼으나 MS는 운영체제를 갖고 있지 않았다. IBM에 운영체제를 개발해 주기로 큰소리친 MS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라는 근처의 회사가 개발한 CP/M의 16비트 클론의 사용권을 5만 달러에 구입하였다. QDOS라는 이 제품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으나 MS의 제품구입 시기가 매우 절묘하였다. 또한 QDOS는 CP/M의 모방 또는 도용에 가깝다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QDOS는 얼마 후 MS-DOS라는 이름으로 거의 모든 PC에 탑재됨으로서 MS는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됐다. 우리는 CP/M의 유산인 BIOS 호출 같은 이름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BIOS 호출은 CP/M과 MS-DOS가 거의 유사하였다. 이처럼 MS-DOS가 하나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라면 빌 게이츠는 운과 타이밍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MS-DOS의 킬러 애플리케이션 진입은 비지칼크와는 다른 모델이었다. IBM은 회로의 부속 칩들을 모두 외주로 줬고 개발 시간의 부족으로 인해 시리얼카드, 비디오카드, 그리고 병렬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하드웨어도 모두 써드 파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규격과 기술문서를 모두 공개하였다. 당시의 불분명한 사업전망과 메인프레임의 클론이 합법적이라는 판결로 인해 PC의 복제와 써드 파티 참여를 모두 어느 정도 방조하였다. 써드 파티의 노력의 결실인 하드웨어 개발로 IBM PC 자체의 판매량도 증가하였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IBM PC의 판매량은 이러한 개방성에 의존한 바가 많다. IBM PC 역시 하나의 킬러앱스라고 불릴만 하지만 진입모델은 불합리한 대기업 내에 있던 혁신 그룹에 의해 우연히 진행되었다. 필자는 오늘날 IBM PC에서의 개방성 모델이 하나의 기술 표준 전략처럼 소개되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은 ‘우연’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IBM PC에 의해 16비트 시장은 급작스럽게 그리고 힘겹게 생성되었다. 하지만 개발의 주역들은 회사의 원칙을 무시한 파격적인 개발로 IBM 내에서는 중용되지 않았다. IBM PC는 IBM의 명성을 등에 업고 초기에 3만대에서 5만대 정도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애플 II를 추월하였으나 시장의 규모는 IBM PC의 장점을 살리는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면서 다시 커졌다. 그 시작을 로터스(Lotus) 1-2-3로 보는 사람이 많다.로터스 1-2-3당시의 대세인 8비트 컴퓨터들은 CP/M 운영체제로 무장하고 애플 II나 다른 컴퓨터에서 3000여종 이상의 호환성 있는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IBM PC를 구입해도 애플리케이션이 별로 없는 상황이었으며 IBM PC는 상대적으로 큰 장점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8비트와 16비트의 싸움은 초기에는 16비트 쪽이 불리했다. IBM PC의 보급을 여는 킬러앱스인 로터스 1-2-3는 미치 케이퍼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 로터스 1-2-3 역시 스프레드시트였다. 스프레드시트는 댄 브리클린의 작품으로 컴퓨터 이외의 분야인 경영학을 위한 목적으로 홀연히 출발하였으나, 로터스 1-2-3는 바퀴(스프레드시트)를 재발명하면서 비지칼크에 식상한 사용자들을 끌어들였다. 「우연의 왕국」에서는 비지칼크는 댄 브리클린의 천재성에 의해 탄생하였고 로터스 1-2-3는 미치 케이퍼의 안목에 의해 탄생하였다고 평했다. 안목이란 잡다한 각종 시장에서 시장의 장래성을 가진 제품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안목은 일종의 기술적 몽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몽상에 따라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있어서 우수한 엔지니어를 만나 안목과 기술을 접목시켜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미치 케이퍼는 IBM PC의 성공을 확신하였다. 따라서 PC 플랫폼에 특화된 스프레드시트와 핵심 패키지의 개발이 필요하지만 시장에서 아무도 IBM PC용으로 스프레드시트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IBM PC의 개발 당시 IBM PC에서는 비지칼크와 MS의 멀티 플랜이 판매되고 있었으며 IBM도 이를 진지하게 고려하기는 하였으나 비지칼크와 멀티플랜보다는 강력한 성능이 필요했다. 미치 케이퍼는 비지칼크의 애드온 프로그램인 비지플롯/비지트렌드를 개발하면서 핵심 프로그램은 큰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120만 달러에 비지코프에 판매하고 남은 돈 중 30만 달러를 들여 IBM PC와 PC-DOS의 응용 프로그램 연구에 착수하였다. 당시에는 IBM이나 MS조차 자신들의 제품 성공에 확신이 서지 않았던 때이므로 그 당시로는 상당한 모험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스프레드시트와 그래픽 기능, 그리고 간단한 데이터베이스 매니저를 갖고 있었다. 1-2-3라는 이름은 이 애플리케이션이 3개의 모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치 케이퍼의 안목은 PC에 최적화된 강력한 성능의 구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256KB의 과감한 메모리 사용, 그리고 300만 달러의 모험자본을 유치하여 전문 잡지가 아닌 일반 대중 잡지에 대한 광고로 출하 후 한 달 동안 1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발매 첫해인 1983년에는 목표치 400만 달러를 초과하여 5300만 달러의 매출을, 1984년에는 1억 5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였다. MS는 1984년 자신보다 큰 회사인 로터스의 매입을 시도한 바 있다. 계약이 성립되기 전 동업자의 반대로 무산되기는 하였으나 성립이 되었으면 MS의 세 번째 대주주가 탄생되었을 것이다. 비지칼크는 1985년 댄 브리클린과 비행기에서 만난 미치 케이퍼가 그 자리에서 제시한 인수조건을 받아들여 로터스에 합병되고 소멸되었다. MS는 멀티 워드와 멀티플랜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었다. 이들은 그 당시 최고는 아니었으나 도스 호환이라는 무기로 잘 꾸려 나갈 수 있었다. 얼마 후 로터스의 스프레드 시장 지배는 약해졌다. 1986년 경영권 문제로 미치 케이퍼는 로터스를 그만둔다. 로터스 1-2-3와 같은 시기와 때를 맞추어 나온 많은 애플리케이션에 힘입어 IBM PC의 판매량은 수만 대에서 수십 만대, 그리고 수백 만대까지 늘어났다. 초기에는 확실한 애플리케이션이 없었으며 시장에서 생존마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본다면 놀라운 변화였다. 16비트는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와의 경쟁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승리했고 이 시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MS와 빌 게이츠였다. IBM은 16비트 하드웨어를 장악하였으나 거대한 인력 풀에도 불구하고 PC는 다른 IBM 상품의 시장을 침해할 수 없었다. PC를 32비트인 386으로 전환하려 하였으나 회사의 전략상품인 AS400과 같은 기종에 타격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IBM은 타사의 32비트 PC 개발을 여러 가지 지연전략을 써가면서 저지하였으나 결국 기다리다 지쳐버린 컴팩에서 데스크프로라는 상품으로 먼저 시장에 출하되었다. 거의 동시에 개별 IC들을 수십 개씩 하나의 IC에 패키징하는 칩셋 기술이 고든 캠벨이 만든 칩 앤 테크놀로지(Chip & Technology)에서 개발되어 PC의 제작단가가 크게 인하되었고 호환업체의 가격 경쟁력은 강화되었다. IBM이 독점하던 BIOS 칩을 피닉스나 다른 업체에서 리버스 엔지어링으로 만들어 내면서 IBM의 PC 시장 지배도 서서히 막을 내렸다. 킬러앱스인 로터스 1-2-3의 등장 이후 불과 2∼3년 만에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PC는 한해에도 수백 만대씩 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IBM PC와 그 호환 기종의 득세가 시작되었다. IBM PC가 우점종이 되면서 다른 회사의 개발 수고가 덜어졌다. 호환되지 않는 종들은 거의 사라졌고 회사들은 IBM PC와 호환되는 제품만 개발하면 되었다. 우점종은 시장에서 표준이다. 이른바 ‘de facto standard’ 그러니까 실제적 표준은 표준 규격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사실상의 표준이 된다. 로터스 1-2-3는 하나의 방아쇠였던 셈이다. 전환의 시기 변화에 대한 예를 들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필자는 변화를 믿는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현재 시장의 타성에 젖어버린 것 같고 모든 야성을 잊어버린 것 같은 갑갑한 나날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위계질서의 세계 속에서도 세상은 크게 변했다. 앞서 적어본 역사들은 지금보다는 더 갑갑해 보이던 1970년대와 80년대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것도 실리콘밸리 키드들에 의해 갑자기 일어난 사건들이다. 미니컴퓨터에서는 운영체제로서 유닉스의 지배가 있었지만 유닉스 벤더들의 고가정책, 고압적이고 고객을 무시하던 정책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시장을 노리던 MS를 부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유닉스와 그 호환 기종에 대해 향수와 동정표를 보내지만 유닉스는 고객을 무시하고 회사들끼리 다투기만 했던 역사가 있다. 다시 GNU나 리눅스에 의해 유닉스가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지난 호에 소개한 ‘리눅스와 리누스 토발즈’도 리눅스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운영체제 형태의 킬러앱스가 탄생하는 과정을 적은 것이다. 토발즈는 무료로 쓸 수 있는 미닉스를 만드는 와중에 리눅스라는 주요한 운영체제를 만들게 되었다. 필자는 시장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변화하며 용감한 소수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만든다. 시장의 동적인 변화를 위해서도 킬러앱스는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킬러앱스는 시장이 한계를 보이는 곳에서 홀연히 나타나 미래를 지배한다. 사람들은 킬러앱스가 모습을 들어내기까지는 이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팀 버너스리의 웹은 하이퍼링크와 인터넷의 결합이 갖는 가능성을 기업들이 인정하지 않자 본인이 직접 만든 것에서 출발했으며 스프레드시트의 등장 역시 사람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IBM PC는 심지어 회사 내의 견제를 받으며 개발되었다. 킬러앱스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변화, 바로 사람들의 변하는 요구를 대변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숨어 있던 욕구와 보이지 않게 변화해온 기반의 변화를 갑자기 대변한다. 그 순간 무엇을 필요로 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어느 날 킬러앱스가 폭증하는 것을 본다. 변화의 조짐이 역치를 넘어서면 그때부터 변화는 가시화되고 교조화된다. 그리고 킬러앱스는 소멸할 때까지 시장을 뒤흔든다. 필자는 언제나 새로 나타날 킬러앱스들의 미디어 바이러스에 감염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