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희의 IT 눈대목] 히딩크여, 당신의 공백을 메우고 가라!

전문가 칼럼입력 :2002/06/25 00:00

유춘희 (컬럼니스트)

히딩크 감독은 아주 마음이 편하게 됐다. 대표팀을 맡은지 1년 6개월만에 한국을 축구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고, 계약 기간도 끝났으니 이제 편히 돌아갈 수 있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 대표팀과 명문 구단들이 나섰다고 하니, 몸값이 크게 오를 게 당연하다. 히딩크는 지금 한국을 떠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를 만났다.대부분의 국민은 히딩크가 계속 남아 한국 축구를 정상에서 유지(?)시켜주기를 바란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 그가 떠나면 한국 축구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히딩크와 함께 했던 한국의 코치진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의 전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처럼 팀을 조련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히딩크의 모든 것을 한국이 받아들 때까지 이 땅에 남아주었으면 좋겠다.예상했던 대로, 뉴스에 난 것처럼 그가 완전히 한국을 떠나버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히딩크의 직무 공백이 초래할 한국 축구 단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박항서 코치는 과연 히딩크의 노하우를 그대로 이어 받고 있을까. 아마 얼마간 옆에서 습득한 정도일 것이다. 대표팀이 너무 좋은 성적을 올렸으니 히딩크의 공백이 더 커 보일 게 분명하다.노하우가 빠진 직무 대체는 안 된다한 조직의 리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할 것 없다. 최근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이 간염이 도져 두어 달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기업 주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반영하는 CEO가 회사 일에서 손을 뗐다(사실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지만)고 알려지면서,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가 없는 안철수연구소를 투자자들은 안심하지 않은 것이다. 미래산업의 정문술 회장이 2선으로 퇴진하면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마이크로소프트나 코카콜라 같은 유명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권자들은 절대로 같은 시간 같은 비행기에 타지 않는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회사의 중요 정보를 갖고 있는 인력이 사고로 죽는다거나 하는 상황은 접어두더라도, 갑작스런 이직도 문제다. 닷컴 붐을 타고 중요 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빠져나가는 일을 경영자들은 지켜만 봐야했다. 업무 공백은 하루아침에 회사의 업무를 마비시킬 만큼 위력이 크다.기업의 주요 직무 승계와 핵심 인재 육성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승계 계획'(Succession Planning)이 중요하다. 핵심 인력이 사고를 당하거나 스카우트되는 바람에 생긴 공백을 다른 사람으로 즉시 대체했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그가 남기고 간 문서 몇 개와 이미 정형화한 업무 흐름을 아는 게 전부다. 업무 노하우 같은 무형 자산이나 그 사람이 가진 고객 네트워크는 거기서 끊기고 만다.미국 기업의 종업원들은 일생에 대여섯 번 직장을 옮긴다고 한다. 이처럼 높은 이직률 때문에 미국 기업은 업무 단절을 지속적으로 겪었고,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직무 승계 정책을 시스템화하고 있다. 직무별로 즉시 승계가 가능한지 1년내 또는 2년 안에 승계할 수 있는지 등으로 구분해 서너 명의 후보자를 공개리에 집중 육성한다. 물론 직급이 아니라 직무의 중요도를 기준으로 운영한다.우리의 경우는? 업무 공백이 발생한 후에 적합한 후보자를 찾아 나서고 직무 요건과 이력을 붙여본 다음 적임자를 앉히는 데 급급하다. 그리고 한 시름 논다. 승계 후보자의 육성이 다분히 사후적이다. 직무 배치가 끝난 다음에 인계인수랍시고 현재 상황이나 규정 숙지, 조직원 신상 전달 정도가 승계의 전부다. 갑작스럽게 발령을 받은 사람은 그만 어리둥절할 뿐이다. CEO 리더십으로 지식경영 실천을정보화 정도가 심할수록 기업 가치는 주요 직무에 배치된 소수의 핵심 인재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그것이 바로 '무형자산의 가치'다. 주요 직무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후계자를 육성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거나 아랫사람의 능력을 믿을 수 없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 속에만 저장되어 있던 스킬이나 노하우는 사장되고 만다. 결국 누구도 그의 실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히딩크의 모범답안은 이미 나왔다.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조직을 짜고, 기초 체력을 강화해 중원부터 압박하고, 생각하는 축구, 창조적 플레이를 권하며, 어디 놓아도 써먹을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를 육성하고, 조직원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해야 한다는 것 등. 히딩크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이룬 자신의 비결을 후임자에게 승계하고 떠나야 한다. 축구협회는 히딩크와 계약기간을 두세 달 '강제로' 늘려 후임을 물색한 다음 그의 노하우를 전수케 하라.더 좋은 방법은 대표팀 감독이 아니라 축구 지도자를 기르는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대표팀이 정상의 자리에 계속 남을 것은 거의 무망하니, 그 부담을 덜어주는 게 좋다. 장기간 체류가 불가능하다면 비상근 자문역은 어떨까. 어차피 대표팀은 전국 일주 카퍼레이드를 해야 할 테니 지역별 지도자 특강도 하고 가라. 자신과 같은 지도자를 만드는 일은 히딩크에게도 매력 있는 일일 것이다. CEO로서 최고의 리더십을 펼쳤으니 '지식 경영'을 실천하는 건 당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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