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희의 IT 눈대목] 안동찜닭 식당들 모두 잘 될까?

전문가 칼럼입력 :2002/03/22 00:00

유춘희 (컬럼니스트)

이상구 박사를 기억하시는가? 80년대 말에 불어닥친 '이상구 신드롬'은 채식 위주로 식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건강법으로, 한 방송사가 그의 강연을 중계하면서 급격히 퍼져 나갔다. 결국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육류 소비가 급격히 줄었고, 현미나 각종 채소 같은 자연 건강식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오죽했으면 축산업계와 농림부가 프로그램 방영 중지 요청까지 했을까. 하지만 이상구 신드롬은 오래 가지 않아 풀이 꺾였다. 고기든 나물이든 고루 섞어 먹는 것이 정답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몰랐단 말인가? 새삼스러웠다. 사람들이 받는 밥상에는 육류와 채소가 적절히 배치되기 시작했다. 호들갑의 정도에 비해선 너무 쉽게 수그러들었다. 그러더니 올해 초, 그때와 다름없는 현상이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도 한 방송이 채식 바람을 지폈다. 고기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채식주의자의 체력이 달릴 것도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또 다시 채식으로 습관을 바꾸기 시작했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논쟁을 펼쳤다.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고기와 채소를 적절히 섭취해야 한다'고 결론 냈다. 들쥐처럼 몰려다닐 건가? 달아오르기도 빨리 달아오르고, 식기도 참 빨리 식는다. 이를 일러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했다. 사회가 흥분하면 언론이 흥분하고 언론이 흥분하면 나라 전체가 흥분한다. 한 경제단체 회장이 얼마 전에 한국 기업들이 들쥐 떼 근성을 가졌다며 나무랐다. 기업들은 뭐 하나가 좋다고 하면 충분한 검토도 없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시장을 어지럽힌다는 거였다. 그의 주장에 백 번 공감한다. IT 업계도 이에 자유롭지 않다. 이쪽도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맹목적 유행 따르기'가 번진 지 오래 됐다. 한 정보보호 업체 사장은 전세계 보안 전문업체 총수의 60%를 우리나라 업체가 차지한다고 했다. 무선인터넷 솔루션 업체는 또 얼마나 많은가. 당장 우리 기술을 가져야 할 중요한 분야이고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가만히 보고만 있어선 안 될 일이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코스닥에 등록된 일부 업체는 이제껏 잘 하던 사업을 제쳐두고 보안과 무선사업체임을 내세우기 위해 작은 업체를 인수하거나 알량한 제품 하나를 개발하고 업태를 바꿔버렸다. 보안이든 무선이든 그런 류의 기업 개수가 많음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기업이 다 든든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앞뒤 가리지 않고 몰려든다는 게 문제다. 철저한 시장 분석과 기술 향상을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기업이어야지, 일단 간판만 걸어놓고 보자는 식은 곤란하다. 나는 남과 달라서 내가 된다 어차피 시장 논리에 따라 못되고 헛된 것은 사라질 테니 필자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혼란스런 시장 안에서 선악 구분이 어렵고 양질과 불량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을 때는 어떡하겠는가. 실제로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기존의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뜻이 아리송한 기술용어를 들이대며 투자자를 현혹하는 기업이 있다고 경고했다. 우르르 몰렸다 모두가 망하는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유행과 첨단을 좇는 습관은 어디나 있다. 이익을 좇는 기업의 세계도 유행을 타기는 마찬가지다. 재벌기업들이 중동 진출과 아파트 건축 붐을 타고 너나 없이 건설업체를 만들었고 반도체 사업에 나섰으며, 정보통신(SI) 사업에도 진출했다. 근래에는 인터넷 사업에 진출하거나 벤처기업 투자에 나서지 않은 대기업이 없다. 그랬다가 여럿 망했거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LG반도체와 현대반도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망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맹목성'으로 보안이나 무선 분야에 진출한 회사가 많은 것 같다. 급작스럽게 뜬 분야라 관련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통계가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그 인력은 대체 어떻게 갖췄는지도 궁금하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면 잘된 회사와 못된 회사를 가를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의 과정이 걱정스럽다. 남이 안 하는 것을 찾아서 하는 기업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남과 다름으로써 비로소 내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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