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PC로 변모하는 인터넷 비즈니스

일반입력 :2001/05/09 00:00

이용태 기자

포스트PC는 차세대 정보기기의 총아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아직까지 포스트PC에 대한 뚜렷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PC를 대체하는 정보기기를 아우르는 말이다. 여기에는 PDA, 스마트폰 등 무선 어플라이언스를 비롯해서 침체된 가전업계에 새바람을 몰고 올 디지털TV, 플레이스테이션2와 X-박스로 대표되는 첨단 게임기가 포함된다.

이 제품의 제조사들은 'PC 시대는 갔다'라고 주장하지만, PC시장의 선두주자격인 인텔과 델컴퓨터측은 '포스트PC 시대는 없다'라고 맞서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상반된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의 이야기가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러한 논쟁보다는 포스트PC의 등장이 기업에게 어떠한 비즈니스 기회를 주느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현명할 듯 싶다.

포스트PC 제품군의 등장은 인터넷 비즈니스 업체에게 고객 접점 확대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차세대 이슈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어떻게 비즈니스를 영위할 것인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즉 기존 PC, 무선 어플라이언스, 디지털TV에서 동일한 비즈니스를 가능케 하는 인프라와 솔루션, 그리고 서비스 구축 전략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관건이다.

문제는 멀티플랫폼의 범위가 무척 넓다는 것이다. PC, PDA, 게임기, 스마트폰, 디지털 가전 등이 멀티플랫폼의 하나의 개별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멀티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업체는 제한돼 있다. 따라서 PC와 무선 어플라이언스 같은 유·무선 플랫폼에 집중해 멀티플랫폼 전략의 현황을 알아보려고 한다.

왜 멀티플랫폼 전략인가?

인터넷이 신경제의 패러다임을 선도하게 된 까닭은 결국 이전에 없었던, 그러면서도 매우 막강한 고객 접점 수단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인터넷의 양방향성 특성에 기인한 추적 기능, 맞춤 서비스 등 오프라인 접점 수단과는 다른 마케팅과 영업 활동에 주목하게 됐다. 포스트PC 제품들이 비즈니스 측면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더 이상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PC 앞에 앉지 않아도 된다. 이동하면서(무선 어플라이언스), 혹은 TV를 시청하면서(디지털TV)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멀티플랫폼은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다양한 디바이스와 이를 지원하는 각각의 플랫폼을 지칭하는 용어다. 멀티플랫폼 전략은 이런 각각의 플랫폼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비즈니스 전략을 의미한다. PC가 아닌 다른 단말기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고객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수가 증가한다면 멀티플랫폼 전략은 e비즈니스 업체에게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즉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동일한 서비스 제공이 차세대 e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늠할 잣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멀티플랫폼 전략 수립과 실행이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시장 표준이 없기 때문이다. 무선 프로토콜만 해도 WAP과 i-모드가 있고, 인터랙티브TV도 오픈TV, 웹TV 등 서비스 업체마다 방식이 전혀 틀리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으로 대세가 기울기보다 그만그만한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잘못된 선택은 막대한 추가 비용의 지출을 초래한다.

포켓 PC 관련 경쟁구도

두번째 어려움은 개별 플랫폼의 인프라가 아직 미비하다는 점이다.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단말기도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할 만큼 보급된 상황이 아니고, 서비스 질도 아직 낮은 수준이다. 모바일 비즈니스의 희망인 IMT-2000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소식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세번째 어려움은 지역마다 인프라 구축 진행 상황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유럽은 iTV, 일본은 모바일, 미국과 한국은 PC 기반 인프라가 상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경우도 모바일 인프라쪽으로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어떤 지역에 진출할 것이냐에 따라 멀티플랫폼 구축 전략도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MS vs 소니' 인프라 선점 경쟁 치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멀티플랫폼을 준비해야 하는가. 앞의 3가지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이지만, 만약 비즈니스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현재 MS, 소니, 팜, 에릭슨, 노키아 등 차세대 인터넷 비즈니스 환경을 주도하는 시장의 거물들이 멀티플랫폼 인프라 선점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이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살펴보자.

마이크로소프트, 닷넷 전략으로 시장표준 노린다

MS는 윈도우 시리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PC 환경에서 시장을 완전 장악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포켓PC, 스마트폰, X-박스, 웹TV 등 포스트PC 전 제품군에 걸쳐 또 다시 시장 표준 선점을 노리고 있다. MS의 멀티플랫폼 시장 표준 선점 야심은 헤일스톰 서비스로 구체화된 닷넷 전략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전략의 기본 취지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단말기를 통해서도 인스턴트 메시징, 온라인 쇼핑 등의 서비스 이용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 전략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OS 차원에서 각 플랫폼의 시장 표준을 선점해야 한다. 윈도우 2000과 연계된 윈도우 CE, 스팅거(Stinger)가 그 밑바탕에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핸드헬드기기 OS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팜 OS와의 힘겨운 경쟁이 예상된다. MS 측은 팜을 사용하든, 다른 어떤 기기를 사용하든 헤일스톰을 구현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말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MS는 헤일스톰 서비스와 닷넷 전략을 위해 다양한 제휴를 통해 우군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이미 온라인 경매의 강자 이베이와 제휴했고, NTT도코모와 함께 X-박스를 온라인 게임기화할 계획이다.

문제는 반 MS 진영도 공조체제를 더욱 굳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앙숙이었던 썬과 오라클 외에도 야후나 AOL 같은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가세했다. 또한 게임기와 웹TV 분야에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소니와 PDA 시장의 강자 팜도 이미 그 대열에 합류한 상태다.

아직 인터넷 익스플로러 시장 독점 문제가 완전히 타결되지 않아 헤일스톰 프로젝트도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MS의 멀티플랫폼 전략은 반대 진영의 파상 공격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 설사 성공적인 방어로 시장 선점의 꿈이 이뤄진다해도 반독점 시비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소니, 2001 핵심사업은 무선 어플라이언스

소니는 2001년 핵심 전략 사업으로 무선 어플라이언스 분야를 정했다. 경기 침체와 플레이스테이션2의 생산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다. 이를 위해 기업의 사업 부문 수를 늘리는 한편 '글로벌 허브'를 신설, 본사 경영 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글로벌 허브는 투자 전략을 세우고 의사 결정을 주관하는 부문인데, 일차적으로 디지털 통신 사업부와 반도체 사업부를 만들어 무선 어플라이언스 사업을 확장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디지털 통신 사업부는 무선 어플라이언스 개발을 담당하는데 그 첫 제품이 팜 OS 기반 PDA '클리에'이다. 팜 기반 제품이면서도 멀티미디어 기능을 부각시킨 클리에는 특히 세계 노트북 시장을 석권한 바이오 노트북을 비롯한 소니의 디지털 제품과 연동이 자유로운 장점을 갖고 있다. 팜 시리즈보다는 MS 포켓PC 제품군과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사업부는 IC 설계와 제조를 담당하며, 이 사업부는 도시바, IBM과 향후 5년간 신형 마이크로 칩을 공동 개발하는 제휴를 맺었다. 이로써 소니의 주력 아이템 디지털 가전과 함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 노트북PC 바이오, PDA 클리에를 통해 PC와 포스트PC 제품군을 모두 포괄하게 된다.

한편 디지털 가전 부문의 강점을 살려 iTV 분야의 사업 영역도 확장하고 있다. 마쯔시다, 도시바, 히타치 등과 설립한 인터랙티브TV 합작사 e피에프 네트워크에서 철수하고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하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결국 MS와 마찬가지로 멀티플랫폼 전체 인프라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MS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물론 소니는 하드웨어 차원에서, MS는 OS와 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게임기, PDA, 인터랙티브TV 부문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그 밖의 업체들

MS와 소니처럼 다양한 플랫폼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PC 관련 주요 기업으로는 북유럽의 강자 에릭슨과 노키아가 있다. 이들은 PDA와 휴대폰을 결합시킨 차세대 무선 어플라이언스를 출시할 예정. 이밖에 컴팩과 HP도 기존 PC 제품군과 함께 윈도우 CE 기반 포켓PC도 주력 아이템으로 시장에 출시했다. 또한 AOL이나 NTT도코모 같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도 다양한 형태의 단말기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IBM, 시스코, HP 등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사업의 강자들도 무선 솔루션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개인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이들 대형 벤더들은 기업 대상의 버티컬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이 주로 겨냥하는 분야는 m커머스, 무선 인트라넷, 무선 물류 시스템 등이다.

구축 사례 없지만, 대세는 멀티플랫폼

앞에서 포스트PC의 등장과 이에 따른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주요 플레이어들의 동향을 살펴봤다. 그 다음은 다양한 인터넷 접속 기기를 이용하는 최종 사용자에게 어떻게 서비스를 할 것인지, 이를 통해 어떻게 수익을 올릴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업체 가운데 실제 멀티플랫폼 서비스를 구축한 사례는 별로 없다. 일부 증권사나 게임 업체가 유·무선 통합 웹 서비스를 구축한 사례가 있을 뿐이다. 국내의 경우 PC 기반 유선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상대적으로 미비한 모바일 플랫폼이나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디지털TV 플랫폼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2.5세대 무선 인터넷 서비스나 올 하반기 상용화될 디지털 방송을 감안하면 아직은 미비한 포스트PC 플랫폼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방송의 경우 이미 디지털TV와 셋탑박스 제조업체간의 경쟁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e비즈니스 업체에게 있어서 멀티플랫폼 전략은 필수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모 업체의 관계자는 기업에게 있어 새로운 투자는 비용 대비 수익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멀티플랫폼 전략을 갖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비용에 비해 실제 수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직은 시기 상조라고 말한다.

이 관계자의 의견도 일리가 있다. 시장 표준도 없고, 단말기도 PC만큼 보급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기는 극심한 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하루 연명하기 급급한 상태에서 불확실한 투자를 감행할 기업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는 기업의 경우 '필수'가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유럽 쪽으로 진출하려는 서비스 업체는 반드시 iTV 플랫폼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디지털 방송 시대가 열리고 2.5세대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현실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어느 특정 플랫폼에서만 제공되는 서비스는 사용자의 외면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곧 생존과 바로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멀티플랫폼 전략은 각 업체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핵심 역량, 장기 비전에 따라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수립하고 진행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