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게 붉은 피 흘리는 남극 빙하…왜?

남극 테일러 빙하의 블러드 폭포 재조명

과학입력 :2026/07/03 09:58    수정: 2026/07/03 09:58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남극 빙하가 붉은 피를 흘리는 듯한 경이로운 풍경이 연출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알럿은 남극 테일러 빙하에서 100년 이상 지속된 '블러드 폭포'의 비밀과 그 속에 숨겨진 고대 생태계를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최근 보도했다.

남극의 하얀 설원 위로 짙은 붉은색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이 폭포는 영하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얼지 않고 액체 상태를 유지한다. 

이 현상은 호주의 지질학자 그리피스 테일러가 1911년 처음 발견했다. 당시 그는 붉은색을 띤 조류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 생각하고 '블러드 폭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조사 결과 폭포의 붉은 빛은 피도, 조류 때문도 아니었다.

남극 테일러 빙하에서 붉은 색 액체가 나오고 있는 모습 (사진=미국 국립과학재단/피터 레체크)

과학자들의 오랜 연구에 따르면, 블러드 폭포는 최소 150만 년 전 테일러 빙하 아래에 갇힌 철분이 풍부한 고대 해수가 천천히 스며 나오면서 형성됐다. 빙하가 전진하는 과정에서 바닷물 일부가 그대로 얼음 밑에 고립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물은 증발과 농축을 거쳐 극도로 짠 소금물이 되었고, 이 때문에 영하의 날씨에도 얼지 않는 상태가 됐다. 이렇게 얼음 밑에 숨어있던 철분 가득한 물이 지표면으로 나와 산소와 만나는 순간, 마치 못이 녹스는 것처럼 붉은색으로 산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소금물이 얼음 아래 수백 미터 지점에서 어떻게 표면까지 뚫고 올라오는지는 미스터리였다.

사진=NASA

2017년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대학교 연구진이 풀리지 않고 있던 퍼즐을 맞췄다. 연구진은 전파 탐지 레이더를 통해 빙하 내부에 숨겨진 300m 길이의 가압 수로망을 매핑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액체 상태의 물이 어떻게 이토록 차가운 얼음 장벽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밝혀졌다. 소금물의 염분 덕분에 어는점이 낮아진 데다, 물이 부분적으로 얼 때 방출되는 열이 주변 얼음을 데워 수로가 막히지 않고 계속 열려 있도록 도운 것이다.

당시 연구에 참여한 빙하학자 에린 페티트는 "직관에 어긋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물이 얼면서 열을 방출하고 그 열이 주변의 더 차가운 얼음을 따뜻하게 만든다"며 "테일러 빙하는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물이 흐르는 빙하 중 가장 추운 빙하"라고 설명했다.

블러드 폭포의 타임랩스 카메라 이미지 (사진=피터 도란/앤타틱 사이언스 2026)

이후 2019년에 발표된 후속 관찰에서는 빙하 아래 갇힌 염수에 압력이 축적됨에 따라 붉은 물이 간헐적으로 분출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분출 압력은 심지어 그 위의 얼음 지형을 변형시켜 빙하 표면의 높이를 낮추고 전체적인 이동 속도를 늦출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블러드 폭포에서 과학계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부분은 기이한 화학 작용보다 그 안의 '어둠 속 생명체'다. 폭포의 근원이 되는 얼음 밑 수백 미터 깊이에는 햇빛과 산소,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채 100만 년 넘게 고립되어 생존해 온 고대 박테리아 군집이 살고 있다. 이들은 빛과 유기물이 없는 극한 환경에서 황산염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살아남았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독자적인 생태계를 유지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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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지금도 블러드 폭포가 드러내는 새로운 비밀들을 추적하고 있다. 연구진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이러한 분출 현상의 빈도나 강도가 기후 변화 등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 밝혀낼 예정이다.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의 지구과학자 피터 도란이 주도한 이번 연구 결과는 올해 초 학술지 ‘앤타틱 사이언스(Antarctic Science)’에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