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엔진’은 문화정책과 콘텐츠산업, 도시공간과 예술 현장의 흐름을 깊고 넓게 통찰하기 위해 마련된 시리즈입니다. 이 연재를 통해 우리 문화가 나아가는 방향과 그 속에 담긴 다층적인 의미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술경영학박사 이창근과 현대미술가 최지원, 경관계획가 박상희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필진이 지디넷코리아 문화산업팀과 함께합니다. ‘문화엔진’이 K-컬처를 미래산업의 엔진이자 동시대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높이 76cm, 가로 37cm, 세로 37cm의 나무상자가 있다. 상부는 유리판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구 하나가 놓여있다. 상자 안의 전구는 1년 중 단 한번 무작위한 방식으로, 11초 동안 켜졌다 꺼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알리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의 작품 Lampada annuale(연간램프, 1966)은 관객이 불이 켜지는 순간을 보든, 보지 못하든 그 ‘사건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만으로 관객을 작품과 만나게 한다. 이론적이면서 어쩌면 추상적인 이 시도는 우리 손안에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독립시킨다. 오브제 내부에 숨겨진 타이머 장치는 ‘자율성’이라는 개념으로 기능하며, 예측불가능성에 기인한 능동적 시간에 대한 인식을 증폭시킨다.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의 작품 Paradox of Praxis 1. Sometimes Making Something Leads to Nothing(실천의 역설 1 - 때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1997)에서는 멕시코시티의 한 거리에서 작가가 9시간가량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밀고 다닌다. 퍼포먼스의 끝에 얼음덩어리는 녹아 없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여기에서 시간은 커다란 크기의 얼음덩어리도, 거리에 남았다 사라진 물자국도 아닌, 땡볕에 아스팔트 위에서 얼음을 밀었던 퍼포머의 자발적 행위으로부터 강하게 감각된다.
두 작품의 미디엄-눈앞에서 쉬이 켜지지 않는 전구와 다 녹아 실체를 볼 수 없는 거대한 얼음은 관객 앞에 그 어떤 가시적인 무엇을 가져다 놓지 않는다. 이 실감 나는 부재(不在)는 강박적으로 작동하고자 하는 우리의 존재의식을 조용히 덮어내기도 한다.
관객은 작품의 작동 과정안에 스스로 위치하거나, 실천적 행동에 대한 간접적 체험만으로 시간을 감각한다. 시간에 대한 인식을 타고 우리는 존재의 기준에 대해 질문해 볼 수 있다. 잠재성에 비롯한 기대감으로 존재하는 방식과 온 힘을 다해 애쓰며 소멸을 감각함으로 존재하는 방식에서 무엇이 부재(不在)하고, 무엇이 현존(現存)하고 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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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지원
최지원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가로지르며 작업하는 현대미술가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학석사를 받았다. 회화와 드로잉을 비롯해 융합형 미디어콘텐츠 제작을 병행하고 있으며, 현재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25년 11월부터 지디넷코리아 [문화엔진] 시리즈 필진으로 참여해 현대미술·AI·예술철학 비평을 연재하고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