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수소발전 입찰시장 개설 물량을 대폭 줄이면서 연료전지 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며 연료전지가 온사이트 전원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정책 물량이 오히려 줄어들면서 제조 생태계와 수출 경쟁력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수소발전 입찰시장 연도별 구매량 산정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올해 수소발전 입찰시장 개설 물량을 청정수소발전 500GWh, 일반수소발전 930GWh로 정했다.
지난해 입찰 물량이 청정수소발전 3000GWh, 일반수소발전 1300GWh였던 점을 감안하면 청정수소 물량은 6분의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일반수소 물량도 전년보다 줄었다.
수소발전 입찰시장은 수소 또는 수소화합물을 연료로 생산한 전기를 구매·공급하기 위한 제도다. 사용 연료에 따라 청정수소발전과 일반수소발전으로 나뉜다. 청정수소발전은 정부의 청정수소 인증 기준을 충족한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설비가 참여 대상이다.
이번 물량 축소에는 기존 수소발전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와 비용 효율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발전용 연료전지는 상당 부분 액화천연가스(LNG) 도시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얻는 방식이다. 발전 과정 자체에서는 배출이 적지만, 수소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탄소저감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 왔다.
일반수소는 대부분 LNG 개질 등에서 나오는 그레이수소 성격이 강하다. 다만 올해 일반수소 물량이 지난해 입찰시장 개설 물량 대비 7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유지된 것은 시장 충격을 한꺼번에 키우지 않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청정수소 물량이 크게 줄어든 배경에는 국내 청정수소 조달과 단가 측면의 어려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청정수소 기준과 조달 구조가 아직 명확하게 자리 잡지 못한 데다 실제 입찰 참여 기업도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물량을 보수적으로 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2040년 석탄발전 폐지 정책에 맞춰 올해부터 석탄·암모니아 혼소발전이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점도 물량 축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제조사와 발전사업자 간 입찰 가격 경쟁은 한층 심화될 전망이다.
업계 "기존 물량도 부족했는데 더 줄어"…투자계획 재검토 불가피
업계에서는 이번 물량 축소가 단순한 입찰 규모 조정에 그치지 않고 국내 연료전지 제조 생태계 전반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소발전 입찰시장(HPS)과 LNG 용량시장을 전제로 신규 발전소 건설이나 노후 발전소 개체 등 사업계획을 수립해온 공공·민간 발전사와 기자재 업체들은 투자 판단을 미루거나 사업 구조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연료전지 업계는 기존 일반수소 물량 1300GWh도 충분한 규모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국내 제조시설을 갖춘 일부 업체는 기존 물량에서도 공장 가동률이 30% 안팎에 그쳤고,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안정적인 생산 생태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요구한 것은 당장 물량을 대폭 늘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기존 1300GWh 수준이라도 5년 정도 유지해 달라는 것"이라며 "그 기간 동안 데이터센터, 선박, 해외 수출 등 민간 시장으로 나갈 트랙레코드를 쌓겠다는 취지였는데 올해 물량이 더 줄어들면 생태계 유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기업은 그룹 차원 지원으로 일정 기간 버틸 수 있겠지만 중소 협력업체는 공장 가동이 유지되지 않으면 인건비와 시설투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국산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산업이 시장 축소로 중단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가 특히 우려하는 대목은 글로벌 시장 흐름과의 엇박자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가스터빈 등 기존 발전설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데이터센터 부지 안팎에서 전기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연료전지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블룸에너지 등 연료전지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확대에 힘입어 성장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들도 미국 데이터센터 시장 진출을 준비해온 만큼, 내수 기반 축소가 수출 전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고객사인 빅테크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 유지보수와 안정적인 공급 능력이 중요하다. 국내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고 협력업체 기반이 흔들릴 경우 장기 공급처로서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고객이 보기에 국내 시장이 매년 줄어드는 기업보다 생산라인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기업에 더 높은 신뢰를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폐지 아니라지만 불확실성 커져"…청정수소 공급망 병행 필요
정부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수소발전 입찰시장 폐지설을 공식 부인했다. 2027년 이후 개설 물량은 현재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을 고려해 내년 추가 고시 개정을 통해 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반수소 물량 축소와 청정수소 물량 급감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연료전지 제조사뿐 아니라 부품 협력사, 발전사업자, 기자재 업체까지 사업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청정수소 정책 방향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청정수소 생산에만 무게를 두기보다 해외 저가 청정수소 수입과 인프라 구축을 병행해야 연료전지도 실질적인 탄소저감 발전원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수소발전 연료를 국내 조달 그린수소로만 한정하면 초기 시장을 키우기 어렵다"며 "청정수소 공급망을 어떻게 경제적으로 확보할 것인지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태양광·풍력 중심으로 추진되는 가운데 수소와 연료전지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신재생에너지 체계에서 분리된 이후 수소에너지가 별도 법체계로 이동하면서 탄소중립 전원으로서의 역할이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청정수소 인프라가 완전히 갖춰질 때까지 국내 제조 생태계가 버틸 최소한의 물량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데이터센터와 선박, 해외 수출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전환기를 버틸 수 있도록 기존 물량 수준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고시 개정안에 대해 행정예고 기간 동안 업계와 관계기관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올해 입찰시장은 하반기 개설될 예정이다. 업계가 행정예고 과정에서 물량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최종 확정 과정에서 조정 여부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