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오래된 장소를 과거의 흔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의 도시가 다시 읽어야 할 자산으로 바라보는 연재입니다. 어떤 도시는 유산을 설명하는 데 머물고 어떤 도시는 그 유산을 통해 사람을 다시 걷게 하고 머물게 합니다. 이 연재는 바로 그 차이를 읽어보려는 시도입니다. 시즌1은 도시와 유산을 전략과 경험, 콘텐츠의 관점에서 읽는 시즌입니다. 문화유산을 보존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도시 경쟁력과 체류 경험, 야간경제, 콘텐츠산업, 국가브랜드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합니다. 유산에서 경험으로, 경험에서 산업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 문화가 왜 이제 도시의 전략이 되어야 하는지를 풀어갑니다. 시즌1은 2026년 4월 24일부터 5월 20일까지 총 9편을 주 1~2회씩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시즌1
1회. 왜 지금 도시는 유산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2회. 보존에서 활용으로, 도시 서사는 어떻게 바뀌는가
3회. 기억되는 도시는 무엇이 다른가
4회. 밤의 도시, 야간경제는 왜 문화에서 시작되는가
5회. 미디어아트는 왜 도시의 킬러콘텐츠가 되었나
6회. 문화기술은 장비가 아니라 경험의 설계다
7회. K-헤리티지는 어떻게 K-컬처의 뿌리가 되는가
8회. 세계유산은 어떻게 도시 브랜드가 되는가
9회. 문화는 왜 이제 도시의 전략이 되어야 하는가
도시는 오랫동안 미래를 개발의 언어로 말해왔다.
더 높은 건물과 더 넓은 도로, 더 많은 시설과 더 큰 예산이 도시의 성장처럼 여겨지던 시간이 길었다. 물론 그런 것들도 필요하다. 도시를 떠받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다시 오게 하고, 머물게 하고,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힘은 늘 다른 데서 갈린다. 그 도시만의 분위기, 걸었던 길의 리듬, 밤이 되면 비로소 살아나는 장소의 표정, 오래된 시간과 오늘의 감각이 맞닿는 순간이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이제 문화는 도시를 꾸미는 부속물이 아니라 도시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다시 읽혀야 한다.
이번 시즌 내내 붙들고 있었던 물음도 결국 하나로 모인다. 유산을 왜 다시 읽어야 하는가에서 출발해, 보존이 왜 활용으로 건너가야 하는지, 기억되는 도시가 왜 설명보다 경험을 남기는지, 밤의 도시가 왜 문화에서 살아나는지, 미디어아트와 문화기술이 왜 사람의 걸음과 머무름을 바꾸는지, K-헤리티지가 왜 K-컬처의 뿌리가 되는지, 세계유산이 어떻게 도시의 얼굴이 되는지까지 따라오다 보면 끝내 한 생각에 닿게 된다. 문화는 이제 도시의 전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화가 전략이라는 말은 행사 횟수를 늘리자는 뜻이 아니다. 도시가 자기 시간을 사람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내놓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에 가깝다. 어떤 장소를 어떻게 걷게 할 것인지, 어디에서 머무르게 할 것인지, 해가 진 뒤 그 도시의 밤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유산을 설명문 속 정보로 둘 것인지 아니면 몸으로 만나는 장면으로 바꿀 것인지를 가르는 일이다. 결국 문화 전략은 몇 개를 하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오래 남게 하느냐에서 갈린다.
도시의 이름값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갈린다. 사람은 정보를 오래 붙들지 않는다. 그러나 한 장면은 오래 남긴다. 성곽의 능선을 따라 흐르던 빛, 궁궐의 적막 속에서 문득 깊어지던 공기, 전망대에서 도시를 새로 보게 하던 한순간, 고분군의 밤을 걷다가 설명보다 먼저 마음에 남는 인상 같은 것들은 오래 남는다. 바로 그 오래 남는 힘이 도시의 이름값을 만든다. 이제 도시는 무엇을 더 세웠는가보다 무엇을 어떻게 만나게 했는가에서 갈린다.
문화는 알리는 일보다 먼저 남기는 일을 맡는다. 도시가 어떤 표정으로 기억될지, 무엇이 그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첫 장면이 될지, 시민과 방문객이 왜 다시 그 길을 걷고 싶어질지를 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도시의 외곽에 놓이는 장식에 머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히려 도시를 움직이는 자리로 들어와야 한다. 도시의 길과 동선, 사람의 걸음과 머무름, 밤의 인상과 리듬 속으로 함께 들어와야 한다.
특히 오래된 도시일수록 이 질문은 더 중요하다. 유산이 많다고 해서 곧바로 강한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유산을 가졌다고 해서 저절로 도시의 이름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오래된 시간을 오늘의 사람들 앞에 어떻게 다시 열어 보이느냐다. 설명으로만 두면 유산은 점점 멀어진다. 반대로 걸음과 머무름, 밤의 분위기와 콘텐츠, 해설과 체험 안으로 들어오면 유산은 다시 살아난다. 그 순간 유산은 지켜야 할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인상과 기억을 붙드는 힘이 된다.
도시는 이미 시설만으로 경쟁하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은 인상과 머무름, 다시 찾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도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돌아오는 얼굴이다. 이 힘은 당장 수치로 잡히지 않아도 도시의 흐름을 오래 바꾼다. 한 도시의 상권을 바꾸고, 밤의 동선을 바꾸고, 사람의 말과 사진을 바꾸고,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을 만든다. 문화가 전략이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문화는 가장 더디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끝내 도시의 미래를 오래 끌고 가는 힘이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있다. 문화가 곧 화려한 행사 경쟁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겉모양만 앞세우고 속의 시간을 놓치면 남는 것은 얕은 인상뿐이다. 오래된 장소를 억지로 덮어버리는 연출도 오래가지 못한다. 깊이가 남으려면 그 장소가 품은 시간과 분위기, 사람의 기억과 지역의 결을 충분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의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만날 수 있도록 건네야 한다. 문화는 덧붙이는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아는 감각이어야 한다.
문화가 이제 도시의 전략이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도시를 다시 걷게 하고, 다시 머물게 하고, 오래 마음에 남게 만들기 위해서다. 오래된 시간을 오늘의 사람들 앞에 다시 열어 보일 수 있을 때 유산은 살아나고, 도시는 자기 얼굴을 갖는다. 그리고 그 얼굴이 오래 남을 때 도시는 다음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갈 힘을 얻는다.
이 글로 [도시와 유산을 읽는 법] 시즌1 연재를 마무리한다. 시즌1 내내 붙들고 온 것도 결국 하나였다. 유산은 과거의 잔존물이 아니라 오늘의 도시가 다시 읽어야 할 가장 오래된 자산이라는 점, 그리고 그 자산은 사람 앞에 살아 있는 장면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는 점이다. 오래된 장소가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한 도시의 얼굴과 이름값으로 남을 때 문화는 장식이 아니라 전략이 된다. 시즌1이 끝내 닿고 싶었던 자리도 바로 여기다.
이제 이 연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시즌2로 넘어간다. 사람은 유산의 이름보다 그 도시를 걸었던 감각을 더 오래 기억한다. 다음 시즌에서는 그 믿음을 따라, 오래된 장소가 오늘의 도시에서 어떤 표정으로 다시 살아나는지를 조금 더 천천히 읽어가려 한다. 시즌2는 2026년 6월 중순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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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in Arts Management).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미디어아트 디렉터로 헤리티지랩(Heritage LAB) 소장이다.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과 스토리를 첨단기술과 예술창작으로 결합해 장소를 경험 콘텐츠와 산업 가치로 확장하는 일을 해왔다. 수원화성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총감독(2021~2022)을 비롯해 제1회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 페어(코엑스, 2024), 구 송도역사 복원 디지털실감영상관 및 3D 미디어타워(2024~2025) 등 디지털콘텐츠 개발과 문화공간 구축을 이끌었다. 현재 K헤리티지산업포럼 운영위원장,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미다스북스, 2026)을 펴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