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양대 핵심 부품, 메모리와 SSD 가격이 9월 중순 이후 오름세로 돌아서며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PC용 DDR5 메모리 가격은 불과 3개월 만에 3배 가까이 올랐다. 이달 초 일부 SSD 제조사는 공급가를 25% 이상 올렸다.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올 초부터 지속된 글로벌 빅테크의 경쟁적인 AI 투자가 있다. 주요 메모리 제조사가 부가가치가 큰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스토리지에 생산 능력을 집중하면서, 기존 제품은 증산 대상에서 밀려났다.
이런 우선순위 변화는 국내 포함 전세계 시장의 메모리와 SSD 가격까지 올리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그러나 완제품 PC 제조사와 달리 조립PC 업체는 가격 협상력이 거의 없다.
공급가 인상분을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구조에서 일부 업체는 이미 메모리를 제외한 ‘반쪽짜리 조립PC’ 판매에 나섰다. 가격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조립 PC'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메모리 모듈 가격 급등... "두 개만 사도 CPU 한개 값"
커넥트웨이브 가격비교서비스 다나와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서 PC용 메모리 모듈과 SSD 가격은 9월 중순을 기점으로 오름세로 돌아섰다.
인텔·AMD 프로세서 기반 데스크톱 PC 구성에 가장 흔히 쓰이는 DDR5-5600MHz 16GB 메모리 모듈 가격은 불과 세 달 만에 3배 가까이 올랐다.
삼성전자 제품은 9월 중순 7만원대 초반에서 현재는 19만원을 넘어섰다. SK하이닉스 제품도 9월 중순 8만원대 중반에서 현재는 22만원까지 상승했다.
프로세서 성능을 최대화하려면 같은 제조사, 같은 용량으로 구성된 메모리 모듈 두 개를 꽂는 '듀얼 채널' 구성이 일반화돼 있다.
32GB(16GB×2) 구성 시 40만원이 필요하며 이는 데스크톱 PC용 중간급 프로세서, 혹은 보급형 그래픽카드 한 개 값이다.
주요 SSD 제조사도 공급가 최대 20% 이상 올려
M.2 NVMe SSD 가격도 9월 말을 기점으로 20% 이상 올랐다. 3일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PCI 익스프레스 4.0, TLC(3비트) 낸드 플래시메모리 기반 500GB 제품 평균가는 10만원을 넘어섰다.
3일 익명을 요구한 SSD 유통업체 핵심 관계자는 "SSD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신호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있었다. 한 글로벌 제조사가 '낸드 플래시메모리 감산 등으로 SSD 공급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고 예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외 제조사들이 가격 인상 관련해 눈치작전을 펼치다 한 외국계 제조사가 가장 먼저 가격 인상에 나섰다. 끝까지 가격 인상을 미루던 한 회사도 이달 초 품목별로 최저 25%, 크게는 40%까지 공급가를 올렸다"고 말했다.
빅테크·AI가 바꾼 생산 우선순위…PC는 밀려나
국내 시장에 데스크톱 PC용 고성능 메모리 모듈을 공급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 6월 말부터 이런 조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매 분기 말 다음 분기 주문량과 가격 등을 논의한다. 6월 말 당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까지 올 줄은 몰랐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빅3 업체가 부가가치가 큰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SSD 수요를 우선하면서 일반 소비자용 제품의 우선순위는 자연히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빅3 중 한 곳은 내부적으로 공급처와 공급가를 모두 제출받은 다음 단가를 가장 높게 부른 고객사나 거래선부터 SSD를 공급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조립PC 직격탄... "직접 조립 사라질 위기"
국내외 PC 제조사는 메모리·SSD 공급사와 공급 단가를 협상할 때 주문 수량을 지렛대 삼아 공급가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또 한 번 결정된 가격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소규모 조립PC 업체는 수시로 바뀌는 공급가를 선택지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만큼 가격 변동에도 취약하다.
국내 조립PC 시장에서 수량 면에서 우위를 내세울 수 있는 업체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미 일부 업체는 PC 주요 부품 중 메모리만 뺀 반조립 상태 제품을 공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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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상승이 지속되면 PC 교체 주기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내년 인텔과 AMD 등이 출시할 데스크톱 PC용 프로세서 신제품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이 조립PC 대신 완제품 데스크톱 PC나 노트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크다.
한 관계자는 "수급 불균형으로 가격 상승이 지속되면 직접 PC를 조립해 쓴다는 개념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