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는 왜 '물류'에서 시작되는가

24일 국회 세미나 "물류비 상승·인력난…피지컬 AI 아니면 답 없다"

디지털경제입력 :2025/11/25 09:08

"피지컬 인공지능(AI)의 이상적 형태는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입니다. 응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물류는 이를 첫 번째로 도입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이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피지컬AI 시작은 물류AI부터' 세미나에서 피지컬AI의 첫 무대로 '물류' 영역에 주목했다.

장 원장은 "물류 현장은 피킹·분류·이동 같은 단순 반복과 적절히 구조화된 공간을 갖췄고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다"며 "특히 물류 현장에서 상당히 유용한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AI가 언어와 사고를 넘어 행동을 수행하는 단계에 진입하면서, 물류는 기술적·산업적·경제적 지점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시작될 곳으로 꼽혔다.

24일 국회 세미나 '피지컬 AI 시작은 물류AI부터'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이날 세미나는 장영재 KAIST 제조 피지컬AI 연구소장, 장병탁 원장, 손동신 LG CNS 전문위원, 구성용 CJ대한통운 리더, 그리고 국토부·산업부·과기정통부 관계자들이 참여해 '왜 물류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논의했다.

장영재 소장은 피지컬 AI를 "시간·공간·물리적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인공지능"으로 정의했다. 기존 AI가 언어와 사고를 모사했다면, 피지컬 AI는 사람이 실제 공간에서 판단하고 움직이는 방식을 학습하고 재현하는 단계다.

문제는 현실 세계의 데이터가 계속 변한다는 점이다. 장 소장은 "제조는 제품도 설비도 계속 바뀐다.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학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며 "공장은 계속 바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가 지난 8년간 집중해온 것은 가상공간에서 학습한 결과를 실물로 전이하는 일이었다. 이 전이학습 기반 기술은 이미 산업에 깊숙이 들어왔다.

장 소장의 설명은 구체적이다. SK온·삼성·LG 공장에서 100~2천대의 로봇이 혼잡 없이 움직이고 전문가 3명이 3주 걸리던 디지털 트윈을 AI가 3시간 만에 자동 생성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년 넘게 안정 운용된 사례까지 축적됐다. 장영재 소장은 "이제는 AI가 실제 로봇을 ‘통제’하는 단계로 들어섰다”고 단언했다.

장영재 KAIST 제조 피지컬AI 연구소장이 24일 국회 세미나 '피지컬 AI 시작은 물류AI부터'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피지컬 AI의 학습 재료인 비전·동작·상황 데이터가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이날 큰 주제였다. 손동신 LG CNS 전문위원은 "피지컬 AI는 인터넷에 없고 현장에 있다"고 단언했다.

손 위원 제조 대기업은 데이터를 거의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대규모 실제 데이터가 확보 가능한 곳은 물류 현장뿐"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파운데이션 모델이나 월드 모델을 만들려면 결국 현장 데이터와 연결돼야 하고, 물류는 대규모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곳"이라고 조명했다. 즉 물류는 피지컬 AI 데이터 광산이라는 얘기다.

구성용 CJ대한통운 리더도 같은 맥락에서 "들어오는 화물을 카메라로 찍어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얼마든지 공유 가능한 데이터"라고 제언했다.

물류가 첫 실증 산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술 때문만이 아니다. 물류는 경제적·구조적 필연성 때문에 피지컬 AI가 가장 절실한 산업이다.

구 리더는 "물류 산업은 굉장히 저마진 산업"이라며 "삼성·LG·현대차처럼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전국 물류센터 구조에 대해서는 "대부분 소규모이고 수작업이 많아 데이터 취득이 어렵고 표준화도 어렵다"고 짚었다.

도입은 가장 필요하지만 스스로 도입하기 어려운 산업이라는 구조적 역설이 존재한다.

구성용 CJ대한통운 자동화개발담당 리더가 24일 국회 세미나 '피지컬 AI 시작은 물류AI부터'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휴머노이드 M.AX 얼라이언스를 총괄하는 박일우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PD는 물류·제조 현장에서 피지컬 AI가 빠르게 확산되기 위해서는 "기업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휴머노이드 생태계는 하드웨어 제조기업, AI 모델을 만드는 기업, 이를 실제 적용할 수요기업, 시스템 통합(SI) 기업까지 모두 협업해야만 완성된다"며 이러한 이유로 얼라이언스가 260개 기업 규모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 심지영 첨단물류과 과장도 현장 체감을 더했다. "물류 로봇이 정말 필요하지만, 투자할 여력이 없는 기업이 너무 많다"며 "90% 이상이 영세하고, 여전히 엑셀·수기로 운영되는 곳도 많다"고 분석했다.

권순목 산업부 제조AI확산TF 과장은 M.AX 얼라이언스를 소개하며 "기업들도 기초 데이터는 서로 공유할 자세가 되어 있고, 다른 분야 데이터가 교차 활용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박민영 인하대 교수는 "물류는 모든 산업의 인프라이지만, 예산·법·제도 지원이 산업부·과기부 속도를 못 따라간다"며 "이제 부처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교수는 물류가 제조·유통·무역 등 모든 산업의 기반이면서도, 정책적으로는 늘 '을(乙)'의 위치였음을 지적했다. "전 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만 예산 논의에서는 늘 후순위였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피지컬 AI 도입이 단순히 물류센터 내 로봇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물류는 제조-유통-무역-이커머스 공급망을 연결하는 기반 산업이므로 국가 공급망 운영 전반에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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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류 현장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현장 데이터는 피지컬 AI가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학습 자원이기 때문에, 해당 데이터가 축적될 경우 국내 AI 모델의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피지컬 AI의 물류 적용은 자동화를 넘어 산업 구조 고도화와 직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