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을 팔아서 버텼더라구요. 그나마 부동산이나 돈이 있으니까 버틴거지 웬만한 회사였으면 진작에 문 닫았죠."
지난달 말 KCC정보통신이 국방부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2심에서 승소한 직후 한 SW기업 대표가 꺼낸 말이다. 공공 소프트웨어(SW) 업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입가에 쓴웃음이 절로 번졌다.
세금을 활용하는 공공SW 사업은 애초에 낮은 수익률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지금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런 수준을 훌쩍 넘는다. 투자 대비 과도한 업무량, 잦은 과업 변경, 명확하지 않은 책임구조. 손해만 남는 사업 구조는 결국 소송이라는 마지막 수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KCC정보통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LG CNS와 보건복지부, 메타넷디지털과 한국지역정보개발원 등 굵직한 공공SW 사업마다 소송이 줄을 잇는다. 시스템을 납품하고도 돈을 받지 못해 소송을 벌이고 구조적 관행으로 발생한 장애로 국정감사에 불려가는 구조가 현재 공공SW 현장의 모습이다.
그나마 KCC정보통신은 버텨냈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이 있었고 안정적인 현금 흐름도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중소 SW기업은 다르다. 수년간 이어지는 소송 비용을 감당할 체력이 없다. 많은 기업들이 소송은 고사하고 조용히 사업을 접거나 사람들을 내보내며 사라지는 사례가 상당수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피해자조차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이다. 기자는 수년 전부터 이런 사례들을 추적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기사화를 거절했다. 이유는 이 내용이 기사로 나가면 다음 사업을 수주할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런 내용이 기사로 나가면 다음 공공SW 사업 기회는 저희에게 없을 겁니다."
한 SW기업 대표가 했던 이 말은 업계를 관통하는 무언의 룰이었다. 컨소시엄 구조에서는 더 심하다. 한 업체가 불이익을 받으면 다른 협력사까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공SW 사업으로 빚을 지고 있던 다른 한 SW기업 대표는 "지금 운영 중인 회사를 접고 다른 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 겪고 있는 내용이 기사화된다면 이직하는 기업까지 피해가 전가될 것이 두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AI 강국'을 외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구축을 위한 5개 정예팀을 선정했다. 글로벌 수준의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하기 위한 정부의 장기 전략이다.
과기정통부는 올해에만 1천936억원을 투입하고 오는 2027년까지 경쟁력 있는 국산 초거대 AI 모델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AI 주권 확보', 'AI 강국'이라는 구호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국내 SW 소프트웨어 산업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 누가 어떻게 AI를 개발할 것인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흔히들 AI 스타트업 성공 사례로 팔란티어를 언급한다. 팔란티어는 최근 미국 육군과 13조원 규모의 소프트웨어 단일 계약을 체결했다. 반면 KCC정보통신은 국방부와의 사업으로 수백억원 규모의 소송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양측의 대비가 뚜렷한 것은 개인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두 사례의 차이는 단순한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SW산업과 기업을 어떻게 대하느냐는지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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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없이는 AI도 없다. 이를 외면한 'AI 강국' 전략은 허상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