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보일러에 새 숨결 담으니...의자·조명·테이블로 재탄생

[지구를 구하는 기술] ② 경동나비엔-국민대 아트웍

홈&모바일입력 :2025/01/21 10:14

“보일러실 구석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던 보일러는 이제 우리 곁에서 다시 타오를 것입니다.” - 인더스플레임 팀

지난 16일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 버려진 보일러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연소 과정에서 버려지는 열을 회수해 한 번 더 활용하는 콘덴싱 보일러처럼, 새 숨결을 얻은 작품들은 저마다의 온기를 내고 있었다.

경동나비엔 폐보일러 해체식 현장 (사진=경동나비엔)

보일러 전문업체 경동나비엔은 최근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와 함께 ‘한번 더 콘덴싱 : 가치의 재발견’ 아트웍 공모전과 전시를 진행했다. 수명이 다한 콘덴싱 보일러를 활용해 예술 작품을 만들고, 기술적 가치를 알리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공모전에 참여한 학생들은 약 60대의 폐보일러를 받았다. 각자 필요한 부품을 선택해 지난해 11월 약 한 달간 작품을 만들었다. 공모전은 폐보일러를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을 주제로 진행됐다. 총 20개 팀이 41개의 작품을 출품해 11개 팀이 입상했다.

경동나비엔 폐보일러 해체식 현장 (사진=경동나비엔)

보일러 온기로 가득 찬 사무공간

전시관에 들어서자 보일러 부품으로 만든 각종 조명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자연의 순환 ▲도우미 로봇 ▲아포칼립스 ▲옛 것의 재조명 등 다채로운 주제의 작품이 빛을 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탁상 조명 ‘스크램프’가 호평이 많았다. 보일러 부품만으로 기능적 완성도 높은 조명을 만들었다. 작품을 만든 이여름 작가는 “전기가 지나가며 빛을 만드는 조명의 모습은 온수가 지나가며 따뜻함을 만드는 보일러와 닮았다”며 “모든 부품이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며 부품 간 호환이 자유롭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이여름 작가가 만든 탁상 조명 '스크램프'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로봇을 형상화한 귀여운 로봇도 전시됐다. 주진우 작가는 폐보일러 부품이 쌓인 쓰레기장에서 탄생한 도우미 로봇 ‘콘덴싱 키퍼’를 표현했다. 폐보일러의 가스 공급관을 로봇의 몸통으로 활용하고 재치 있는 세계관을 더해 호평을 받았다. 주 작가는 “보일러의 열기를 조명의 빛으로 재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데스크 용품도 탄생했다. ‘데스크업’ 팀은 북홀더와 테이프 디스펜서, 만년 달력을 만들었다. 버려지는 종이 달력 대신 날짜를 돌려가며 쓸 수 있는 형태로 친환경 전시에 의미를 더했다. 강세은·김민정 작가는 “보일러에서 나오지 않은 듯한 발랄하고 귀여운 형태로 디자인해, 보일러 부품의 쓰임새뿐만 아니라 감성까지 재발견했다”고 말했다.

턴앤뉴 팀이 만든 '다시, 소리'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턴앤뉴’ 팀은 보일러 부품을 디자인 요소로 꾸미고 그 위에 턴테이블을 얹었다. 유원상·이수연 작가는 “뜨겁게 타올랐던 보일러가 우리에게 소리를 들려주며 휴식을 취한다”며 “숨겨진 부품들에게 밖으로 나와 소리를 내는 새 역할을 부여했다”고 묘사했다.

폐보일러의 파이프는 꽃병이 됐다. 김승종 작가는 “보일러 파이프라 따듯한 물을 순환시키며 방 안을 데웠듯, 폐기된 이후에도 꽃에 물과 생명력을 전달한다”고 전했다.

김승종 작가가 만든 꽃병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보일러의 순환 구조를 ‘테라리움’으로 형상화한 작품도 소개됐다. 보일러 케이스 내부에 식물과 흙을 넣고, 펌프를 통해 물이 순환하도록 하는 작은 생태계를 조성했다.

그리너 팀의 이채린 작가는 “콘덴싱 보일러의 순환이 자연의 순환 시스템과 닮아 있다”며 “부품들이 다시 한번 친환경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리너 팀이 만든 테라리움 '푸르리움'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친환경·디자인 넘어 실용성까지 섭렵

공모전 최고상인 대상은 보일러 외장커버로 만든 의자 ‘나비 리-본’이 받았다. 콘덴싱 보일러가 선사하는 따뜻함을 일상에서 휴식을 제공하는 의자로 재창조했다. 출품작 중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나비 리-본을 만든 정일찬·이한휘 작가는 “철제 보일러 케이스의 독특한 곡선과 견고함을 살려 의자 구조를 완성했다”며 “미니멀한 디자인 속에 실용적 가치를 담아냈다”고 강조했다.

대상 수상작인 의자 '나비 리-본'과 최우수상 수상작 '스토브'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최우수상은 보일러 부품인 ‘버너’와 ‘전선’으로 가스스토브를 제작한 ‘인더스플레임’ 팀이 수상했다. 수명을 다한 보일러 버너에 다시 불꽃이 타오르게 한다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콘덴싱과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전달했다. 실제 가스스토브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용성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인더스플레임 팀의 천수민·허예원 작가는 “보일러의 의미를 담고자 다시 타오르는 불꽃을 컨셉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며 “디자인을 정하는 데만 약 1개월, 실제 제작 기간은 2~3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우수상은 테라리움을 만든 ‘그리너’ 팀과 카세트테이프 디스펜서를 만든 ‘보일러업고튀어’ 팀이 수상했다. 이 밖에도 조명 ‘콘덴싱 키퍼’와 인센스 홀더, 열교환기와 모터 펜 날개로 제작한 전통 디자인의 조명 등 7개 팀이 입상했다.

보일러업고튀어 팀이 만든 '나비 N 테이프'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콘덴신 기술 친환경성 알린다

전시는 경동나비엔 ‘한번 더 콘덴싱’ 캠페인의 연장선에서 진행됐다. 버려지는 열을 재활용해 대기질 개선과 에너지 저감에 기여하는 콘덴싱 보일러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이다.

콘덴싱 보일러는 경동나비엔이 1988년 아시아 최초로 개발하고 보급화에 앞장선 기술이다. 일반 보일러는 하나의 열 교환기만 탑재해 물을 데우고 난 뒤 발생하는 배기가스를 그대로 실외로 배출하는데, 이때 가스의 온도가 180도에 달한다.

콘덴싱 보일러는 배기가스가 가진 열을 흡수하는 잠열 교환기를 하나 더 장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98%까지 높일 수 있고, 일반 노후 보일러 대비 가스 사용량은 최대 19% 절감 가능하다.

경동나비엔 폐보일러 해체식 현장 (사진=경동나비엔)

유해가스 배출도 저감한다. 미세먼지의 주원인인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87% 저감하고, 일산화탄소와 온실가스의 주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각각 79%, 19%나 줄인다. 이는 20년생 소나무를 연간 137그루 심는 효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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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기획한 이진아 경동나비엔 매니저는 “학생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담긴 완성도 높은 출품작이 많이 접수됐다”며 “브랜드와 콘덴싱 기술의 가치를 오랜 시간 공부하고 고민한 흔적이 느껴져서 더욱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테이프 디스펜서나 의자를 제작한 팀은 추가 생산과 확장까지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 제작 방법만 체계화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폐보일러 리사이클링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