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달 말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IT 산업을 출입하는 기자로서 반도체·스마트폰 등 주요 사업의 현황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주요 IR 활동이니 만큼 디스클레이머(Disclaimer)를 확인하기도 한다.
디스클레이머란 우리 말로 '면책 조항'이다. 향후 기술될 내용들에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미리 고지하는 내용들을 뜻한다. 어느 기업이건 실적 발표를 진행하기 전에 의무적으로 디스클레이머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데 최근 디스클레이머에 대한 삼성전자의 행보가 미심쩍다. 기존에 없던 디스클레이머 항목이 지난 2분기 추가됐다가 3분기에 '돌연' 삭제됐다. 디스클레이머가 법적 책임 소지를 다루는 중요한 요소임을 고려하면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삼성전자가 1개 분기만에 감춘 디스클레이머 내용은 "또한 컨퍼런스콜 내용은 현재 기준의 정보로서 추후 해당 내용에 대해 업데이트하여 드릴 의무가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는 문구다. 즉 회사가 실적발표 당시 제시한 전망이나 계획 등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이를 반드시 수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삼성전자가 해당 문구를 삽입한 지난 2분기, 회사가 제시한 사업 전망은 매우 공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차세대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사업 확장을 자신했다.
▲HBM3E 12단을 복수의 고객사 요청에 맞춰 하반기 공급을 확대할 예정 ▲전체 HBM 내 HBM3E 매출 비중을 3분기 10% 중반, 4분기 60%까지 확대 등이 주요 대목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을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핵심 고객사로 꼽히는 엔비디아 HBM향 사업이 지연되면서, 결국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전영현 부회장의 이름으로 사과문까지 게재했다.
이에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기존 제시했던 HBM 사업 확대 전략이 계속해서 엇나가고 있는 상황"며 "특히 2분기에 굳이 추가적인 디스클레이머 조항을 설명했던 사례는 회사의 신뢰성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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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실적 발표 역시 업계와 시장의 여러 의혹을 해소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HBM3E 사업화에서 주요 고객사의 퀄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을 확보했다"는 등 희망적인 전망을 제시했으나, 회사의 4분기 실적에 미칠 효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감이 짙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적을 통한 '입증'이다. 회사의 기술력 및 사업 경쟁력을 믿고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일도 좋지만, 이제는 사업 현황을 면밀히 검토해 실현 가능성이 높은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다. 나아가 이를 양산 공급, 매출 실현 등으로 연결시킨다면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의심 어린 눈초리도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