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도 KP.3의 증가 추세가 확인되고 있다. KP.3는 면역회피능의 소폭 증가는 확인되나, 현재까지 중증도 증가와 관련된 보고는 없는 상황이다.”
위는 질병관리청이 28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실시한 코로나19 유행 동향 및 대응 상황을 정리해 언론에 배부한 보도자료 내용 중 일부다. 질병청은 KP.3 변이의 국내 발생이 시작되면서부터 수차례 위의 문구를 반복해 집어넣었다.
질병청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교육부, 국무조정실,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 합동 회의에서도 위와 같이 전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질병청 자체 연구 여부 등을 문제 삼은 발언이 나오지 않았으니 언론에도 배포했을 터다.
질병청이 중증도 증가 보고가 없다는 근거로 든 것은 국제학술지 란셋(Lancet), 세계보건기구(WHO), 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ECDC) 등이다. 즉, 주요 학계와 공중보건기구가 중증도 증가 여부를 발표하지 않았거나, 유의미한 중증도 증가가 없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질병청의 모니터링은 바로 공신력 있는 기관들의 발표를 참고하는 것이니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최근 코로나19 재유행 과정에서 확진자들은 본인이 KP.3 변이에 감염된 지 조차 모르고 있다. 호소할 곳이 없는 이들은 과거보다 몹시 아프고, 치료제와 감기약을 구할 수 없어 진통제로 버텼다며 기자에게 제보를 하곤 한다.
의학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신 물어보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질병청에 물었다.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는데, 중증도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 과연 국내 연구 결과로 확인된 것인가. 그러자 질병청 관계자는 KP.3 통증 여부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취지로 반문했다. 그는 WHO 등 유수의 기관의 중증도 보고는 없었다며, 자체 연구는 없었다고 퍽 떳떳한 투로 말했다.
이런 질병청의 태도는 일찌감치 경험한 바가 있다. 코로나19 초창기 선제적 조사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당시 기자의 지적에 그때도 질병청 관계자는 “우리가 뭘 알아야 조치를 취하든 할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 소극적이고도 떳떳한 모습에 느꼈던 기자의 당혹스러움을 4년이 지나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WHO가, 란셋의 논문들이, ECDC도 중증도가 없다고 한들, 우리 자체 연구로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질병청이 해야 할 일 아닌가. 앵무새처럼 해외의 연구만 번역해 모니터링 하는 것이 과학적인가. 왜 KP.3 변이가 기존 바이러스 대비 더 통증이 심한지 하다못해 질병청은 설문조사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공중보건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다. 질병청의 과학적 근거 바탕의 목표는 오롯이 국민건강이다. 이것이야 말로 질병청의 존립 이유이다.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한 이유도 더 많은 역할과 권한을 부여해 국민건강에 이바지하라는 것이다. 방역정책에 국민 삶을 껴안는 배려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적어도 선제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모습이라도 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