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백억원대 횡령이 터졌을 때 기자는 우리은행이 브랜드 모델인 가수 아이유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기자수첩을 썼다. 2년이 지났지만 우리은행은 여전히 기자수첩 '단골' 소재다. 올해도 100억원대 횡령 혐의가 발각됐으며 하반기에 들어서자 마자 '회장님 친인척의 수상한 대출'이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게 나간 대출은 총 616억원에 이른다. 이중 350억원은 '부정대출'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 서류가 부실하거나, 목적에 맞지 않게 자금을 쓰거나, 대출자금을 더 받기 위해 실거래 가격을 높여 계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부정 대출 건을 내부 감사한 뒤 연루된 직원 8명을 징계 처분했다고 밝혔다. 사건의 핵심에는 신도림금융센터장과 선릉금융센터장이었던 임 모 본부장있다고도 했다. 임 본부장의 지시에 따라 후배 직원들은 부당했지만 거부하진 못했고 결국 심사가 소홀한 대출이 집행됐다는 것이 우리은행의 설명이다.
여기서부터는 추정이다. 임 모 본부장은 직접 계약하거나, 직원이 계약한 대출을 검토했을 것이다. 곧바로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의 이름을 알았을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보다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부정대출을 승인했을 것이란 게 좀더 합리적인 추론이 아닐까 싶다.
우리은행 직원들이 모인 온라인 공간에서는 손태승 전 회장의 비서실장이 이동한 부서가 임 모 본부장 관할 지역이었다는 점이 거론된다. 손 전 회장이 '콜록' 하니 누군가가 임 모 본부장에게 '감기시다. 알아서 대처하라'라는 지시를 내렸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실체는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정확한 사실 관계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성급하게 결론내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벌써 우리은행에선 '꼬리자르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손태승 전 회장의 처남이 우리은행 명예지점장 명함을 직접 만들어 사칭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기행(?)으로 치부하면서, 개인적인 일탈로 몰아가는 듯한 분위기다.
만약 처남이 명예지점장을 사칭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최소한 해당 지점에서는 손태승 전 회장과 처남의 관계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은행이 거짓말을 하는지 처남이 거짓말을 하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사건은 처남의 일탈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우리은행은 횡령 사건이 터진 후에 내부통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개선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부정대출 이후에도 '여신 심사 절차 강화'를 들고 나왔다.
물론 당연한 조치일 수도 있다. 대출을 할 때 신용점수와 담보 감정가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칼 같은 기준이 서민들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과연 임종룡 회장의 친·인척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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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서민들에겐 칼 같았던 기준이, '전 회장의 친척'에겐 무뎌진 것 같아서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고 웃어른들은 말한다. 기업도 하나의 법인(人)인데, 과연 우리은행이 환골탈태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쯤 되면 아이유는 물론이고 우리은행 전경 사진에 찍힌 아파트 주민에게도 사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