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하락에 금감원 제동까지...두산, 합병 무산 대책 마련에 고심

매수예정가보다 낮은 3사 주가…주주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

디지털경제입력 :2024/08/13 09:41    수정: 2024/08/13 16:36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정부의 간접 제동과 거센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시계제로' 상태에 놓였다.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내는 알짜 기업 두산밥캣과 적자 기업 두산로보틱스 합병비율(1대 0.63)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두산밥캣 주주 입장에서는 적자 기업 주식을 교환받으면서 주식 수도 줄기 때문이다.

그룹 지주사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율은 합병 이후 14%에서 42%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지배주주 이익을 우선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번 합병에 불만을 품은 주주들이 대규모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한다면 합병이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분당 두산 사옥 (사진=지디넷코리아)

12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비해 다양한 방법으로 현금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계약이 무효가 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 규모는 ▲두산로보틱스 5천억원 ▲두산에너빌리티는 6천억원 ▲두산밥캣은 1조5천원이다. 적지 않은 규모지만, 주주들의 반대가 거센만큼 이를 넘어선 규모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심상치 않은 주주 반발…"합병 무산 가능성 있다"

지배구조 개편 대상 계열사들(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의 주가가 매수 예정가보다 싸다는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합병하려는 계열사 주식매수청구가와 현 주가의 가격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시세 차익을 위한 매수청구권 물량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계열사별 매수 예정가격은 ▲두산에너빌리티 2만890원 ▲두산로보틱스 8만472원 ▲두산밥캣 5만459원이다.

하지만 12일 종가 기준 주가는 ▲두산에너빌리티 1만8천340원▲두산로보틱스 6만7천300원 ▲두산밥캣 3만9천150원이다. 전거래일 대비 오른 금액이긴 하지만, 합병발표 이전 주가보다 하락했으며, 매수예정가를 크게 밑도는 금액이다.

두산밥캣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자금조달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두산밥캣의 올해 반기말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582억원이다. 주식교환계약서상 서면합의에 의해 계약을 해제·변경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 대비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연결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 8천219억원 규모다.

두산밥캣은 금융기관 등 외부 자금 조달을 통해 주식매수대금을 지급할 예정이며, 연결 대상 종속회사에서 보유한 현금을 모회사로 대여·배당·유상감자 등의 형태로 이전해 금융기관 차입금을 상환할 예정이다.

조엘 허니먼 두산밥캣 부사장(왼쪽)과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오른쪽)가 각각 CES 2024에서 발표하는 모습 (사진=지디넷코리아 신영빈 기자)

국내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주주들이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해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두산밥캣 주식매수권청구 행사액)1조5천억원을 넘어갈 수도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합병이 무산된 사례들이 있다. 2018년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캐스팅보트를 쥔 사모펀드 엘리엇이 합병비율을 문제 삼고 일반 주주들도 이에 동의하며 결국 합병이 무산됐다. 이번 두산 지배구조 개편에서는 '국민연금공단'의 결정도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밥캣의 2대주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캣의 경우 소액주주가 절반 이상이기 때문에 결국 소액주주들의 저항이 합병 무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두산그룹은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주주들 설득에 나섰다. 각 사 대표 명의로 주주 서한을 보내 합병 후 얻을 수 있는 시너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금감원에 제출한 정정신고서에서도 시너지 관련 구체적인 설명과 향후 M&A 등에 대한 계획 등을 밝혔다.

하지만 주주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두산 3사가 제출하 '분할합병, 주식교환 등 정정 증권신고서와 관련해 일반주주 관점 의사결정 절차 등을 공개 질의했다. 두산그룹 측은 공개질의에 답변을 검토 중이냐는 질문에 "아직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답했다.

■ 금감원 눈치 보는 두산…"신고서 반려 이어지면 합병 추진 어려워" 

두산그룹은 주주는 물론 정부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6일 두산그룹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비율을 유지하겠다는 취지의 '합병과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과 관련한 정정신고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앞서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에 합병과 관련한 중요 사항이 기재되지 않았다'며 보완을 요구하자 2주 만에 낸 정정신고서를 낸 것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회사를 합병할 때는 두 회사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도록 했기 때문에 두산 측은 합병비율 변경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합병 후 시너지로 오히려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번 합병을 바라보는 금감원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8일 “지배주주 이익만 우선하는 기업경영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 사례를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8일 오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두산 측이 제출한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 내용이 미흡할 경우 이를 계속 반려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를 두고 사실상 합병 계획을 철회하라고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두산그룹 금감원 정정 신고를 계속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감원이 합병비율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된 증권신고서 반려는 합병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산그룹 내부에서도 금감원의 신고서 통과 없이 이번 합병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증권신고서가)통과가 안 되면 진행을 못 한다"며 "주가 부양을 위해 주주 서한을 보내는 등 노력을 하고 있으며, 아직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10월 15일)이 많이 남은 만큼 소통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