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초기 대응 미흡했지만 비교적 잘 대처"…배터리 A-학점

[창간 24주년 특집 : 윤석열 정부 2년 평가] ④ 배터리 정책

디지털경제입력 :2024/05/16 14:43    수정: 2024/05/16 16:33

류은주, 김윤희 기자

지디넷코리아는 오는 20일 창간 24주년을 맞아 윤석열 정부 정책 2년을 평가했습니다. 전년과 마찬가지로 통신·플랫폼·로봇·금융·반도체·SW·AI·자동차·배터리 디지털헬스케어·게임 등의 분야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의욕을 갖고 시작한 정책들이 일관성 있게 효율적으로 추진되는지 살펴보았고, 정책의 실수요자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평가 점수가 지난 해보다 하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현 정부의 정책이 추진된 지 반환점조차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중간평가’의 의미이지만 정책당국에서는 평가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겠습니다. 이번 기획이 향후 정책이 좋은 평가로 발전하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K-팝, K-뷰티 못지않게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 꼽히는 아이템이 바로 K-배터리다. 국내 기업(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이 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45.9%(올해 1분기 기준) 점유율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을 포함하면 점유율이 23.1%로 뚝 떨어진다.

중국 업체들이 13억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급속도로 성장하며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전기차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중국 업체들의 기술 굴기와 저가 공세로 국내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다. 그나마 미국의 중국 견제 덕분에 받는 보조금이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전방산업 침체와 미중 갈등의 소용돌이 속 국내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조 바이든 행정부 핵심 정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대표적인 예다.

국내 배터리 업계와 관련 전문가들의 윤석열 정부 배터리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A-학점'으로 제법 후한 편이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통상 문제에 제법 잘 대처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IRA 초기 대응이 미흡하다는 아쉬움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중국산 흑연 제재 유예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K-배터리 "기회 오자마자 위기…세액공제보단 보조금 필요"

국내 배터리 업계는 미국 IRA를 가장 민감한 이슈로 꼽는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배터리 업체 임원은 "IRA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정부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사실 빠른 대응이 어려웠던 이슈일 수밖에 없었다"며 "정부는 업계와 지속 소통하며 관련 산업을 이해하기 위해 배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2021년만 해도 전기차 화재 때문에 정부가 배터리에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는 단계였지만, 2022년 IRA가 나오면서 산업 진흥을 도와주기 위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합동해 이차전지 밸류체인 전반에 대해 분석하고 지원책을 정리한 상황인데, 전기차 시장이 꺾이면서 바람이 푹 빠져버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리튬 배터리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그는 지금 업계도 정부도 한숨 돌리는 시기인 만큼, 그동안 준비해 놓은 지원책을 바탕으로 정책 개발을 지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석열 정부는 배터리 소재·셀 제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이차전지 특허 우선심사 도입을 통해 심사기간 단축(21→10개월) ▲이차전지 분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기반시설 구축 등을 지원책으로 발표한 바 있다.

배터리 업계는 여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 보조금과 같은 현금성 지원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기회가 오자마자 위기가 왔다"며 "지금 시장이 침체돼 있지만 앞으로 성장한다는 방향은 명확하기에,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아 좋은 정책을 내고 도와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지원책으로 투자세액공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익이 나야 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는데 투자 초반에는 이익을 낼 수 없어 사실상 혜택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며 "미국처럼 당장 현금으로 쓸 수 있는 보조금을 줘야 투자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으며, 기업들이 피부로 와닿는 지원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장비 업체 임원은 "특화단지 기반 조성 지원의 경우 매우 기초적인 산업단지 인프라 구축 지원으로 보인다"며 "근본적 제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업의 R&D 지원과 연구기반 인프라 구축 지원 사업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IRA에 울고 웃는 K-배터리…"중국과 협력 논의 병행돼야"

IRA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국우려기업(FEOC) 규정에 따라 중국산 소재를 사용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없어 양면의 칼날과 같다.

우리 정부도 부랴부랴 핵심광물 공급 안정화를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섰다. ▲해외자원개발 투자 세액공제 ▲융자지원 투자액 확대(30%→50%) ▲핵심광물대화체 마련 및 보유국 협력 강화 등이다. 

안정혜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해외자원개발 투자를 독려한다는 점에서 좋은 정책이나, 조금 더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내 기업이 아프리카 등지에 선뜻 투자하지 못하는 데는 해당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러한 위험을 보완할 수 있는 보험 기타 유사 지원책을 마련한다면 더욱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래픽 박은주 디자이너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을 바탕으로 올해 초 공급망 신속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수시로 상황을 점검하는 등 공급망 자립화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업계는 이같은 정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정부에서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자원 확보와 비축을 위한 노력, 금융·세제 지원 등은 기업들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광물의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채굴한 광물을 정·제련 또는 가공해서 배터리용 소재로 만드는 것인데, 이 과정이 우리 기업들이 가장 약한 부분"이라며 "기업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배터리 광물 확보 이후 제련과 가공 단에서의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8일 JW메리어트서울에서 미 IRA 대응 민관합동회의가 개최됐다.

중국산 흑연 제재 2년 유예의 경우 일단은 국내 기업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으나, 임시방편이기에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익명을 요구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2년 유예 기간 내 흑연 수급에 대한 대안 마련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기간 연장 또는 다른 방안을 강구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속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정혜 변호사도 "현재 정부는 MSP 참여, 인도네시아 및 기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등 다양한 활동을 개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른 성과가 기대된다"며 "하지만 중국이 핵심광물 주요 수출국이고 우리가 다른 공급 국가를 찾더라도 핵심광물의 50% 이상을 여전히 중국에 의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중국과의 협력 강화 방안도 반드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용 후 배터리 생태계 활성화공공주도 마중물 필요"

배터리 업계는 장기적으로 사용 후 배터리 시장이 성장할 것에 대비해 관련 정책 대응책 마련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사용 후 배터리 시장규모가 2030년 70조원에서 2050년 600조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민관 합동 배터리 얼라이언스에 참석한 배터리 업계 (사진=지디넷코리아)

전기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사용 후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산업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민관 합동 배터리얼라이언스에서 이를 논의 중이다. 지난해 11월 ‘배터리 여권제도(통합이력관리시스템·가칭)'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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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장비업체 임원은 "법 제정 과정에서 관련 기관과 민간기업이 참여해 논의할 수 있는 배터리얼라이언스 회의 체계 운영은 바람직한 롤 모델"이라며 "법 제정은 사용 후 배터리 생태계 조성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사용후 배터리 시장 활성화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공기관 주도 지원 사원이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지원책으로는 ▲초기 사용 후 배터리 검사와 인증 비용 지원 ▲광역지자체 단위 거점센터 육성해 사용 후 배터리 검사 지원 ▲재사용 BESS(배터리저장에너지시스템) 보급사업 지원 등을 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