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윤곽을 드러낸 가운데 삼성전자가 바이든 정부로부터 64억 달러(약 8조8505억원)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게 됐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텍사스 주에 기존 건설 중인 파운드리 1공장 외에도 추가로 2공장과 첨단 패키징 공장, R&D 센터를 짓기로 결정했다.
경쟁사인 대만 TSMC 또한 이달 초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보조금을 확정 지으면서 추가로 파운드리 3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유사한 행보다.
다만, 미국에서 다수의 고객사를 확보한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현지에서 대형 고객사를 확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 않아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 삼성전자, 美 텍사스주에 '4나노 팹' 이어 '2나노 팹' 추가 건설
미국 상무부가 삼성전자에 텍사스주 공장에 반도체 설립 보조금으로 64억 달러(약 8조8505억원)를 지원한다고 1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미국 인텔(85억 달러), 대만 TSMC(66억 달러)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보조금 규모이며, 당초 업계가 예상했던 20~30억 달러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액수다.
투자액 대비 보조금 규모로 따지면 삼성전자가 약 16%, TSMC가 10.2%, 인텔이 8.5%로 삼성전자가 가장 높다. 다만, 인텔과 TSMC는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 외에도 대출 지원도 받는다. 대출 지원 규모는 인텔 최대 110억 달러, TSMC 최대 50억 달러다.
이날 삼성전자는 텍사스 주에 기존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1공장(4나노 공정) 외에도 추가로 2공장(2나노 공정)을 건설하고, 첨단 패키징(조립) 공장, R&D 센터를 함께 짓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대미(對美) 투자액은 기존 170억 달러(약 23조4000억원)에서 400억 달러(약 55조3000억원)로 대폭 늘어났다. 파운드리 팹은 2026년부터 양산하고, 첨단 패키징 시설 및 R&D 센터 등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로부터 받는 반도체 보조금은 미국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의 일환이다. 미국 정부가 2022년에 만든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생산 보조금(390억 달러)과 연구개발(R&D) 지원금(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달러(75조5000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2030년까지 전 세계 최첨단 반도체 생산량의 20% 차지를 목표로 한다.
반도체법으로 미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은 큰 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첨단 파운드리 공정(16나노 이하)에서 미국의 생산능력 비중은 지난해 12.2%에서 2027년 17%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에 핵심 팹리스 기업 다수…삼성, 고객사 확보 절실
미국에는 애플,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등 핵심 팹리스 기업이 다수 위치한다. 이는 삼성전자와 TSMC가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신규 파운드리 팹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가 자국내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에게도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점도 크게 적용했다. 인텔 또한 공격적으로 자국에서 파운드리 투자에 나선 가운데 이번 미국 반도체 보조금 확보를 시작으로 3사의 팹리스 고객 확보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첨단 제조시설의 고객은 대부분 미국 업체이기에, 삼성전자가 고객 확보를 위해 미국에 반도체 투자를 결정한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삼성의 투자는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형 고객사 확보 측면에서는 TSMC가 앞서고 있기에 삼성전자는 분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가 61.2%, 삼성전자가 11.3%를 차지한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은 “삼성전자는 미국 신규 투자에 발맞춰 고객사를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라며 “TSMC는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대형 고객사를 확보했기에 라인을 추가해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지만, 삼성전자는 현재 명확한 수요처가 부족하다는 점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삼성전자가 도약하려면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석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성균관대학교 전자전기공학부 교수)은 “삼성전자가 미국에 추가 투자하는 것이 ROI(투자자본수익률)를 따져봤을 때 얼마나 효율적인지 의문이 들고 우려된다”라며 “미국의 인건비와 건설비가 증가하고 있으며, 인력 확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미국 현지 팹에서 고객사 확보만 보더라도 삼성전자가 TSMC에 뒤처지고 있어 걱정된다”라며 “삼성전자가 신속히 인재를 확보하고 기술을 강화해서 TSMC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의 공격적인 파운드리 확대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독일, 일본, 대만, 한국, 미국 등 모두 파운드리만 짓고 있다. 향후 반도체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도 그 공장들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지 의문”라며 “이런 추세라면 공급과잉 문제와 함께 팹이 유휴 시설이 될 수 있어서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세계 파운드리 확대는 국내 소부장에게 호재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인 반도체 생산시설 확대는 국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업체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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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단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면 글로벌 장비 외에도 기존에 사용하던 한국 업체의 장비도 사용할 가능성이 있어 소부장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재희 반도체공학회 부회장(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국내 소부장 업체는 이 기회에 삼성 반도체 공장 뿐 아니라 미국 및 다른 반도체 업체로의 판매망 확대 및 글로벌 마케팅을 추진하고, 국내 소부장 관련 제품의 성능 검증의 기회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며 “삼성, SK하이닉스와 국내 소부장 업체는 하나의 반도체 생산망을 이뤄서 상생을 강화하는 방안도 바람직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