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도 액체도 아닌 액정과 같은 '네마틱' 상태가 양자 물질에서 처음 관측됐다. 양자 컴퓨터나 고온 초전도체 연구 등에 활용될 수 있으리란 기대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은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 김범준 부연구단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양자 물질에서 액정과 유사한 물질 상을 세계 최초로 관측, 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고 18일 밝혔다.
네마틱은 액체와 고체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상태를 말한다. 액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고체처럼 분자 배열이 규칙적이다. 이론적으로는 네마틱 상이 양자역학적 스핀 계에서도 존재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실제 물질에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핀은 전자의 각운동량을 말하며, 전자의 운동을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에 비교한다면 스핀은 자전에 해당한다. 자석은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된 고체 상태라 할 수 있다. 자석에서 스핀은 N극과 S극 두 극으로 이뤄진 자기 쌍극자를 형성한다. 반면, 스핀 네마틱은 자성은 없이 네 개의 극으로 이뤄진 사극자가 정렬된 상태다.
기존 실험 도구는 쌍극자에만 민감하게 설계되어 스핀 네마틱을 검출하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미국 아르곤연구소와 협력, X선으로 사극자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공명 비탄성 X선 산란 장비(RIXS)'라는 새 장비를 개발했다. 이후 포항가속기연구소 등 가속기 빔 라인에 개발한 분광기를 구축해 실험을 진행했다.
이어 고온 초전도체 유력 후보 물질로 꼽히는 이리듐 산화물(Sr₂IrO₄)에 X선을 쬐어 스핀의 거동을 관찰했다. 이리듐 산화물은 230K(-43.15℃) 이하 저온에선 쌍극자와 사극자가 공존했지만, 260K(-13.15℃) 온도까지는 쌍극자가 사라져도 사극자가 남아있었다. 230-260K 온도 범위에서 스핀 네마틱 상태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스핀 네마틱 상의 발견은 스핀 액체 탐색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스핀 액체는 낮은 온도에서도 무질서 상태를 유지하는 양자 스핀 계의 상태를 말한다. 독특한 물리적 성질로 인해 다양한 활용 방안이 있으리란 기대가 크다. 공동 저자인 조길영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컴퓨터 등 양자 정보 기술에 활용하기 위해 학계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스핀 액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라며 "스핀 네마틱은 스핀 액체와 공통적인 물리적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스핀 액체 탐색의 핵심 단서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이리듐 산화물에서 고온 초전도 상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론적으로 스핀 네마틱 상도 스핀 액체처럼 스핀 양자 얽힘을 통해 고온 초전도 현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에서 이리듐 산화물의 전자 농도를 변화시켜가며 고온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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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부연구단장은 "RIXS는 양자 간섭을 통해 스핀 상호작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엑스선 과학 분야에서 지난 10년 간 가장 주목받은 기술 중 하나"라며 "이번 연구는 국내 방사광 X선 실험 인프라 및 활용 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논문 제목은 Quantum spin nematic phase in a square-lattice iridate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