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회사가 커질수록 고독했을 듯하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한계도 느꼈을 것 같다. 한때 시가총액 3위까지 올랐던 그룹에 균열이 가고 있지만 처방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균열을 내는 구멍은 도처에 있었고 구멍의 원인은 그때까지 자신이 믿었던 사람과 시스템이었을 터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창업자인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 모든 걸 바꿔야 새 길이 열릴 터다.
카카오 그룹 성장의 원천은 계열의 자율성이었다. 성장을 위해서는 발 빠른 ‘스피드 경영’이 필요했고, 계열사의 자율성이 스피드 경영의 토대였다. 그건 성장의 발판이기도 했지만 나중에 보니 균열의 뿌리이기도 했다. 투명성과 도덕성으로 관리되지 못하는 성장과 확장은 방만과 부실의 자양분일 뿐이었다. 쪼개기 상장과 일부 경영진의 ‘먹튀 논란’ 그리고 먹통이 된 시스템은 그 결과였을 터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을 찾아간 건 네 달 전이다. 방만하고 부실해진 카카오 그룹의 수술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수술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인사와 감사. 결국 사람과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다. 김범수 창업자가 김정호 이사장을 집도의로 선택한 까닭은 자신까지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싶어서였을 지도 모른다. 과거 자신의 결정이 모두 뒤집혀야 할 수도 있는 거다.
김범수 창업자가 보기에 카카오 집도의는 최소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내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카카오의 성장 스토리를 잘 아는 기술경영전문가이며, 수술과정에서 눈곱만큼의 사심도 갖지 않을 만큼 도덕성을 갖춘 사람. 하나 더 욕심을 부리자면 자신한테까지 거침없이 쓴 소리도 할 수 있는 사람. 김범수 창업자는 김정호 이사장을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을 듯하다.
김정호 이사장은 김범수 창업자와 삼성SDS 동료다. 김범수 창업자가 오래전부터 잘 알던 인물이다. 네이버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김정호 이사장은 2012년부터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발달장애인 고용창출을 목적으로 한 베어베터가 그곳. 김범수 창업가 지난해 5월 자신이 세운 재단법인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에 김정호 이사장을 초빙한 것도 그의 공익 철학을 믿어 의심찮기 때문이다.
김정호 이사장은 그러나 카카오 집도의를 거부했다. 그 일이 얼마나 피 튀기는 일일지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카카오 내부 기득권자들의 강력한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그는 사실 피 흘리지 않는 창조적 건설의 전문가이지, 피를 보며 파괴적으로 개혁하는 전문가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김범수 창업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두 번을 더 찾아왔고, 마지막엔 8시간에 걸쳐 술을 마셨다.
삼고초려(三顧草廬). 그건 한없이 고독한 김범수 이사장의 절박함이 아니겠는가.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카카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회적으로 극대화한 시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카카오가 일구어낸 혁신의 성과들마저 무가치한 것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혁신의 성과가 사회적으로 이로운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잘 추슬러서 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지 않겠는가.
그 일을 하는 데 어떻게 리더십을 가질 것인가. 김정호 이사장은 맨 앞에 순수함과 도덕성을 둔 듯하다. 월급, 보너스, 주식, 스톡옵션, 법인카드, 차량, 기사, 골프장 회원권 등등 어떤 보상도 받지 않겠다는 것. 집도의 사명은 스러지는 생명을 피를 보며 살려내는 일이지 돈을 벌자는 게 아니지 않은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카카오 위기가 그의 눈엔 한국 IT와 스타트업의 이면처럼 보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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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공동체 얼라인먼트(CA) 협의체’와 외부 감시기관인 ‘준법과 신뢰위원회’를 통해 수술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김정호 이사장이 최근 내부 회의 과정에서 거친 말을 해 논란이 일고 있는 듯하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일이어서 아쉽다. 그렇더라도 달을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보다 그가 가리키는 달을 보는 지혜를 카카오 내외부가 가졌으면 한다.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김정호 이사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카카오의 곪아터진 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수술을 위해 그가 파악했던 종양들일 것이다. 종양을 외부에 스스로 드러내는 건 예상 밖의 일이다. 김범수 창업자 뿐 아니라 집도의인 그 또한 고독해보인 이유다. 도움을 받고 싶었을 수 있다. 적어도 아무런 사심도 없어 보이는 그가 하는 일이 고독할지언정 끝내 포기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