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간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행정전산망 먹통 원인이 밝혀졌다.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의 포트에 문제가 있었다고 행안부가 25일 공식 밝혔다.
초기엔 L4 장비의 운용체계 문제로 봤는데 그게 아니라 라우터 장비의 케이블을 연결하는 모듈에 있는 포트 중 일부에 이상이 생겨 사달이 발생했다는 거다. 시스템 이중화도 적절히 돼 있다면서 "이번 경우처럼 일부 모듈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에는 이중화가 작동이 안된다"고 해명했다. 덧붙여 "장비 노후화가 고장 원인은 아니며, 물리적인 부품 손상 원인은 밝혀내기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행안부 설명대로라면 물리적인 부품 손상이 원인이고, 불가항력적인 사고였다는 거다.
겨우 그 정도에 그렇게 난리치며 공공 IT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넣었나 하는 생각에 입맛이 씁쓸하다. 큰 산이 울리고 지축이 흔들렸는데 나온 건 쥐 한마리였다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란 말이 떠올랐다.
포트 불량 하나로 IT강국 코리아는 국내외서 웃음거리가 됐고, 중소SI기업과 L4 장비 기업을 사태 주범으로 몬 주요 언론은 오보를 양산한 꼴이 됐다.
다음은 어느 매체의 20일자 보도다. "지난 17일 전국적인 행정망 마비 사태를 촉발한 새올행정시스템은 연 매출 200억원 규모의 중소 IT 업체가 구축,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올시스템 중단 이후 전국 주민센터는 물론 정부 온라인 민원 사이트 정부24까지 마비되며 전대미문의 전국 행정 공백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3월 대국민 사법 서비스가 중단된 법원 전산망, 지난 6월 개통 직후 접속 오류가 발생한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 등 올해 장애가 발생한 주요 공공 전산망 모두 중소기업이 개발했다."
기사만 보면 중소기업이 시스템을 개발해 사고가 났다는 듯이 읽힌다. 명백한 오독(誤讀)이다. 대기업이 수주한 전산시스템도 제때 개통하지 못한 사례가 꽤 있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공공분야 전산시스템 문제의 본질이 기업 '사이즈'가 아닌 것이다.
언론에 사태 원인으로 거론된 기업의 한 임원은 며칠전 기자에게 전화를 해 "소프트웨어(SW) 등 행정시스템과 장비운영시스템은 서로 다른데 주요 언론이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쓰고 있다. 실정을 모르는 언론이 우리같은 중소기업들이 문제라며 호도하고 있어 아무 잘못도 없이 사태 해결에 밤낮이 없는 직원들 가슴에 멍이들고 있다"며 낙심했다.
원인은 알았고, 앞으로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행안부는 몇가지 대책을 내놨다. 오래된 장비들을 전수 점검하고, 사고 발생 시 국민에게 신속히 안내하며, 장애 처리 매뉴얼과 재난방지 종합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또 위기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총괄하는 범정부 장애 예방·대응 컨트롤타워를 강화하며, 공공정보화사업의 사업 대가 현실화를 위해 사업 추진 절차와 관리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마땅히 해야할 조치다. 이중 기자는 공공정보화사업 대가 현실화를 주목한다. 이번 사태를 포함해 공공분야에서 일어나는 전산시스템 장애 주범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가 아니다. 과업에 비해 낮게 책정된 '사업 대가'가 주인(主因)이다.
인공지능(AI)이니 클라우드니 해서 신기술은 쏟아지고 개발자 단가는 높아졌다. 반면 사업대가는 제자리다. 공공SW사업이 매출에서 20% 이상 차지하는 SI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평균 0.5%에 불과한 이유다. 이런 구조에서는 좋은 인력 채용과 연구개발이 불가능하다. 싸움을 해보기도 전에 패한 꼴이다. 그럼에도 기술과 시장 속성을 모르는 정치인과 언론은 "대기업이 참여하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는 거다. 앞으로는 대기업 운운 대신 사업대가를 제대로 줬는지를 물어야 한다. 중견, 중소SI기업들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대기업 참여 제한에 따른 반사이익을 분명히 받았음에도 그동안 실력을 키우는데 집중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묘한 기술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림에도 이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눈에 안보이기 때문이다. 1995년 6월 상품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이후 우리 사회는 대오 각성해 지난 20여년간 상품사태 같은 큰 불행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 전산시스템은 지난 일주일간 4번이나 먹통 사태가 벌어졌다. 좀 과장하면, 상품백화점 붕괴가 일주일에 네번 일어난 셈이다.
몇 달 전 일이다. 국회에서 공공SW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한국IT서비스협회 임원은 "지금과 같은 열악한 공공SW 유지보수 체계에서는 공공SW시장에서 상품백화점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불행히도 그 임원 말이 맞았다.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을까? 기자는 비관적이다. 사업대가를 제대로 주는 구조가 정착하지 않아서다. 현재 우리 공공SW사업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발주자 역량 문제, 설계 문제, 개발자 문제, 수행업체 문제 등이 얽혀져 있다. 언제 이번과 같은 전산 사고가 일어날 지 모르는 형국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사업대가 문제를 풀어야 한다. 기획재정부(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정부예산안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행안부의 유지·보수 비용이 크게 줄었다. 전자정부 지원 사업이 올해 493억원에서 내년 126억원으로 74%(367억 원) 삭감됐고, 행정정보 공동 이용 시스템의 유지·보수 예산도 올해 127억원에서 내년 53억 7000만원으로 줄었다. 내년에도 '폭탄'을 안고 살게 됐다.
문제 많은 공공SW 사업의 해결 고리는 사업대가고 이는 결국 돈 문제다. 기업으로 보면 기재부는 CFO고 행안부와 과기정통부는 CIO다. CIO에 IT는 혁신의 도구지만 CFO에게 IT는 코스트(비용)로만 여겨진다. 비용절감이 우선 과제인 CFO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정부때가 오버랩된다. 초대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대기업 CIO와 대형SI기업 출신이 선임됐다. 그는 열악한 SI시장 구조가 10년전, 20년전 본인이 현장에 있을때와 다름없다면서 '아직도 왜? TF'를 만들어 구조 개선에 나섰고, 5대 공공SW 해결 과제를 도출해 법에 반영했다. 20여년만에 전면 개정한 현재의 SW진흥법도 그때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이번 사달이 일어났다. 공공SW사업을 망치는 주범인 사업대가 문제가 여전히 해결이 안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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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때와 달리 이번엔 행안부가 주축이 돼 TF가 만들어졌다. 지난 정부때와 달리 성공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관건은 CFO인 기재부를 움직이는 거다. 정부 조직을 담당하는 행안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CFO를 움직이는 건 CIO가 아니라 CEO다. 사업대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CEO인 대통령과 용산이 직접 나서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때마다 대통령이 나서야 하냐"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없다. 그만큼 이 문제는 고질병이고 꼭 고쳐야 한다. 30년 넘게 SW와 씨름해 온 김진형 KAIST 명예 교수는 이번 사태 원인으로 사업대가와 과업변경 등을 지적한 언론 보도에 "정말로 케케묵은 이슈다. 내 생애 대부분을 이 이슈와 싸워왔는데 아직도..."라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IT행사가 있을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SW가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선진국간 패권 경쟁은 AI와 반도체같은 신기술 선점 경쟁과 다름없다. 사업대가 개선을 비롯한 공공SW 구조 개선은 'SW강국 코리아'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국가경쟁력 강화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니 대통령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위기는 기회다. 그러나 위기가 그냥 기회가 되지 않는다. 현재의 잘못과 모순을 뒤집어야 기회가 된다. 공공SW 시장은 현재 위기다.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국가 CEO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